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항암 후의 일상
전에 "사람이 평생 하는 경험의 양은 꼭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찍 하거나 늦게 또는 몰아서 당하거나 서서히 당하거나의 차이라는 것. 제 때에 할 경험을 못하면 나중에 나이 들어 추하게 하게 된다는 말도 있다. 살다 보니 '그 말이 틀리지 않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내가 그 말을 실감한다.
아이들 임신 중에 난 거의 입덧을 하지 않았다. 소화가 안 되거나 울렁거려 먹지 못한 적은 있어도 드라마에서 흔히 보듯 뭔가가 먹고 싶어 남편이 부지런히 사 나르는 일은 없었다. 한데 요즘 내가 그 일을 시키고 있다. 입에 음식만 들어가면 죄다 소태같이 써서 먹기 어렵거나 때로는 쇠(금속성의) 맛이 나서 먹기 힘들다. 그러다가 뭐든 입맛 당기면 말을 하라는 채근에 '이걸 먹으면 좀 들어갈 것 같은데...' 싶어 말을 하면 늙은 남편은 군말 없이 사 온다. 그러나 마치 입덧하던 새댁이 그 사이 금세 입맛이 변해 사 온 음식을 물리치듯 내가 그러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유일하다 싶게 잘 먹던 OO회관 설렁탕을 오늘은 냄새가 역해서 못 먹거나 들깨 옹심이를 먹고 싶다가도 음식을 앞에 두고는 이내 마음이 바뀐다. 또 단백질 보급에 좋다는 포슬포슬한 황태구이가 먹고 싶어 수시로 사다가 바치면 한동안 잘 먹다가는 나중에는 손도 대기 싫어지고... 이런 식이다. 마음으로 미안해하다가도 젊어서 나 임신 때 남편이 신경 쓸 일 없이 지났던 일을 지금 시키나 싶기도 하다.
그뿐인가. 내 시간을 가지다가 부르면 그제야 식탁 가서 밥 먹고, 또 밥을 다 먹고는 일어나 그냥 쓱 일어나 나가는 일. 끼니 꾸릴 걱정에서 놓여나는 일 등등.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부엌에는 들어오지 말라는 딸의 말에 못 이기는 척 그 맛을 즐기고 있다. '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시대의 남편들은 평생을 이렇게 살았으니 익숙해서 그 고마움을 모를 것이다라는 생각도 든다. 평생 직장일을 할 때도 못 누리던 호사를 본의 아니게 지금 누리는구나 싶다.
나 역시나 요즘에는 거의 보지 않던 TV드라마 몰아보기를 한다. 몇 년 전 핫했던 드라마를 나만 안 봐서 친구들 대화에 외톨이가 된 적이 있던 그런 드라마들을 좌우로 번갈아가며 누워서 본다. 드라마에 영화에 먹방에... 아무런 생각 없이 피동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잘하는데 이상하게도 능동적 작업인 책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나를 보며 문득 칼세이건이 생각났다.
코스모스를 쓴 칼 세이건도 혈액암을 앓았다. 골수이식까지 했지만 결국 그 병으로 인해 이 지구를 벗어났다. (30년 전의 일이다. 혈액암 치료법도 그때와 지금은 많은 차이가 있으리라.) 그의 아내 앤 드루얀이 쓴 코스모스의 서문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다. "이 책은 병마와 싸우는 마지막 기간 중에 그가 쓰고자 했던 두 책 중의 하나였다. 의사는 골수 이식이 진행되는 몇 개월 사이에 책을 두 권이라도 읽는 환자를 본 적이 없다는 말을 했다. 하물며 집필은 이야기해서 더 무엇하겠는가?"
가벼운 수필집 한 권을 처음 입원 때는 가져갔으나 이후로 무겁기만 하고 보지 않는 책은 다시는 가져가지 않게 되었다. '하루라도 책을 손에서 놓으면 가시가 돋을 것 같냐'는 말을 듣던 나였지만 이런 한가한 때에 책이 안 읽히는 것을 보며 이상하다 생각했다. 그러나 치료 중에 책 읽는 환자를 본 적이 없다는 칼세이건의 담당 의사의 말을 떠올려본다. 새삼 칼 세이건 그가 얼마나 특별한지를 다시금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