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동생 그리고 고마운분들

by 시우




간호간병인


입원해서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축축한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땀에 젖은 옷을 입고 있자면 선득거려 잠시도 있을 수 없다. 아침에 갈아입으려고 늘 환자복을 준비해 두기도 그래서 아침마다 잠이 깨면 부탁을 하게 되는데 아무리 간호 간병 병동이라 해도 한창 바쁜 시간에는 부탁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곧바로 먼저 살펴주는 분들이 있었다. 사소한 일이나 내게는 참 고마운 일이었다.


이 병원의 간호사나 조무사 분들은 좋은 품성을 가진 분들이 참 많았다. 직업을 통해 덕을 쌓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사소한 행동에도 그 사람의 성품은 드러난다. 무심한 듯 배려하는 소소한 것들이 입원한 환자들에게는 얼마나 도움이 되고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이런 것을 좋은 품성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물론 일로서 숙달된 면도 있겠지만 일로서 하는 것과 따듯한 마음이 실린 것은 금방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동생


다른 환자에게 방해가 될까 봐 병실 내에서는 통화를 피하고 탭도 이어폰을 끼고 듣는다. 동생에게 전화가 와 환자 휴게실로 나가 받으니 볼일로 서울에 올라가는데 혹시 집에서 가져다줄 것이 있는지, 따로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었다. 이미 충분하니 되었고 나는 면회도 안 되니 문병은 오지 말라고 했다.


늦은 오후 병원에 와 있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면회는 안 되니 인적이 드문 아래층 복도에 내려가 잠시 만났다. 내가 감염 위험 때문에 멸균식만 먹는 것을 알지 못하는 동생은 이 언니 먹으라고 백화점에서 전복죽과 너트 종류, 동치미와 콩자반 게다가 보쌈까지 사들고 왔다. "언니가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해야 좋대서 사 왔는데 두고 먹어."


보쌈은 그 자리에서 돌려보내고 나머지는 어쩔 수 없이 들고 올라왔다. 하지만 생수도 그날 따놓은 물병은 다음날 먹지 않고 그 어떤 음식도 그날 안에 조리된 멸균된 것만 먹는데 외부에서 반입한 콩자반이나 동치미를 어찌 두고 먹을 수 있겠는가. 저녁으로 전복죽만 입이 써서 조금 먹고 아깝지만 남은 음식을 죄다 버릴 수밖에 없었다. 동생이 먹어보니 맛있어서 죽집에 부탁해서 따로 넉넉히 사 온 것이라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난 감염에 대한 공포가 가득한 상태였다. 넛트 종류도 먹으면 좋지만 혀가 톱밥 씌워놓은 듯 말라붙어 촉촉한 것 말고는 뻑뻑해서 씹고 넘길 수 없었다.


동생은 키가 훤칠한 멋쟁이다. 매일 전화로 안부를 묻고 퇴원한 후에는 집으로 수시로 음식을 챙겨 보내오는 동생은 늘 든든하고 고마웠다. 그런 애가 서울에까지 올라와 어두운 병원 복도 의자에서 주섬주섬 음식곽을 늘어놓으며 먹어보라고 권하던 모습을 생각하니 자매라는 게 무엇인지 가슴이 울컥했다. 왕복 7시간 동안 단 5분의 몰래하는 면회를 위해 오가며 어떤 마음이었을지......



브런치 작가


글을 쓰는 사람들은 서로의 글로 이미 친숙해서 만나기 전에도 친밀함을 느낀다. 모르는 것은 늘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어야 안심이 되는 나는 림프종 판정을 받고 제일 먼저 인터넷을 뒤졌다. 환우들 모임 카페도 들여다 보고 여기저기 논문이나 글도 읽던 중에 브런치에 올라온 악성 림프종에 관한 글을 접했다.


혈액암 병동에 현재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 브런치 작가분의 글이었다. 그리고 항암치료를 하면서 브런치 글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하기로 내가 치료받는 병동에 근무하는 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 항암을 하던 중에 간호사분에게 물어봤다. 혹시 이 병동에 브런치에 글 쓰는 간호사 작가분이 있는데 아시냐고. 다행히 그분의 도움으로 퇴원 얼마를 남겨두고 만나게 되었다.


"저를 찾으시는 분이 맞으세요?"라며 나타난 분은 내 간호를 담당하기도 했던 서ㅇㅇ 간호사 분이었다. 친절하고 사려 깊은 간호사라는 생각을 했던 분이었다. 참 반가웠다. 만나기에는 내 꼴이 좀 이렇지만 어쩌랴, 이런 인연도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삶의 한 때 이렇게 지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는 것을.


대학원 논문 쓰느라 바빠서 브런치 글을 못 올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으며 "밖에서 보고 쓰는 글보다는 환자가 쓰는 글이 더 도움이 돼요."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말이 내가 망설임 끝에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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