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이 소태.
두 번째 항암 치료를 위해 오전 기차를 타고 다시 상경했다. 차표 구하기 어려운 날을 피해 화요일로 다음 항암을 잡아서 1차 항암 후 3주 하고 4일이 지난날이었다. 사정에 따라 며칠 항암을 미룰 수는 있으나 당길 수는 없다. 항암 후에 떨어진 혈액수치가 일정 수준으로 올라와야 다음 항암을 진행할 수 있는데 다행히 난 거의 제 스케줄대로 진행한 편이다.
오후에 입원실이 배정되고 짐 정리하고 마실 물 사두고 혈액 검사, X-ray, 심전도를 하고 1차 때 심은 포트를 통해 수액을 연결했다. 혈액 검사도 이곳을 통하니 잘 잡히지 않는 혈관 찾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보다도 항암제가 혹여 혈관 밖으로 새어나갈까 싶은 불안감이 없어 좋았다. 항암제가 혈관 밖으로 새어나가면 바로 그 자리 피부는 괴사 하거나 염증을 유발하니 말이다.
항암은 내일 시작하나 보다. 4일 동안 먹을 생수도 준비했다. 저녁밥이 나오는데 도저히 못 먹겠다. 입안 세포가 상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냥 목이 턱 막혀서 들어가지 않는다. 그나마 아침에 나오는 누룽지가 그래도 나았다. 그냥 마시는 것으로 대체식이라도 먹어야 한다. 원래 생수는 잘 마시지 않고 여름에도 따듯한 보리차를 마시는 나로서는 생수를 하루 1500cc 이상 마셔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1차 항암 후 하루에도 수차례 죽염수로 가글하고 아침저녁은 헥사메딘이나 탄툼으로 가글을 했는데 구내염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항암제로 인해 입 안의 세포가 손상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입안 전체가 헌 듯 조금만 뜨겁거나 매운 음식은 먹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목구멍에 마치 쇠못이 올라와 있는 듯 뭔가를 삼킬 때마다 너무 아팠다. 어찌나 생생하게 거슬리는지 뻔히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울로 목구멍을 비쳐보고서야 쇠못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되었으니까.
집에서는 이런 내 상태에 맞춰 누룽지나 죽, 슴슴한 국 등으로 입을 달래며 입맛이 당길만한 것으로 준비해 식사를 했는데 병원밥은 아무리 잘 나와도 나는 숟가락을 댈 수 없었다. 밥은 거의 먹지 못했고 죽으로 신청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하도 단백질 섭취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단백질이 될만한 것만 식판에서 골라 억지로라도 먹곤 했다. "잘 먹어야 이겨낼 수 있다"싶어서. 매 끼니 사이에 간식이 두 번 나오는데 그때 나오는 수프나 고구마는 먹을 수 있어 그걸로 요기를 했다. 집에서 아침마다 먹던 따듯한 채소주스와 보리차가 그리웠다.
입원 2일째
아침 회진 때 교수님이 오늘 2차 항암을 진행하자고 했다. 한데 항암은 오전 바로가 아니라 전처럼 오후에나 시작하는 모양이다. 오전에 수녀님이 오셔서 루리드 성수라며 성수를 뿌리며 축원하고 기도해 주셨다. 기적을 믿어서가 아니라 그 마음과 정성이 고마웠다. 친구들 중에 여럿이 "너를 위해 매일 기도하겠다"는 말을 했다. 기도도 개신교, 천주교, 불교로 다양했지만 그들의 마음을 고맙게 받았다. 나 역시 내 친구가 나 같은 처지라면 그런 말 외에 달리 해줄 것이 없을 것 같았으므로.
오후 2시에 리툭시맙을 시작으로 항암제 투약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리툭시맙이 좀 더 빠르게 4시간 만에 끝났고 나머지는 지난번과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항암 전에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항히스타민제를 맞는데 덕분에 졸다 깨다 하며 덜 지루하게 주사를 맞는다. 한데 잠깐만 잠이 들어도 식은땀이 나서 등이 축축할 정도다. 림프종 증상 중의 하나가 자다가 나는 식은땀이라는데 나는 전에는 전혀 안 나던 땀이 치료를 시작하면서 나서 집에서나 병원에서나 자고 나면 상의가 축축해져 늘 옷을 갈아입게 된다. 그래도 2차 투약을 무사히 마쳐 감사하다.
입원 3일째
노동절 휴일이라 회진이 없는 날. 아침 일찍 흉부 X-ray를 찍었다. 혈액 검사에서 헤모글로빈 수치가 8.2로 어제보다 1 이상 떨어졌다. 당연히 항암제 부작용이다. 보통 9 이하면 수혈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오전에 적혈구 2팩을 맞았다. 환자들 사이에 빨간 피, 노란 피로 불리는데 적혈구와 혈소판을 분리해서 필요한 증상에 쓰고 있었다. 생전 처음 하는 수혈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색에 예민하다. 아드리아마이신(독소루비신)을 맞을 때는 가장 독한 세포 독성 치료제라서가 아니라 그 붉은 빛깔의 액체가 내 몸에 주입된다는 생각에 약간의 거부감을 갖게 되니 말이다. 적혈구 주입 때도, 뻔히 알면서도 빨간 물질이 연결관을 통해 내 혈관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영 뜨악했다.
내일은 퇴원이다. 지난번과 먹는 약을 같은데 바라클 5mg(항 바이러스제)이 추가되었다. 내 몸의 간염 바이러스가 활성화될까 봐 예방차원에서 쓰는 약. 주치의도 없이(물론 배정되어 있지만 얼굴 볼 기회가 거의 없으니) 지내다 보니 원래도 궁금증이 많은 나는 AI에게 내 상태에 대한 사소한 궁금증이라도 물어보며 의지하는 일이 많다. 내일 퇴원을 앞두고 뉴라스타를 맞았다. 10시가 넘어 잠이 들었는데 3시에 깨어나서 뒤척이다 아침을 맞는다.
입원 4일째
아침 회진 때 얼굴이 너무 부어 이뇨제를 맞았다.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다 퇴원했다. 버스가 아니라 기차를 타니 다행이다. 헤모글로빈을 맞아서인지 1차 때보다는 덜 지쳐서 집에 왔다. 집안 식구들은 2차 항암을 마치고 집에 온 나를 무슨 큰 전장에서 승리하고 온 장군처럼 맞는다. 기차에서 내린 나를 플랫폼까지 나와서 맞아가고 잘 준비된 내 방으로 모시고 내 입맛을 살피고..... 그저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