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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영 Mar 01. 2022

디자인과 심리학 : 12. 격리 효과

사람들은 보랏빛 소를 기억한다

격리 효과(Von Restorff Effect) : 여러 개의 비슷한 물체가 존재할 때, 유독 다른 하나의 물체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어떤 일은 시간이 지나도 생생한데, 어떤 일은 바로 어제 일인데도 기억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쭉 펼쳐진 기억 중 눈에 띄는 건, 분명히 특별한 기억일 것이다.  


세스 고딘의 <보랏빛 소가 온다>라는 책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저자는 가족과 함께 프랑스 초원을 여행했다. 수백 마리의 소 떼를 보면서 감탄, 또 감탄. 하지만 20분이 지나지 않아 창 밖의 풍경을 외면했다고 한다... (중략)"
"그런데 그 소 떼 가운데 보랏빛 소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지고 몸을 벌떡 일으킬 것이다. 저자는 바로 그러한 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언젠간 이런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유행하는 패션은 어느 시점에 바뀔까?'


'유명인이 새로운 옷을 입고 나왔을 때?'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유행을 따라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닐 때이지 않을까 싶다. 매 번 봐서 익숙한 것엔 점점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을 테다. 그렇게 사람들은 또다시 보랏빛 소를 찾아 나설 것이다.


그렇다면 온라인에선 어떨까?


온라인 서비스를 사용하다 보면, 특히 눈에 띄는 버튼들이 있다. 결제 버튼이나, 다음 버튼, 게시물을 올리는 버튼 등이 바로 그것인데, 이를 CTA(Call To Action) 버튼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사용자의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다.


CTA 버튼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유용하다. 사용자가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려준다. 스크린 안의 모든 내용들을 일일이 습득할 필요 없이, 빠르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럼 이런 상황에선 어떨까? 아래 이미지를 한 번 보자.

내가 쓴 포스팅을 삭제하는 상황, 어떤 팝업 디자인을 선택해야 할까?


'삭제'는 되돌릴 수 없는 행동이다. 좋아요나 북마크 버튼을 누르는 것보다 훨씬 위험도가 높다. 그렇기에 사용자가 실수로 삭제 버튼을 누르더라도, 대부분 이렇게 한 번 되물어보는 팝업을 띄워준다. 이때, 위 두 가지 중 어떤 팝업 디자인을 선택해야 할까?


Case 1 : 실수로 삭제 버튼을 누른 A

실수로 누른 A가 이 팝업을 보면, 조금 더 긴장할 수밖에 없다. 삭제할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A는 얼른 이 팝업을 닫고 싶다.


아까 말했듯, 눈에 띄는 것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아니요' 버튼이 빨간색으로 되어있다면, A는 그 버튼을 먼저 인식할 것이다. A는 '네' 버튼을 인식하기도 전에 팝업을 닫을 수 있다.


그렇다면 '네' 버튼이 빨간색으로 강조되어있다면 어떨까? A는 '네' 버튼을 먼저 인식하고, '아니요' 버튼을 인식할 것이다. A는 어쩔 수 없이 두 가지 버튼을 모두 인식한 후 '선택'을 해야만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떤 색으로 되어있든 A는 '아니요' 버튼을 정확히 누르고 팝업을 닫을 것이다.


Case 2 : 정말 삭제하려고 삭제 버튼을 누른 B

삭제 의도가 분명한 B에겐 이 팝업이 그저 귀찮은 과정일 뿐이다. 이땐 어느 버튼의 색이 빨간색인 게 좋을까?


'네' 버튼이 빨간색으로 되어있다면, B는 그 버튼을 먼저 인식할 것이다. B는 '아니요' 버튼을 인식하기도 전에 팝업을 닫을 수 있다.


'아니요' 버튼이 빨간색으로 강조되어있다면, 아까 A와 똑같은 과정을 거칠 것이다. 물론 B도 실수 없이 '네' 버튼을 정확히 누르고 삭제를 진행할 것이다. 그럼 대체 무엇이 더 나은 선택지일까?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아니요' 버튼을 빨간색으로 표시하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삭제하려는 의도가 있는 B가 '아니요' 버튼을 눌러버려서 다시 삭제 팝업을 띄워야 할 때의 경험보단, 삭제하려는 의도가 없는 A가 '네' 버튼을 눌러버려서 영구적으로 삭제가 되었을 때의 경험이 훨씬 나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아니요' 버튼이 먼저 눈에 띄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디자인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때에 따라선 '네' 버튼이 강조되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보랏빛 소'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위해, 사소한 저울질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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