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설 <작은 아씨들>*은 여러 차례 영화화된 바 있고 이번이 일곱 번째다. 19세기 발표된 소설이 여전히 매력 있고 설득력 높은 이야기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에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주인공인 네 자매가 저마다 개성을 돋보이며 다채로운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동시에 끈끈한 유대감과 돈독한 가족애로 마음을 포근하게 덥힌다는 점이 다채로운 해석의 여지와 함께 이야기의 탄탄한 토대를 마련해 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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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소설은 1868년 이래로 미국 소설가 루이자 메이 올컷이 총 4부작으로 출간한 자전적 소설이다. 19세기 남북전쟁 시기 미국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하게 그린 작품이다. 부모님의 온건하나 원칙 있는 교육 아래 높은 자존감과 인정 어린 품성을 갖고 서로를 보듬는 모습이 부러움을 살 정도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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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영화 <작은 아씨들>(2019)는 배우 겸 감독 그레타 거윅의 작품이다. 넷플릭스에서 반가운 제목을 발견하고 앉은 자리에서 엔딩을 본지라 크레딧을 뒤늦게 확인했는데 2019년의 시대 감각을 적절히 가미해 균형 있게 잘 다듬은지라 약간 놀랐다. 그레타 감독은 좋은 평가를 받은 첫 연출작 레이디버드(2017)로 기대를 높인 뒤 검증된 명작을 소화해내며 머지않아 차세대 거장 여성 감독으로 발돋움할 거란 확신을 던져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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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당연히도 2019년의 패러다임을 반영한 각색이 이뤄졌다. 키워드는 페미니즘과 밀레니얼(적 감성)이다. 이런 특징은 작가를 꿈꾸는 둘째 조(시얼샤 로넌)의 캐릭터에서 두드러진다. 1994년작과 비교하면 차이가 보인다. 조는 영화의 첫 장면부터 눈길을 사로잡으며 사실상 주인공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비중이 높아졌다. 전작에선 말괄량이의 이미지가 강했다면 이번 작품에선 커리어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작가 지망생 내지는 요즘으로 치면 사회초년생의 분위기가 가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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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를 꾸미고 사교계에 나가서 결혼에 목매기보다 푼돈에나마 신문사에 '팔릴 만한' 단편소설을 실어 생계에 보태느라 정작 진지한 작업은 손대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내는데 우리네 청춘과 닮은꼴이 아닐 수 없다. 조가 풋내기 작가에서 삶의 중요한 사건을 겪으며 인간으로서, 동시에 작가로서 확신을 갖고 성취를 따내는 모습은 잠시 콧잔등이 시큰할 정도의 깔끔한 밀레니얼식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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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배우의 면면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커다란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첫째 메그역의 엠마 왓슨, 셋째 베스 역의 일라이자 스캔런, 막내 에이미 역의 플로렌스 퓨, 막내 모두 최근 급부상하는 배우들이라(엠마 왓슨은 솔직히 말해서 제외하고) 확실히 '최신 영화'를 보고 있다는 기분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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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플로렌스 퓨가 눈에 띈다. 그는 <레이디 맥베스>(2017)와 <미드소마>(2019)로 이어지는 인상적인 커리어에서 앳된 외모 아래 도사리는 섬뜩한 자기파괴 충동을 기막히게 연기해낸 바 있다. 이 영화에서도 막내 에이미역을 맡아 단순히 언니 조를 질투하는 주변적 인물이 아니라 고유한 생명력을 갖추고 사랑을 쟁취해내는 주체성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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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넷플릭스 화제작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에서 처음 봤던 배우 일라이자 스캔런은 연약하고 깨질 듯한 외모 속에 단단한 내부의 확신을 느끼게 해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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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맘때 보기에 정말이지 제격인 영화다. 전 국민이 공평하게 밖에 나갈 일이 없어진 초유의 크리스마스, 연말연시에 말이다. 워낙 명작이기에 세대 불문하고 호불호 없이 섭취할 수 있는 따뜻한 어묵 국물 같은 영화이다. 미국식으로 하면 영혼의 닭고기스프쯤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