탈모에 대비하다
내게 사용되는 항암제 부작용으로 탈모가 된다는 것은 안다. 같은 림프종이라고 해도 각 타입과 그에 따른 아형이 수십 종인 지라 쓰는 약물에 따라 탈모가 안 되는 약도 많다. 그러나 알찹 치료는 탈모가 기본이다.
아는 선배님이 7년 전 유방암으로 항암 할 때 가발을 인모로 2개 맞추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아직도 그대로 보관하신대서 빌리기로 했다. 그분의 좋은 기운도 받을 겸. 그분도 나와 같은 짧은 커트머리라서 잘 맞을 거 같았다. 가발을 받으면서 가발 전문 미용실도 소개받아 찾아갔다. 수굿한 중년의 미용실 원장님은 수많은 암 환자들이 자신의 미용실을 거쳐 갔다며 걱정 말고 맘을 편히 가지라고 했다. 두 개의 가발 중 내 두상과 스타일에 더 맞을 거 같은 것으로 골라 샴푸하고 정리해서 내게 맞게 커트를 했다. 그리고 이제 내 머리를 밀을 차례가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환자 하면 탈모된 머리와 마스크를 생각한다. 이제 나도 그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탈모는 2,3주 후에나 시작될 거라고 하는데 난 미리 삭발을 하고 싶었다.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를 보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템플 스테이 할 때면 나도 스님들처럼 삭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학생 때도 아주 짧은 커트 머리로 주위를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여하튼 이제야말로 내 두피가 제대로 일광욕을 할 기회가 온 거다. 그것도 나 태어나고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미용실 의자에 앉아 바리깡으로 내 머리가 밀려나갈 때도 별 감정이 없었다. 함께 간 동생과 딸이 조심스레 "괜찮아?"라고 물을 때도 "시원한데 뭐 어때서? 때 되면 길어 날 건데"라고 답했고 정말 그런 맘이었다. 미용실 원장님은 "정말 두상이 참 예뻐요. 어디 하나 죽은 데가 없이 고루 예뻐!"라고 했고 지켜보던 동생과 딸은 함께 맞장구를 쳤다. 혹시나 내 맘이 아플까 봐 건넨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뒷거울로 바라보니 그 말이 틀리지 않은 거 같았다. 머리카락이 없어도 봐줄 만했다. 가발을 씌우고 마지막 손질을 했다. 감쪽같았다. 젊다면 이럴 때 스타일 변신을 꽤 해봐도 좋겠다 싶을 만큼.
그러나 그 가발을 쓸 일은 없었다. 딱 한 번. 동생집에 가면서 시험 삼아 써 보았을 뿐인데 영 나는 어색했다. 남들은 다 아무런 표 나지 않고 본인 머리 같다고 했지만 난 어색하기 그지없었고 그걸 쓰고 나가야만 할 일 자체가 없었다. 집에 누워있거나 집안을 어슬렁 거리거나 남편과 함께 가까운 숲에 가는 일이 전부라 깊게 눌러쓸 수 있는 모자면 충분했다. 누구를 만날 일도 어디로 나들이할 일도 전무했으니까.
나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는 역시 가족이다. 항암 하는 사람의 몸 상태를 염려해서 필요한 물품을 준비했고 내가 먹을만한 식재료나 음식을 가져왔고 재미있어 시간 보내기 좋은 영화나 드라마를 소개해줬다. 그들도 나처럼 항암 치료에 대해 자료를 찾고 공부했으리라.
딸은 검은 비니를 주문해 줬고 동생은 모자 전문샵에 함께 가서 아주 비싸지만 평범해 보이는 모자를 사줬다. 실은 항암치료 끝무렵에 있을 조카의 결혼식에 간다면 그런 격식 있는 모자도 필요할 거 같아 말리지 않았다.
딸은 서울에서 챙이 넓고 우아한 모자 외에 머리를 감출만한 모자를 잔뜩 사 왔고 지금까지 아주 잘 쓰고 있다.
3주 후쯤 머리를 아주 빡빡 밀었음에도 불구하고 탈모과정을 느낄 수 있었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씻어내다가 0.1mm쯤 자란 머리와 모근이 마치 작은 검은깨처럼 손에 가득 묻어나는 것을 봤다. 다른 곳에 묻지 않도록 수차례 손으로 문지르고 비누로 씻어냈다. 하루 이틀정도 그런 현상은 지속되었다. 그러나 머리 전체가 빠진 것 같지는 않았다. 여하튼 약물이 제 일을 잘하고 있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내 몸에서 빠르게 자라나는 신생세포를 말살하는 임무 말이다. 그게 네 편 내 편 가리지를 않고 해대서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