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아침에
여름이구나 했더니 이내 좀 늦은 장마로 이어져 비가 원 없이 온다. 새벽 일찍 눈이 떠져 애써 잠을 청하다가 그냥 나와 앉아 어제 읽다만 모모를 다 읽었다. '미하엘 엔데' 같은 동화 작가는 어떤 영감에 의해 글을 쓰는 것 같다. 후기에 붙여진 그의 말처럼 정말 어떤 깨달은 이가 노인의 형태로 다가와 그에게 이런 경고를 하고 간 것인지도 모를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1970년에 경고한 그 회색 일당의 작업이 50년이 지난 지금 이미 성공을 거두고 있는 듯 보인다. 처음 이십 년도 더 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스쳐지나 그저 잊혔었는데 지금 이 책을 읽는 내 느낌은 새롭고 남다르다. 마치 지옥의 묵시록을 대하는 느낌이랄까 지금 내가 느끼는 허기가 이 책에서 그대로 묘사되고 있었다. 나 역시나 이미 내 생명의 꽃을 저당 잡히고서 어떤 가당찮은 속도에 맞추어져 다람쥐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가책이 책을 읽는 내내 일었다. 오래된 미래, 어린 왕자, 스콧 니어링의 책을 읽을 때 느꼈던 감동 그리고 매트릭스를 봤을 때의 느낌 전체가 다시 내 안에서 합쳐지고 생생한 감동으로 되살아나 날 다시금 들여다보게 한다.
“느끼지 못하는 시간은 그대로 사라져 버린다.”는 이야기는 내가 요즘 생각하는 “지금 여기서 살기”의 문제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있는 “현재의 바로 이 순간”이 내 시간 그리고 삶의 전부다. 나머지는 그저 과거나 미래의 허망한 개념일 뿐. 이것은 안개인 듯 일순간의 환영과 같아 흩어지면 그만인 것. 어떤 관념이나 이론, 해석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생생한 순간을 느끼며 살기” 이외에는 그 어떤 대안이 없다.
생각이나 훈습이 아니라 온몸으로 감각으로 전 존재로 살기!! 아마도 이것이 신과의 교감이요 감사이며 내 식의 기도일 것이다.
향꽂이의 향은 두 대 째 다 타들어가 꺼졌어도 아직 향은 은은하고 창밖의 빗소리는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