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하기
3차 항암을 위해 상경했다. 여느 때처럼 입원 가방에 채소주스까지 몇 병 넣어서. 입원 수속을 하러 가니 오늘 비는 병실이 없어서 입원할 수 없단다. 문자 아침에 넣었는데 못 봤느냐고 담당 직원이 묻는다. 입원날은 아침 10시에 병원에서 늘 입원 안내 문자가 오는데 이미 그 시간이면 우리는 상경을 위해 움직인 시간이고 이제껏 입원실 배정이 안 된 적이 없어 신경 써 본 적이 없었다.
'아, 이럴 수도 있나?' 싶었다. 1인실에 하루 정도 있다가 내일 병실이 나면 다인실로 올 수도 있다면 50만 원 정도 하는 1인실에 일단 입원할 수도 있겠는데 기약이 없단다. 여차하면 1인실에 계속 있게 될 수도 있지만 내일 입원할 경우는 입원실 배정이 확실하다니 그리 하기로 했다. 1인실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결국 딸은 급히 오늘 밤 묵을 숙소를 예약했고 다시 입원 가방을 끌고 근처의 호텔로 갔다.
예약한 호텔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바로 앞이었다. 일단 북적거리는 곳이 아니라 좋았고 근처에 맛집이 많이 있었다. 먼저 딸과 나의 KTX 예약표를 취소하고 하루씩 늦춰서 재예약하고 짐을 풀고 나니 오늘 할 일이 없었다. 딸이 이끄는 대로 국회의사당 근처의 천변도 걷고 한강변에 앉아 찰랑거리는 강물도 보았다. 흐르는 강물을 멍하니 보다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가 생각났다. 늘 같아 보이는 이 물도 시시각각 다른 물이듯 딸과 보내는 이 시간도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다 생각했다. 매 순간이 소중했다. 딸이 옆에 있어 참 좋았다.
입원 1일째
근처의 죽집에서 녹두죽을 먹고 국회도서관을 갔다. 아직 입원수속하기까지는 시간이 남아서다. ISBN이 등록된 국내의 모든 책이 소장되어 있다는 이곳에서 딸의 책도 찾아보고 구경도 할 생각으로. 공간이 바뀌면 시간의 흐름도 바뀌는 모양이다. 책이 많고 툭 트인 이곳의 시간은 참으로 평온하고 느긋했다. 그러나 시간이 되면 나는 다시 병원으로 가서 입원 수속을 하고 입원을 해서 내 할 일을 해야 한다. 2시경 병원에서 입원실 배정받은 것을 확인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나는 병실로 가고 딸은 귀가했다.
입원 2일째
아침 회진 때 목소리가 갈라져 잘 안 나오는 문제랑 손 저림을 메모지에 써서 교수님께 건넸다. 목소리는 회복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고 빈크리스틴은 치료 보조제라 감량도 가능하니 그리 하자는 답변을 들었다. 항암을 앞두고 오전에 수액을 빨리 맞으니 화장실 가는 횟수도 늘어난다. 입원기간 내내 하루에 본 소변 횟수를 말하는 게 힘들었다. 죄다 기억해 낼 수 없으니 갈 때마다 기록을 해둬야 하는 건지.
오후 2시 예정된 항암 시작. 리툭시맙을 4시간 반 맞는 걸 시작으로 엔독산 2시간, 아드리아마이신과 빈크리스틴 30분씩으로 오늘 항암도 밤늦게 무사히 완료. 오늘도 자다 깨다 하며 탭으로 지나간 드라마 보며 주사 맞는 시간을 보냈다. 처음 항암 때는 입이 써서 준비한 레몬사탕을 물고 있기도 했으나 이후에는 그럭저럭 지낸다.
입원 3일째
아침 회진 때 담당의는 "컨디션 어떠세요?"라는 말 외에 별 언급 없이 번개처럼 지나간다. 빈크리스틴은 얼마나 감량했는지, 내가 먹는 약에서 우루사가 빠진 이유는 뭔지, 간 기능이 나아졌다는 의미인지 기타 등등 궁금한 것은 많은데, 주치의가 없으니 뭘 물어볼 수가 없다. 담당 간호사에게 주치의 면담 신청을 하기도 하는데 시간이 바로 잡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사소한 물음(?)들을 위해 면담 신청하기도 좀 거시기한 면이 있다. 의료대란 이후 그들의 일이 얼마나 많아졌는지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몸무게는 3kg 넘게 불어서 또 이뇨제를 맞았다. 얼굴은 또다시 공처럼 부풀고 화끈거리지만 그래도 물을 하루 1500cc 이상 마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니. 가능하면 밥을 많이 먹으려고 노력한다. 입은 쓰고 뻑뻑해도 가져간 김에 싸서 약 먹는 기분으로. 이곳 병실은 4인실이든 6인실이든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다들 생사의 갈림길을 지나는 중이면서도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느껴진다. 그 환우들의 심정을 병이라는 매개체로 더 여실히 느끼고 있다.
입원 4일째
오늘은 토요일이라 회진이 없으니 혈액 검사도 없다. 아침에 수액 제거하고 케모포트 닫고 퇴원 안내를 받았다. 다음 항암은 4주 후로 잡혔다. 3주째는 교수님 사정으로 근무가 없는 주라서 미룬 거다. 1주가 연장되면 내 기운이 좀 더 회복되려나?
입원해서 아침마다 그날 채혈 후에 나오는 혈액검사 결과는 늘 긴장된다. 호중구,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수치가 신경 쓰여서다. 지난번에는 적혈구가 모자라 수혈을 받았다. 호중구 수치가 올라가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다. 호중구는 혈액 내 세균이나 박테리아가 우리 몸을 침범했을 때 이를 방어하는 첫 번째 방어선 역할을 한다. 절대호중구수는 백혈구수를 측정하여 호중구의 백분율을 곱하여 계산한 수치로, 정상 호중구 수치 범위는 1800-7000 정도인데 항암 후에는 세 자리 정도에 머물기 때문이다. 최소 1500은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퇴원은 늘 오전이다. 수속 마치고 퇴원 가방 들고 택시를 불러 용산역에 가서 점심을 먹고 기차를 탄다. 점심을 먹는 동안에도 사람이 붐비면 늘 신경이 쓰인다. 먹을 때는 마스크를 벗어야 하니까 혹시 감기에 걸리거나 감염성 질환이 있는 사람과 접촉될까 봐 두려워서다. 항암 후 호중구 수치가 채 회복되지 않은 상태이니 말이다. 늘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만 코로나가 가져온 일상의 변화 때문에 마스크를 써도 요즈음은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기운도 없는데 오늘따라 가방이 무겁게 느껴져 들기에 버거웠다. 기차에서 내려서는 기차 플랫폼까지 나와준 가족 덕분에 편히 귀가한다. 가족이란 얼마나 든든한가. 나를 위해 정리한 내 방에서 준비된 저녁을 먹고 쉬다가 수면제 반알을 먹고 잠을 청한다. 그냥 모든 게 감사하다. 아직은 모두가 무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