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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양 Jul 22. 2018

<어느 가족>

훔친 것과 주운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독보적인 스타일의 가족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사실 그의 작품에 가족영화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적당한지 조심스럽기도 하다. 통상적으로 가족영화라고 하면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장점을 재발견하고 결속을 다지는 이야기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반면 고레에다의 가족영화는 ‘별일’ 없어 보이는 한 가족을 등장시켜 감춰진 결함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현대 사회의 가족이 얼마나 위태롭게 봉합된 채 유지되는 사상누각인지를 고발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자기기만과 무관심이라는 인간 사회가 애써 외면하는 인간성의 본질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그래서 고레에다의 영화는 일본영화의 고정된 이미지인 잔잔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영화의 표피를 감싸고 있지만 그 내부에는 신랄하고 날카로운 시선이 번뜩인다. 

    

이런 면에서 고레에다 감독의 신작 <어느 가족>은 그의 전작과는 구별되는 영화다. 영화의 중심 인물이 ‘어떤 가족’이라는 점은 같지만 영화 초반부터 시종일관 가족 구성원끼리  활발히 교류하고 유대감을 쌓아가는 ‘뜨거운 피’가 흐르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스토리가 다소 의아했는데 고레에다 감독이 한 사람의 가장으로 살면서 가정의 소중함에 감화돼 메시지에 변화가 생긴 건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며 의문은 풀렸다. 이 영화는 한편으로 미스터리 형식을 갖는데 이들이 사실 피로 연결된 가족이 아니라 저마다 기구한 과거사에 상처 입은 뒤 할머니를 중심으로 뭉쳐진 유사가족이란 게 밝혀진다.     


이 영화의 원제인 ‘만비키 가족’은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만비키는 ‘상점에 진열된 상품을 훔치는 행위’, 한마디로 도둑질이다. 표면적인 의미는 이거다. 실제로 이 가족의 생계는 할머니의 연금과 도둑질이 전부다. 아빠가 아들에게 도둑질을 시키고 누나는 동생에게 다음엔 잊지 말고 샴푸를 챙겨오라고 타박을 준다. 또 하나의 의미는 이들은 가족을 훔쳐와 가족 행세를 하는 ‘가짜 가족’이라는 거다. 그런데 이토록 불량한 가치관으로 점철된 기이한 공동체가 여느 가족보다 더 끈끈한 유대감을 갖고 살아간다.

 

영화 후반부에 대략 이런 취지의 대사가 나온다. 이 영화의 핵심을 전달하기에 좋은 예시라고 생각해 마무리로 덧붙인다.


“당신, 자식을 갖고 싶어서 아이를 유괴한 것 아닌가요?”

“훔친 게 아니라 주운 거예요. 버린 사람은 따로 있죠. 저는 단지 버려져 있던 걸 주운 것뿐이에요.”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에서 관람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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