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의 반응
내가 암이란 것을 알게 되고 치료를 시작하면서 고민한 부분 중의 하나가 주위사람들과의 관계였다. 내 몸의 상태를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직장이야 쉬쉬할 문제도 아니고 내 일을 감당할 문제가 있으므로 당연히 알렸고 "이 사실은 비밀로 해주세요."따위의 말을 하지 않았으니 이내 전 직원이 다 알 거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나머지 주기적으로 만나는 친구나 지인들에게는 어쩔 것인가가 잠시 고민이었다.
전에 '누구누구가 암 이래.'라는 말을 할 때는 목소리를 낮추거나 심각한 톤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것 같아 좀 꺼려지기도 했다. 내가 꺼려지거나 동정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이 나이에 친구란 무엇인가, 그런 정도를 공감하고 나눌 사람이 아니라면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먼저, 마침 동창회 일을 맡아달라고 부탁해 온 동기동창에게 문자로 알렸다. 내가 림프종 진단을 받아 상당기간 치료를 하느라 일을 맡을 경황이 없으니 사양하겠노라고. 그 친구는 "그럼 그럼, 당분간 애쓰겠네. 우리 나이에는 건강이 제일 중요하지. 잘 치료받고 다음에 보자~!"라는 답장을 남겼다. 나중에 알고 보니 림프종에 대해 잘 몰랐던 그 친구는 염증 정도로 생각했었단다.
매달 만나는 친구들에게도 모임에 못 나가는 이유를 문자로 설명했다.
"우리 나이는 건강이 더는 좋아질 게 없으니 고쳐가며 다독이며 살 때지. 그 어떤 병도 놀랍지 않을 일."이라며 잘 치료받고 완치하기를 기도하겠노라는 전화와 문자가 왔다.
어찌 알았는지 잘 만나지 않던 친구에게서도 너를 위해 새벽 미사(기도) 갈 때마다 기도할 테니 너도 꼭 기억하고 힘내라."는 등등의 인사를 받았다.
불교, 기독교에 천주교를 다 망라한 기도발이라서 어느 구름에 비가 내려도 다 좋을 수밖에 없게 생겼다.
그러나 일부 친구들은 뭐라 위로의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몹시 힘든 상태라 전화 받기를 싫어하지 않을까 싶어, 전화하기가 겁나서 등등의 이유로 전화도 못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는 암이 발병한 사실을 숨기며 쉬쉬하는 분위기가 우세한 듯하다. 뭘 잘못해서 암에 걸린 것도 아닌데 마치 죄인처럼 말이다. 그러나 서양의 경우 그들은 오히려 자신의 상태를 가감 없이 알리는 태도를 취하는 것 같다. 마치 당뇨나 고혈압이 걸린 경우처럼 거리낌 없이. 치료 과정이 힘들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그들의 암에 대한 인식도 그리 어둡지 않고.
내가 병원의 커튼 동굴 안에 힘없이 누워 있을 때 "이제야 알았는데 좀 어떠냐"라며 안부를 물어온 친구들은 아주 용감하게 전화를 건 거라는 것을 안다. 아니면 림프종에 대해 잘 알거나.
내 경우는 자주 전화해서 안부도 묻고 내 이야기도 들어주고 일상도 나누는 친구가 더 좋았다. 고마웠고.
나도 앞으로 발병한 친구가 생긴다면 스스럼 없이 다가가게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