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젊은이들에게 가장 핫한 화이트 와인
화이트 와인은 샤도네이(Chardonnay),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리슬링(Riesling) 등의 품종으로 주로 만든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품종은 샤도네이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몽라세(Montrachet)나 뫼르소(Meursault) 같은 명품 화이트 와인들은 대부분 샤도네이로 만든다. 샴페인도 샤도네이 품종을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요즈음 유럽의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핫한 화이트 와인 품종은 아르네이스(Arneis)라고 한다. 아르네이스 와인을 많이 만드는 비에티(Vietti) 와이너리의 오너 루카 큐라도 비에티(Luca Currado Vietti)는 말한다. 사람들이 아르네이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보다 풍부하고 미네랄 느낌이 뚜렷하며, 샤도네이보다는 산뜻하기 때문이다”라고.
아르네이스는 이태리 북서부 피에몬테(Piemonte)의 로에로(Roero) 지역에서 주로 재배한다. 피에몬테는 레드 와인인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로 유명한 지역이다. 따라서 주로 재배되는 품종은 네비올로(Nebbiolo)이다.
아르네이스는 이런 네비올로를 보호하기 위해 포도밭 외곽에 소량 심어지던 품종이었다. 아르네이스의 강한 향이 새와 곤충으로부터 네비올로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르네이스는 점차 생산량이 줄어 1960년대에 들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런 아르네이스를 부활시킨 것이 바로 비에티 와이너리이다.
요즈음 코로나로 인해 저녁 약속이 거의 없다. 그래서 와인 한 병을 따면 일주일에 걸쳐 한두 잔 반주로 마시게 된다. 얼마 전에 이렇게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마신 와인이 바로 Vietti Roero Arneis 2018이었다.
첫 느낌은 산뜻하고 마시기 편하다는 것이다. 아르네이스 품종의 특징은 샤도네이와 소비뇽 블랑의 중간쯤으로 느껴지는데, 샤도네이에 좀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리고 샤도네이 중에서도 오크통 숙성을 하지 않은 미네랄 톡톡 터지는 샤블리(Chablis)가 연상된다. 전반적으로 맑고 깨끗한 느낌이어서 음식과의 매칭도 쉬울 것 같다. 산도도 미디엄 이상 되고, 주로 하얀 꽃과 감귤류 향이 느껴진다.
레스토랑에서 화이트 와인을 주문할 때 피노 그리지오가 보이면 웬만하면 그걸 주문하는 편이다. 가격대가 합리적이고 퀄리티도 편차가 적은 장점이 있어서다. 게다가 맛과 향도 복잡하지 않고 깔끔해서 음식과의 매칭도 좋은 편이다. 그런데 아르네이스를 마셔보니, "피오 그리지오보다 풍부하고 미네랄 느낌이 뚜렷하다."라는 비에티 와이너리 오너의 말에 공감이 간다.
‘아르네이스’라는 이름도 참 예쁘다. 게다가 포도밭 외곽에 서서 다른 포도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르네이스’ 하면 나는 판타지 소설에 여신이나 여전사로 등장하는 아름답고 강한 캐릭터가 연상된다. 앞으로 와인 리스트에 아르네이스가 보이면 그걸 주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