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바뀐 일상 (2)

3차 항암 후의 일상

by 시우

남편은 하루만 산행을 안 해도 발바닥에 가시가 돋을 사람이다. 나는 주로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작업 즉 글을 읽거나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하니까 남편과 동행할 일이 별로 없었다. 산행에 동행을 해도 그가 산에 올라갔다 올 동안 난 산 초입 나무 그늘에 앉아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러나 항암 중에는 몸을 움직여줘야 할 거 같아 남편의 도움을 받는다. 도시 안이나 근교의 사람들 만나지 않고 산책할 만한 곳을 죄다 꿰고 있는 남편이 이곳저곳 데리고 다닌다. 기운이 있을 때는 다소 경사진 곳이 있는 산책로를 걷고 기운이 없을 때는 삼나무 숲 사이에 있는 평상에 모기장 텐트를 치고 누워서 쉰다. 마침 신록의 계절이라 갑갑한 아파트에 있는 거보다 훨씬 좋았다.


오늘도 그를 따라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삼나무 숲으로 갔다. 그는 매트에 접이식 텐트까지 들고 앞선다. 사람들이 잘 지나지 않는 곳에 있는 평상을 찾아 텐트를 치고 안에 매트를 깐다. 모기장 텐트는 멀리 오가는 등산객들 시야 차단 그리고 모기나 벌레 방지의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 그는 탠트 안에 물병과 과일을 깎아두고 한 바퀴 산을 돌고 오겠다며 나간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라고 당부를 하고는. 누워 있자니 멀리서 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가 한가롭게 들리고 숲의 향기가 은은하다. 청설모가 다가와 빤히 눈을 맞추다 가기도 한다.


시공간은 느끼는 사람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곳에서도 사람마다 느끼는 것은 죄다 제각각일 것이다. 시간의 길이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고 있으니.


아침에는 5시면 어김없이 잠에서 깬다. 그보다 더 일찍 일어나는 근처에 사는 동생은 여명이 막 지난 5시 20분이면 차를 가지고 우리 집 앞으로 온다. 동생과 함께 15분 거리의 도심에 있는 공원 삼나무 숲으로 간다. 낮에도 어둑시근할 만큼 아름드리 삼나무가 우거진 곳이다. 동생은 접이식 의자와 새벽에 만든 따듯한 채소주스 외에 모기 퇴치 패치를 준비해 온다. 5분만 걸으면 삼나무숲 가장자리에 닿는다. 그곳에 접이식 의자를 펴고 둘이 앉아 난 채소 주스를 마시고 동생은 내 겉옷 위에 모기 방지 패치를 더덕더덕 붙인다.


그저 둘이 앉아서 말없이 숲 향기를 마시며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뿐. 그 사이에도 동생은 내게 모기가 달려들까 봐 노심초사다. 검은 산모기는 독하다. 혹시라도 모기에 물리면 면역력 약한 언니가 어찌 될까 봐 동생은 우산에 모기장을 내려뜨리는 기발한 장치를 만들어오기도 했다. 우산처럼 쓰는 이동식 모기장 말이다. 동생과 나의 새벽 외출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내가 열이 나서 입원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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