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라는 렌즈로 들여다 본 미국사
“장애는 단순히 신체적 범주가 아니라 계속해서 변화하는 사회적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적 범주다.”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를 점령하기 전 토착민들은 몸, 정신, 영혼을 하나로 이해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믿음에 따라 표준적인 몸과 정신을 유연하게 정의할 수 있었다.”
“시민으로서 적합한 사람과 부적합한 사람을 구분하는 과정은 수많은 법적, 이념적, 실용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부적절함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언제 그것은 국가를 위협하는가? 부적절한 사람들은 구제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한 줄 정리
‘장애’을 다루는 방식은 사회가 ‘정상’을 규정하는 방식이다. 미국에서 장애는 국가의 핵심 가치인 독립이나 자율과 대조되는 결핍이나 의존 같은 부정적인 낙인을 의미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국민이 유능하다는 가정 아래 자수성가의 서사를 숭배하며 발전해왔기에 상호의존이라는 공동체 요소를 지웠고 토착민 사회에서 문제 없이 생활하던 이들에 장애라는 이름을 붙여 배제하고 차별했다.
주관적 감상
1. <장애의 역사>는 장애라는 렌즈를 통해 미국사를 건국 시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통시적으로 돌아보는 역사서다. 저자 킴 닐슨은 역사학 박사이자 장애학 전문가로 장애뿐 아니라 여성, 정치를 키워드를 미국사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 책의 컨셉은 장애 분야에 문외한인 내게 무척 신선했다. ‘장애’하면 곧장 ‘복지’를 떠올렸던 내게 말이다. 무엇보다 장애는 고정불변의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임의적 범주라는 당연한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했다. 유럽인이 북아메리카 대륙을 침공하기 전까지 토착민에게 장애Disability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도 현대 사회가 장애로 규정하는 일련의 신체적 차이를 인정했고 한 인간의 조화가 깨진 결과로 봤다. 하지만 그것이 능력 있는 몸Able-Bodiedness을 결정하는 기준은 아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2. 북아메리카 토착민에게 장애는 신체의 결함이 아니라 공동체 내의 사회적 관계가 약해지거나 없어지는 걸 뜻했다. 신체 일부나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겨도 공동체 내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며 노동과 관계에서 호혜 활동을 하는 한 사회에서 배제되거나 특별 취급을 받지 않았다. 이러한 토착민 공동체의 사상적 배경에는 상호의존Interpendent이 디폴트로 자리한다. 결핍이나 의존이 죄악시되는 미국 사회, 그리고 그 확장판이라 부를 수 있는 지금의 글로벌 문화와 선명히 대비되는 부분이다.
미국 사회는 현대 관료제에 기반해 발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장애를 비롯해 인종, 계급, 젠더, 성적 지향 등의 잣대로 소수자를 ‘나쁜 시민’으로 낙인찍었다. 동시에 유능한 인물의 자수성가 서사를 숭배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무릇 ‘좋은 시민’에게 “경제활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투표를 통해 정치에 참여하고 정부의 정책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의무이자 특권”이었다. 반면 타인에게 의존하는 장애인은 연약한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혀 시민의 권리를 박탈당했다.
3. 진보의 세기Progressive Era(1890~1927) 동안 각종 사회 운동이 번창하며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설립되고 관련 정책이 수립되며 장애가 법적, 사회적 범주로 굳어진다. 이는 장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다소 넓히고 장애 문화가 형성되는 기초가 됐지만 한편으로 장애에 대한 비뚤어진 관심을 불러 산업적 도구로 악용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이후 장애인 공동체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독자적 저항 문화를 형성해 인권 운동을 발전시킨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Deaf President Now’ 투쟁이다. 1864년 설립된 갈로뎃 대학은 농인을 위한 미국의 첫 고등교육기관으로 124년간 줄곧 청인이 총장을 맡았다. 하지만 1988년 학생들은 ‘지금 당장 농인 총장’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점거 농성을 벌이고 1주일 만에 청인이 아닌 첫 농인 총장인 킹 조던이 임명이라는 쾌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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