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없는 무덤 없듯, 사연 없는 와인 없다.
율리시스 발데즈(Ulises Valdez)는 1960년대 후반, 멕시코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우리네 예전 풍경처럼, 집안 형편은 좋지 않은데, 아이들은 8명이나 되는 그런 가정이었다. 그가 8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의 어린 생활은 폭력과 마약으로 얼룩졌다.
율리시스는 16세가 되던 해에 인생의 모험을 감행하였다. 모든 영웅들이 자신의 신화를 찾아 여행을 떠나듯이, 그도 자신의 꿈을 위해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였다. 3번의 시도 끝에 그는 캘리포니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캘리포니아는 예전 서부 개척 시대의 골드 러시처럼, 꿈을 찾아 사람들이 와인 업계로 몰려들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곳에서 포도밭 잡부로 시작한 율리시스는 그 만의 성실함과 정직함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 갔다. 밑바닥에서 시작하여 점점 더 많은 경력을 쌓았고, 어느 순간 그는 포도밭의 중견 관리자로 승진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00명이 넘는 직원과 1,000 에이커의 광대한 포도밭을 관리하는 자신만의 Winery Management 회사를 차릴 수 있었다. 이 회사는 Arista Winery, Ram’s gate, Rivers-Marie, Three sticks, Kosta Browne 등 수많은 와이너리의 포도밭을 관리하고 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율리시스는 포도밭을 구매하여 자신만의 이름을 내건 Valdez Family Winery를 설립하고 와이너리의 오너를 겸하게 되었다.
그는 Mark Aubert, Paul Hobbs, Jayson Pahlmeyer 등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캘리포니아의 토양을 가장 잘 이해한다’는 평가를 받는 최고의 포도밭 관리자가 되었다. 와인 업계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산 증인이 된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는 2018년 49세의 나이에 본인 경력의 정점에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최고의 와인 관리자를 잃은 캘리포니아 와인 업계는 그의 빈자리를 아쉬워하며 그의 업적을 추모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메리칸 드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Angelica, Ricardo, Elizabeth, Ulises Jr. 그의 자녀들이 포도밭 관리 회사와 와이너리를 물려받았다. 앞으로 이들 멕시칸 4남매는 어떻게 아버지의 꿈을 이어갈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 캘리포니아 소노마 지역의 와인을 마셨다.
이 와인은 바로 오늘 스토리의 주인공인 율리시스가 오베르 와이너리의 오너인 마크 오베르(Mark Aubert)와 의기투합하여 만든 와인이었다. 라벨에 보이는 UV Vineyard는 와인을 생산한 포도밭의 이름이고, 이는 바로 Ulises Valdez의 약자이다. 율리시스가 이 와인에 얼마나 깊이 관여했는지 알 수 있다.
오베르 와이너리는 샤도네이를 잘 만드는 곳으로, 최근에 주목받고 있다. 마카상(Marcassin), 콩스가드(Kongsgaard), 키슬러(Kistler), 피터 마이클(Peter Michael)로 이어지는 캘리포니아 컬트 샤도네이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이날 마신 와인은 샤도네이는 아니었고, 피노누아로 만든 레드 와인이었다. 샤도네이가 아닌 아쉬움은 첫 모금에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마치 부르고뉴 유명 도멘의 그랑크루 와인처럼 집중감이 돋보이는 와인이었다. 이 와인의 농축미는 15.3%나 되는 알코올 도수로도 알 수 있다. 평균적으로 피노누아 와인은 13~14%의 알코올 도수를 갖는다.
시음해 보니 붉은 과일과 붉은 꽃의 향기가 우아하고 세련되게 다가왔다. 탄닌은 부드럽고 밸런스가 잘 맞는 훌륭한 와인이었다. 특히, 맛이 너무 농밀하여 시음 후반부에는 피노누아로 만든 것인지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든 것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와인의 좋은 점은 모든 와인이 저마다 스토리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와인은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마시지만, 귀로도 듣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스토리가 와인의 순간을 더 즐겁고 풍성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