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전 준비 그리고 입원
입원 전 준비...
사실 딱히 일반적인 입원 준비와는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했다.
하지만 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라 비교적 평온했다. 딱히 할 일이 없는 듯했다.
혹시 암이 아닐지도 몰라 검사 중에 미뤄놨던 약속이나 내가 맡은 일은 다 취소하고 타인에게 일임했다. 직장에 이야기하고 퇴사하겠다고 하자 아무런 걱정 말고 그저 치료에만 전념하라고 했다. 모임에서도 직장에서도 다 내 일을 나눠서 하고 치료 끝나기를 기다리겠다는 말이 참 고마웠다.
가족들이 모여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일지 모르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지금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고 지금 이 시간을 충분히 살자."는 말을 나눴다.
그 사이 딸은 인터넷을 뒤져서 암 환자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구입했고( 환자용 치약, 칫솔, 칫솔 소독기, 바디워시, 손 소독제, 로션, 탭 등등) 암환자들의 카페에 가입해서 필요한 정보를 내게 제공했다. 그리고 내 휴대폰에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앱을 깔아주고 필요한 정보를 저장해 줬다. 그리고 KTX 열차표를 2매 왕복으로 예매했다. 앞으로 엄마 입원 때마다 동행하겠다고 했다. 자신의 표는 당일 왕복으로 내거는 3박 4일의 일정에 맞춰서. 뿐만 아니라 제 일을 모두 접고 앞으로 엄마 나을 때까지 집안일을 맡아서 할 테니 집안일은 잊고 치료에만 전념하라고.
앞으로 3박 4일의 입원을 하며 3주 간격으로 6번의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 급하게 잡은 입원일은 목요일이었다. 아침 일찍 상경해서 오전에 PET CT를 찍고 오후 1시 30분 병실에 입원했다. 딸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병실 복도에도 들어서지 못한 채 격리 병동 입구 문 앞에서 돌아가야 했다. 철저한 격리 병동이었고 간호간병 통합 병동이라서 보호자는 출입할 수 없었다.( 나중에 보니 중증 환자는 특별히 보호자가 상주할 수도 있었다.) 나를 두고 돌아가는 딸아이의 마음을 당시에는 헤아릴 겨를조차 없었다.
곧바로 병실과 내 침대가 지정되었고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심전도와 폐활량 검사, X-ray, 체중과 키도 재고 자잘한 이런저런 문항에 답을 하는 등 바빴다. 다인실 병실은 각 침대마다 커튼으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조그만 잡음조차 나지 않아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커튼 열고 옆 환자랑 이야기하고 병실 전체가 서로 과일도 나누고 이러저러 이야기로 떠들썩한 일반 병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나 역시 늦게야 입원 물품 정리하고 내 자리에 조용히 누워 있자니 비로소 내가 암 환자라는 게 실감이 났다. 반평 남짓한 공간에 커튼을 둘러치고 침대와 응급 시 간호사실과 연결된 버튼, 개인 물품을 넣는 작은 장 하나가 전부인 곳에서 난 철저히 혼자였다.
감염 관리가 철저해서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했다. 대형 마스크를 써도 얼굴이 큰 나에게 고무줄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치료가 끝나기까지 마스크는 내 옷과 같았다.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때는 오직 식사시간뿐이었다. 나중에는 마스크 고무줄이 닿는 귀 맨 위쪽 살이 벌겋게 부풀어 쓰라렸다. 병실에서는 마시는 물도 병에다가 정수기 물을 받아 마시는 것보다 500cc짜리 생수를 사서 그날 안에 마시는 것이 감염 방지에 좋다고 했다. 생수도 충분하게 여러 병 사두고 마셨다.
다음날 아침 심장 초음파하고 수술 동의서 작성 후 케모포트 삽입을 했다. 주기적으로 안전하게 항암제를 주입하기 위해 삽입하는 기구로 일반적으로는 혈관 조영실에서 한다고 들었는데 나는 수술실에서 했다. 우측 가슴 피부에 국소 마취를 하고 피부 절개 후에 포트를 삽입하는 과정이 그대로 느껴져서 아프다기보다는 피부 밑으로 이물질이 쓰윽쓱 밀려들어가는 그 석석한 느낌이 몸서리치게 다가왔다. 수술 시간은 전처치까지 해서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가슴 부위에 직경 2cm 정도의 단추처럼 생긴 물질이 피부 속에 자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몇 주 동안 그것을 거울로 볼 엄두가 나지 않아 그저 뻐근한 감각을 느끼기만 하고 있었다.
오전 1시쯤에 캐모포트 삽입을 했는데 2시에 항암을 시작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내 몸은 철저히 물질일 뿐이다. 그리고 100% 수동적이어야 한다. 내 의견 내 느낌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환자고 의료진에게 내 몸을 완전히 맡긴 상태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모든 과정에 지시대로 충실하게 따르는 의무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