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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양 Sep 29. 2015

<우아한 거짓말>

우리가 잃어버린 실타래들

영화는 현숙(김희애)의 가족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현숙은 9년 전 사고로 남편을 잃었지만 꿋꿋이 살아가는 두 딸의 엄마다. 첫째는 만지(고아성)는 매사에 까칠하지만 속이 깊고 진중한 고등학생으로 공부를 잘하면서도 일찍이 대학 갈 마음을 접었다. 반면 천지(김향기)는 애교가 많고 엄마의 속을 잘 알아주지만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다. 아침 식탁에서 천지는 뜬금없이 mp3를 사 달라고 하고 엄마와 언니는 약간은 퉁명스럽게 반응한다.


그리고 천지가 자살한다. 아무런 유서도 없이. 남겨진 두 모녀는 하루빨리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 의지한다. 그렇지만 모녀는 풀리지 않는 의문에, 또 시간이 갈수록 부풀어 오르는 죄책감에 힘들어한다. 그러던 중 만지는 천지의 죽음에 평소 천지의 단짝이었던 화연(김유정)이 관련되어 있음을 직감하고 그길로 화연을 찾아가 캐묻기 시작한다.


여기까지 보면 영화는 학교 내 따돌림과 피해자의 문제, 이렇게 직선적인 갈등으로 관객은 이제 모녀가 어떻게 화연의 악행을 파헤치고 책임을 묻게 될지에 집중하게 된다. 이제 관객은 알고 영화는 모른다. 마음은 조급해진다. ‘얼른 저 나쁜 년의 정체를 밝혀내란 말이야!’


하지만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현숙과 잠깐 사귀었지만 이제는 스토커가 되어 만남을 구걸하는 곽만호(성동일), 그리고 그의 두 딸이자 각각 만지와 천지의 친구인 미란(천우희)과 미라(유연미). 이들이 등장하면서 영화의 갈등관계는 쭉 뻗은 직선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빨간색 실타래처럼 얽히고섥킨다. 죽기 전 천지의 유일한 취미는 빨간 털실을 뜨다가 충분히 커지면 다시 풀었다. 사람의 마음과 달리 실은 언제든 떴다 풀었다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던 천지가 남긴 다섯 개의 실타래, 그 속에 숨겨진 유서가 발견되면서 영화의 실마리는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영화는 왕따 문제를 말할 듯이 시작했지만 실은 십대 그들만이 느끼는, 그래서 우리가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감정의 틈새를 포착해 돋보기를 들이댔다. 극 중 천지는 만지에게 묻는다. "친한 척하면서 사실은 괴롭히는 친구가 있으면 어떻게 해?" "그럼 걔랑 친구하지 마." 만지가 귀찮다는 듯 이렇게 대답하자 천지는 되묻는다. "그럼, 난 누구랑 놀아?" 누구에게나 친구는 필요하다. 이 사춘기의 소녀들이 그랬듯이. 모든 갈등은 여기서 시작됐다는 것이 그것이 한 아이의 죽음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새삼스러우면서, 아프다.

따돌림 문제는 분명 슬프지만 이렇게까지 아프게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모두가 피해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이들 모두는 아프다. 질긴 실들이 엉키기 시작하면 서로를 짓누르고 이렇게까지 아파진다. 그리고 그 숨 쉴 틈 없는 실타래 안에서 천지가 할 수 있는 말은 우아한 거짓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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