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스님

by 최현성

[카이스트 스님]

처음엔 카이스트 다니는 스님이라는 말이 좋았다.
나를 특별하게 봐주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은 나를 카이스트 스님이라고 불렀다.
나는 사라지고 카이스트만 남은 것 같았다. 그래서 싫었다.
그것 말고도 나 일수 있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 본질이 카이스트는 아니지 않는가.
사람들이 나의 더 깊은 내면을 봐주길 바랬다.
그런데, 그것은 어리석음 이었다.
나도 상대의 본질을 보기 이전에 쉬운 설명부터 듣고, 빨리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의 진짜 모습을 보려고 하는 순간부터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보든 무어라 부르든 크게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상대가 바라보는 나의 정체성은 전적으로 상대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나의 존재성은 나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와의 관계성을 바탕에 둔 존재성은 상대의 몫으로 놔두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관계에 있어서의 자유와 해탈의 단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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