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이 이런 거였어?
입원 2일째
2시 되기 전에 포트에 수액을 연결했다. 더 이상 혈관을 찾아 수액 바늘을 꽂느라 수고하지 않아도 좋았다. 마치 똑딱단추를 달아 내 혈관을 필요할 때 수시로 단추를 열어 사용하는 것 같아 느낌이 좀 그랬다. 나중에 딸은 내 케모포트를 보더니 "하하! 엄마가 싸이보그 같아." 했다.
그리고 내가 투여받을 약물에 대한 설명서를 받고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DLBCL(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의 표준치료는 R- chop (약물의 앞 머리글자를 따서 알찹이라 부름)이라고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설명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거사를 앞둔 사람처럼 막막했고 두려웠다. 치료를 끝까지 잘 받고 이겨낼 수 있을지만 마음이 쓰였다.
'전에 대학에서 약물학 시험 볼 때 외웠던 약들을 죄다 잊고 있었다가 내가 여기서 접하게 되는구나' 하는 슬픈 감개무량함이 덮쳐왔다. 엔독산 아드리아마이신...... 아무런 느낌 없이 나와는 평생 무관할 줄 알고 외웠던 약명들인데.
2시가 가까워지자 내 수액 폴대에 뭔가 커다란 벽돌처럼 생긴 묵직해 보이는 장치를 달고 갔다. 아마도 수액이 시간당 정확한 양이 들어가도록 하는 기계 같았다. 괜히 마음이 그 장치만큼이나 묵직해졌다.
정확히 2시에 투약이 시작되었다. 담당 간호사는 수액을 연결하고는 이상이 있으면 비상 호출벨을 누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순서대로 제일 먼저는 리툭시맙이었다. 혈압이나 두통을 주의 깊게 보는지 15분 간격으로 혈압을 재고 두통이나 다른 이상은 없는지 체크했다. 다행히 별 이상 반응 없이 지나갔다. 4시간 반에 걸쳐 천천히 투약받았다. 그다음 엔독산은 2시간, 세 번째와 네 번째 약은 30분이 걸려 밤 9시 30분경에 항암제 1차 투약을 마쳤다. 약과 약 사이 수액이 다 들어갔을 때는 기계에서 자동으로 신호가 울렸고 간호사선생님들도 투약을 아주 세심하게 살폈다. 큰 이상 없이 첫 항암을 마쳐 다행스러웠다.
마음으로는 별 동요 없이 평안하다 싶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2시 반에 깨어나 새벽까지 뒤척이고 말았다. 불면의 밤은 참 길다.
입원 3일째
새벽마다 어김없이 4시 반이면 체중을 재는데 2Kg이 불어나 있었다. 약에 취한 듯 몸이 무거웠으니 아마도 전신, 얼굴까지 퉁퉁 부었겠지만 거울을 보지 않으니 그저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아침에 이뇨제 주사를 맞았다. 먹은 밥의 양과 대소변 횟수를 체크해 가지만 소변 횟수를 기억하기도 쉽지 않다. 갇힌 공간에서 누워서만 지내는 24시간은 어제가 오늘 같았다.
매 끼니마다 한 움큼의 약을 받고 그 약 내용을 들여다보며 내 가진 상식으로 그 약이 처방된 이유를 추정해 보곤 하는데 점심약을 받아 들고는 기가 막혔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프레드니솔론이 20알 이라니! 항암 하면서 5일 동안 매일 복용해야 하는 하루 복용량 프레드니솔론 100mg 은 충격이었다. 일반적으로 스테로이드 호르몬제는 부작용 때문에 주의해서 한두 알 쓰는 일도 신경을 쓰는 약인데 20 정이라니. '아! 이건 죽기 아니면 살기인 판이구나.' 하는 생각이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등골이 새삼 서늘했다.
오후부터 가슴이 조금 답답해졌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의료 분쟁 중인 지금은 회진 때도 예전과는 다르다. 교수님 외에 거의 한 두 명 정도의 레지던트와 수간호사와 병동 간호사 정도가 함께 다닐 뿐이었다. 주치의 역시 전체 병동 환자를 단 한 명이 관리하는 것 같아 전처럼 매일 각 환자에게 와서 체크를 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의료진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오직 아침 회진 때뿐이었다. 그것도 1분 내외? 가슴이 답답하거나 기타 소소한 증상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볼 곳이 없었다. 난 챗gpt에게 모든 것을 물어봤다. 혈액 검사결과에 대한 설명, 내 증상, 불편한 점, 지친 마음의 상담까지. 별로 사용하지 않던 AI가 내 삶의 영역에 한 축으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입원 4일째
자정쯤 잠이 들면 3시쯤 깨어나서 뒤척이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이 역시 약의 부작용 때문이지 싶었다. 가슴이 더 답답해서 숨 쉬기가 불편했고 속이 미슥거리기 시작했다. X-ray 촬영과 심전도 검사를 했고 혈액 검사를 했다. 오후부터 입이 바싹 마르고 눈이 뻑뻑해지기 시작했다. 없던 변비가 생겼다. 불면의 밤이 지속되어 수면제 처방을 받았다.
입원 5일째
늘 투약되는 약 3주분 외에 따로 변비약, 진통제, 오심구토 방지제, 처방을 받고 뉴라스타(호중구 촉진제)를 맞고 퇴원했다. 퇴원약 중에 마약성 진통제가 있었다. 앞으로 이 약을 먹어야 할 경우가 생기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어 심란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닥치면 그저 당하는 수밖에. 마스크를 쓰고 KTX를 타고 귀가하는 길 푸른 하늘에 햇살이 밝았다. 병원 밖의 시간은 계엄으로 인해 파생되는 정치 뉴스로 혼란스러웠지만 별 이상 없이 제 흐름대로 흐르고 있었다.
집은 딸이 내 방은 물론 베란다 청소에 침구 소독까지 완전하게 마친 상태였다. 혹시라도 감염이 우려되니 식사 외에는 거의 내 방에서 지내야 했다. 병원에서 통 식사를 못 했는데 정성 들여 딸이 내놓은 저녁 오리 들깨 시래기 탕에 목이 메었다. 잘 먹어야 견디어낼 수 있다는 생각뿐. 제 모든 일을 접고 엄마 치료 끝날 때까지 대신 집안일을 맡겠다며 집에 눌러앉은 딸이 고맙고 또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