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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챨리 Dec 06. 2020

지리산 꼭대기에서 샴페인 마셔봤어?

밤하늘의 별을 마시다.


와인에 빠져들면 생활 속 어디에나 와인이 등장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함께 하는 와인은 기본이다. 여행을 갈 때도 와인이 빠져서는 안 된다. 달리기를 하고 나서도, 골프를 칠 때도 와인을 마신다. 주변 사람들은 별나게 나를 보지만, 내게 와인은 생활의 동반자이다.


그리고 산행에서도 와인이 빠지면 섭섭하다. 힘들게 산을 올라 정상에서 마시는 시원한 와인 한잔. 그 와인이 기포 팡팡 터지는 상큼한 샴페인이라면 내게는 최고의 사치가 된다.


나는 산을 좋아한다. 특히 지리산을 좋아한다. 지리산 종주는 6번 정도 했고, 1박이나 당일 산행까지 포함하면 스무 번 가까이 간 것 같다. 지리산의 행복한 추억들 속에서도 와인과 함께 했던 기억은 각별하다.



어느 가을 지리산 풍경




지리산 종주는 보통 노고단에서 출발해서 백무동이나 중산리로 하산한다. 노고단에서 시작하는 산행의 첫머리는 언제나 설레고 활기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말이 없어지고 숨이 가빠온다. 무거운 배낭이 어깨를 짓누르고 다리 근육이 뻣뻣해진다. 첫날의 가장 어려운 코스는 연하천에서 형제봉을 지나 벽소령까지 가는 구간이다. 이미 지친 몸으로 가파른 오르막과 더 가파른 내리막을 지나야 한다. 고작 1km 남았다는 벽소령 산장이 1시간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는 마의 구간이 이 곳이다.


이렇게 힘들게 도착한 벽소령 산장에서의 저녁식사는 지리산 종주의 백미 중의 하나이다. 밥은 달고, 오늘 하루 힘들었던 추억이 최고의 반찬이 된다. 거기에 힘들게 배낭에 넣어 왔던 와인. 몇 번이나 버리고 갈까 고민했던 와인이 이제는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귀한 존재가 된다.




산에서  마시는 와인은 취하지 않는다




운 좋게 밝은 달까지 차오르면 행복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벽소 명월’이라 해서, 지리산 능선들을 배경으로 벽소령에서 바라보는 달의 모습은 지리산 절경 중의 하나이다. 어느 해 종주의 첫날밤, 우리는 운 좋게도 벽소 명월을 배경으로 와인을 마실 수 있었다. 돌아가고 싶은 내 인생의 한 장면이다.


종주의 둘째 날은 코스가 어렵지 않다. 게다가 지리산 종주의 최고 절경인 연하선경이 펼쳐진다. 이 세상 풍경 같지 않은 지리산 능선의 아름다움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장터목 산장에 도착한다.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한 베이스캠프가 이곳이다.




지리산 최고의 절경, 연하선경




장터목에서의 저녁 식사에도 와인이 빠질 수 없다. 다른 등산객들은 지리산 천왕봉 바로 아래인 이곳까지 와인을 들고 온 우리를 별나게 본다. 그러나 황금빛 석양과 찬란한 별무리를 볼 수 있는 이곳에서 마시는 와인은 하나의 예술이 된다. 동페리뇽 수도사가 자신이 만든 샴페인을 마시며 했던 “형제님, 나는 밤하늘의 별을 마시고 있어요.”라는 말이 천왕봉 정상을 바로 앞둔 이곳 장터목 산장에서 현실이 된다.




장터목 산장에서 바라본 황금빛 석양




하늘과 가까워 더 잘 보이는 장터목 산장의 밤하늘



지리산 종주의 하이라이트는 천왕봉 일출이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지리산 일출답게 나도 여러 번의 종주에도 불구하고 일출을 보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마지막으로 갔던 종주에서 드디어 일출을 볼 수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구름의 바다를 배경으로 빨갛게 떠오르던 천왕봉의 일출. 샴페인과 함께 해 더 각별했던 일출이었다.



새벽부터 일출을 보기 위해 천왕봉에 오른 등산객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




지리산 천왕봉 샴페인 정상주



코로나로 인해 요즈음 지리산 산장들도 다 폐쇄되었다고 한다. 어서 코로나가 지나가 다시 한번 지리산 정상에서 와인을 마실 날을 간절히 꿈꿔 본다.


(물론 와인 병은 배낭에 고이 넣어 산 아래로 가져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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