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차 항암을 하다 (2)

그래도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by 시우




입원 11일째


열은 내린 거 같다. 하루 두 차례쯤 심한 오한이 오고 난 후 열이 치솟았는데 오늘은 점심때까지 잠잠하다.

호중구 수치도 오르지 않고 혈소핀이 떨어져 또 맞았다. 가져온 엔커버도 다 떨어져 궁여지책으로 환자용 단백질 보충제 같은 음료를 사서 열심히 먹는다.


후배의 전화를 받았다. 다른 일로 참석해 달라는 전화였는데 내가 참석할 수 없다는 말을 하다가 촉이 빠른 후배가 내 상태를 금방 눈치챘나 보다. 그러더니 그렇지 않아도 늘 다감하고 간곡한 어조의 후배는 "언니, 내가 아침에 정화수 떠 놓고 비는데 앞으로는 언니 건강을 제일 먼저 빌게요."라는 말을 한다. 순간 갑자기 목이 메더니 울음이 훅 터져 나왔다.


바로 수습하고 통화를 끝냈다. 평소 눈물이 안 나서 울기도 힘들고 운 적이 별로 없는데 왜 순간에 울음이 터졌을지 생각해 봤다. 아마도 정화수라는 말에 우리 외할머니가 떠올라서가 아닐까 싶다. 늘 하루를 정화수 한 사발로 시작하시던 우리 할머니. 세상에서 나를 그리도 아끼고 귀히 여기시던 분.


후배가 동화책을 냈는데 '작가와의 만남'이 내일이라고 오랜만에 그곳에서 만나자는 지인의 연락이 왔다. 좀 멀리 있으니 찬바람 날 때나 보자고 하고 통화를 끝낸다. 이럴 때 나가서 오랜만에 그리운 얼굴들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면 좋으련만 어쩔 수 없는 경우라는 게 이런 것인가 보다


이제 열이 그쳤나 싶었는데 오후에 다시 38도가 넘는 열과 전신통으로 괴롭다. 해열진통제 먹고 밥은 반의 반도 못 먹어도 배고픈 줄을 모르겠다. 기운은 하나도 없고. 사둔 물도 다 떨어져 가고 환자용 단백질 음료도 이젠 없고. 밤에 지하 편의점에 물 사러 내려갈 기운도 없다.


후배 책의 북토크 행사 문제로 또 다른 후배의 전화를 받는다. 그냥 평소처럼 이야기하고 마친다. 세상은 나와 상관없이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다.

오후 들어 열도 다소 내리고 통증도 준다. 내일은 호중구 수치가 좀 올라갈까? 간절하게 내일을 기다린다.



입원 12일째

새벽 2시에 다시 고열과 두통. 해열제 주사는 1시간 후에나 효과가 난다.

아침에 호중구 촉진제랑 혈소판을 또 맞았다. 아침 7시 그리고 오후 4시에 다시 두통이 와서 해열진통제를 또 쓴다. 그래도 오늘은 호중구가 1000을 넘어가 작은 희망이 보인다.



입원 13일째

새벽 4시에 다시 두통과 열 때문에 해열제 맞는다. 두통이라고는 모르던 내가 요즈음은 늘 두통이 경미하게 있어 이게 고질화 될까 봐 두렵다. 오후에도 또 열과 두통이 왔는데 약이 효과가 없어 연거푸 두 차례나 해열진통제를 맞았다. 항생제는 하루 세 번 꾸준히 맞는데... 호중구도 백혈구도 올랐는데 계속 열이 나니 슬슬 두려워진다. 또 다른 어떤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고 당하는 것은 더 두렵다.



입원 14일째

1주일 입원 계획이 벌써 12일을 지나고 있다. 입원 준비한 물품도 소진되었고 집에 가고만 싶다. 그래도 병원이 안전하니 어쩔 수 없다. 열은 정확하게 6시간 간격으로 오르는 거 같다. 한데도 아침 회진 때 "백혈구도 많이 올랐으니 곧 좋아지시겠네요, "라고 담당 교수님은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혈액 배양결과 다른 균은 없다니 패혈증은 아닌가 싶어 그나마 안심이다. 이제 열만 잡히면 되겠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다. 내가 지닌 몸조차도 내가 어찌할 수 없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순간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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