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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챨리 Nov 29. 2020

보졸레는 억울하다

보졸레 누보와 일반 와인의 차이점


지난 추석에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저녁 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 프랑스 보졸레 (Beaujolais) 와인을 한 병 가져갔다. 보졸레 하면 먼저 '보졸레 누보'가 떠오른다.



보졸레 지역의 포도밭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에 전 세계에서 동시 출시되는 햇와인. '사랑하는 사람들과 햇와인을 맛보세요!' 2000년대 초반에는 이런 마케팅이 성행했었다. 보졸레 누보 출시를 즈음하여 각종 이벤트와 파티가 열렸고, 보졸레 누보 가격이 십만 원을 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진실이 받쳐주지 않는 마케팅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람들이 햅쌀이나 햇과일은 좋은 것이지만, 햇와인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보졸레 지역의 다른 와인들까지 도매금으로 차별을 받는 느낌이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보졸레는 부르고뉴(버건디)와 론 지방의 중간에 위치한다. 보통의 부르고뉴 레드 와인은 피노 누아(Pinot Noir) 품종을 사용한다. 그러나 보졸레 지방의 화강암 토질에서는 피노 누아가 잘 자라지 못한다. 그래서 가메(Gamay)라는 포도를 재배하여 와인을 만든다.

보졸레 지역의 와인은 크게 세 개의 등급으로 나뉜다. 보졸레, 보졸레 빌라쥐 그리고 10 크뤼(Crus)의 와인들이 있다. 와인의 품질은 보졸레가 가장 대중적이고, 보졸레 빌라쥐가 조금 고급이고, 10 크뤼의 와인들은 장기간 숙성이 가능한 고품질의 와인들이다.     


- 보졸레(Beaujolais)

- 보졸레 빌라쥐(Beaujolais Villages)

- 10 Crus

: 생따무르(Saint Amour), 쉐나(Chenas), 쉬르불(Chiroubles),

: 물랭아방(Moulin a Vent), 플뢰리(Fleurie), 모르공(Morgon),

: 레니에(Regnie), 브루이(Brouilly), 꼬뜨드브루이(Cotes de Brouilly)     




그럼, 보졸레 누보란 무엇일까?  보졸레 누보란 그 해 수확한 포도를 갖고 특수한 방법 (탄산가스 침용법)으로 단기간에 만든 햇와인이다. 보통 와인 라벨에 누보(Nouveau) 또는 프리뫼르(Primeur)라는 단어가 있으면 그게 바로 햇와인이란 의미이다.  그럼 보졸레에만 누보가 있을까? 아니다. 프랑스에는 이렇게 그 해 수확해서 그 해 팔 수 있는 와인이 50여 개나 더 있다고 한다.


보졸레 누보는 11월에 출시하여 다음 해 부활절(4월)까지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 왜냐하면 부활절이 지나면 보졸레 누보가 아닌 보통의 와인들, 즉 보졸레, 보졸레 빌라쥐 그리고 10 크뤼의 와인들이 출시되므로 시장에서 누보가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품질 면에서는 누보가 경쟁이 되지 못하지만, 누보는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그 해의 수확을 기념하며 가족들, 친구들과 모여 즐겁게 벌컥벌컥 마시는 편한 와인. 김치도 잘 익힌 묵은지가 맛있지만, 김장하면서 바로 쓱쓱 비벼 먹는 겉절이도 맛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요즘 인기 없는 보졸레 누보도 억울하고, 보졸레 누보와 함께 도매금으로 차별받는 보졸레의 다른 와인들도 억울하다.




Morgon Cote Du Py Mommessin 2016



오늘 마신 몽메상의 모르공은 10 크뤼(Cru) 중의 하나인 모르공 마을에서 만든 와인이다. 부르고뉴 피노 누아 와인보다는 조금 진하고 남성적인 스타일이었다.

첫 향에서는 스코틀랜드 싱글 몰트에서 나는 피트(peat) 향이 나서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농축된 붉은 과일, 감초, 초콜릿, 먼지 등의 기분 좋은 향이 복합적으로 올라왔다. 탄닌은 강하지만 부드러워, 지금 마셔도 좋고 조금 더 숙성해도 좋을 것 같다.

이만한 퀄리티의 부르고뉴 와인을 마시려면 아마도 두세 배의 가격을 지불해야 하지 않을까? 보졸레 누보 때문에 도매금으로 넘어간 보졸레 와인은 억울해 하지만, 나는 가성비 좋은 와인을 즐길 수 있어서 행복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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