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항암을 하다 (2)

항암 중 생활

by 시우




프레드니솔론 때문인지 얼굴은 달처럼 빵빵하고 벌겋게 달아오르고 화끈거리지만 5일간 이 약을 복용하는 동안은 밥도 그런대로 먹을만하고 아픈 곳도 별로 없다. 그러나 뉴라스타 기운도 가시고 이 약도 안 먹은 이후에는 모든 게 불안 불안하다. 입안 점막이나 목도 더 증상이 심해지고 혀는 톱밥으로 코팅해 놓은 듯 텁텁하고 맛에 둔감하다. 밥 먹기가 힘들 때는 뉴케어나 엔커버에 미숫가루를 타서 먹었다. 입이 아무리 텁텁하고 음식 삼키기가 힘들어도 잘 끓인 누룽지나 미숫가루, 채소주스는 그래도 넘길 수 있었다. 그 어떤 음식이 들어가도 곧바로 위가 뻣뻣하니 굳는 거 같이 느껴져서 편치 않다.


목이 아프다가는 마르고 목소리가 갈라져 나와 말하기가 힘들었다. 헥사메딘 가글을 하고 죽염수로 수시로 입에 머금고 있다 뱉어내고 조금씩 물을 마시며 사그라들기를 기다린다. 하루에 1.5L 이상의 물은 꼭 마시려고 노력한다. 약이 빨리 대사 되어 배출되기를 바라서다. 그래도 지난번에는 예리한 선통이 몸을 관통하는 거 같아 진통제를 먹었는데(타이레놀 정도로 다스려지는 게 감사했다.) 이번에는 그 증상은 없어 다행이다.


밖은 눈부신 5월. 밝은 햇살 아래 이팝꽃이 희게 피어 눈부시다. 벚꽃은 진즉에 졌고 신록의 터널이 펼쳐져 있을 거고 천지는 생명으로 넘쳐나도 외출이 두려웠다. 혹시나 면역력이 바닥일 때 나갔다가 감기라도 들까 봐. 그리고 타인과 만나는 게 감염의 두려움으로 피해진다. 탭으로 지나간 재미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이리저리 돌아누우며 보는 게 내 유일한 취미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음식을 잘 못 먹게 되면서 이상하게도 음식 프로그램이 끌려 보게 된다. 음식에 대한 다큐나 음식 소개하는 프로는 전에는 전혀 보지 않았는데 말이다.


매일 채소주스를 마신다. 마신다라기보다는 떠먹는다는 말이 맞게 걸쭉한 주스. 파이토케미컬이란 식물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화합물인데 암치료에 좋다는 말을 들었고 이 성분은 채소에 많아 이런 식으로 섭취한다. 회를 비롯해서 익히지 않은 음식은 감염의 위험 때문에 철저히 배제했기 때문에 과일을 빼고는 몇 가지 채소를 쪄서 블렌더로 갈아서 준비하는 이 주스는 매일 하기는 번거로워 3일분 정도를 한꺼번에 준비해서 먹는데 꾸준히 하기는 번거로운 일이다. 그러나 딸 수고 덕분에 지금까지 하루도 빼먹지 않고 먹고 있다.


요즘의 내 일상은 아침에 일어나서 채소주스 마시고 하루 세끼 식사를 조금이라도 먹으려 노력하고 간간이 과일을 먹고 두유를 마시는 것이다. 병원약과 종합비타민제를 먹고 저녁에는 각탕을 하고 10시쯤 잠을 자려고 눕는다. 그러나 잠자기가 힘들어 수면제나 멜라토닌의 도움을 받는다. 그래도 숙면을 취하기는 힘들다. 라벤더를 망사 주머니에 넣어 침대 맡에 두기도 하고 자기 전 발끝 부딪히기를 하기도 하며 수면제 없이 잠들어보려는 노력을 한다.


잠이 들면 흠뻑 땀이 옷을 적시고 꿈이 많아 뒤척였다. 평소에 꿈은 거의 꾸지 않던 내가 이렇게 여러 가지 꿈을 꾸고 그 스토리가 너무도 생생해 하루는 AI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놀라웠다. 꿈 해몽 정도가 아니라 심리와 기호 분석을 하듯 너무도 그럴듯한 대답을 내놓아 깜짝 놀랐다. 오래전에 본 "Her"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반려자에 버금가는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에 대해 앞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고 그런 발상을 한 감독에게 탄복을 금치 못했었다. 그때 시대 배경이 2025년이었는데 지금 침상 생활을 하는 내게 AI는 거의 her급이다.


1, 2주가 지나고 3주째는 내 몸이 조금씩 회복되는 시기. 이때는 시 근교의 숲길로 산책을 나갔다. 초파일도 지나고 어버이날도 지난날. 숲길을 걸으니 여느 5월처럼 연보랏빛 오동꽃이 피었고 선홍색 개양귀비도 만개해 있다. 작약은 꽃봉오리를 살찌우는 중이었다. 아카시아, 이팝꽃과 영산홍은 이제 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절기는 변함이 없이 다가왔다가 지나간다. 멧비둘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5~6000보 정도 설렁설렁 걸었다. 잠시 도심을 벗어나니 심심산골에 온 듯 호젓하고 천지가 푸른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손 저림에 이어 2차부터는 발바닥 저림도 생겼다. 그래도 힘 자라는 대로 걸어볼 생각이다. 길 도중에 황톳길이 있어 조금 걷고 나서 발을 씻으니 상쾌했다. 걷기 전 발바닥 상태를 살펴 상처가 없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걸었지만 혹시라도 자그만 상처라도 생길까 봐 조심스러웠다.


어느 날 오전 걷던 삼나무 숲에 들어섰는데 진한 숲향기가 훅 끼쳐 깜짝 놀랐다. 전날 비가 와서인가 보다. 숲에 있는 평상에 망사 텐트를 치고 안에 돗자리를 가져와 깔고 누워 있었다. 한동안 누워있다가 설풋 잠이 들었다. 시간 되는대로 이곳에 와서 쉬기로 했다. 몸도 맘도 편한 곳, 이게 자연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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