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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영 Mar 21. 2022

샤워 물 온도를 완벽하게 맞추기 어려웠던 이유

디자인과 심리학 : 16. 감각 적응

감각 적응(Sensory Adaptation) : 어떤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우리 몸은 자연스럽게 해당 자극에 대한 감도를 감소시킨다.


좋은 향에 이끌려 빵집이나 꽃집 같은 곳에 들어가 본 경험은 다들 있으실 것이다. 처음엔 향이 후각을 강하게 자극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그 향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몸은 반복적인 자극에 대한 감도를 자연스럽게 감소시킨다. 덕분에 우리는 또 다른 새로운 자극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된다. 이를 감각 적응 현상이라고 하는데, 특히 향수를 뿌릴 때 이 현상을 간과하기 쉽다.


후각이 이미 적응해버려서 더 이상 그 향을 쉽게 맡을 수 없게 된 것일 뿐인데, 본인은 향이 다 날아갔다고 착각하곤 한다. 그래서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뿌리다 보면, 약속 장소에서 만난 친구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혹시 향수를 들이부은 거야?"



또 뭐가 있을까? 샤워하기 직전을 생각해보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도 물 온도를 맞출 땐 한층 진지해진다. 딱 맞는 물 온도를 찾기 위해 섬세하게 수도꼭지를 조절한다. 여러 번 손을 대보며 '이 정도면 딱이다' 하고 몸에 물을 묻히는 바로 그때 그 물 온도는, 항상 생각보다 조금 더 차갑거나 뜨겁다. 왜 그럴까?


출처 : memecenter.com


내 손은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그 온도에 이미 적응해버렸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뜨겁게...' 또는 '조금만 더 차갑게...'에서 '조금만'의 정도 차이를, 이미 적응한 내 손이 확실히 느끼려면, 수도꼭지를 더 많이 틀었어야만 했다. 하지만 아직 적응하지 못한 내 몸은 그 '조금만 더 뜨겁거나 차가운' 물의 온도를 '조금 더 많이' 뜨겁거나 차갑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신체 부위마다 감도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온라인에선 어떻게 적용되고 있을까?


누구나 내가 만든 제품과 서비스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하게 드러내고 싶을 것이다. 드러내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메인 컬러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쨍한 파란색을 보면 토스를, 진한 민트색을 보면 배민을 떠올릴 수 있듯, 브랜드의 메인 컬러를 잘 활용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가 있다. 아래 이미지를 한 번 살펴보자.


앱 바의 색상만 다르고 나머지는 똑같은 화면



앱 바의 색상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모두 똑같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오른쪽 화면에서 아이덴티티를 더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색을 이렇게 사용하는 순간, 제일 중요한 CTA(Call To Action) 버튼이 묻혀버리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CTA버튼은 정말 중요한 부분에만 간헐적으로 사용되어, 딱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행동을 확실하게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오른쪽 화면처럼 색을 사용했을 때, 사용자의 눈은 저 파란색에 더 빠르게 적응하게 된다. 그 말은, 이제 저 버튼을 특별한 버튼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과 동일하다.


또 애플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애플의 온라인 스토어를 보자.


<가격 보기>, <쇼핑하기> 버튼을 제외한 나머지 어느 부분에서도 해당 컬러를 사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저 파란색은 애플의 메인 브랜드 컬러조차 아니다. 이 생소하고 낯선, 하나밖에 없는 버튼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딱 좋다. 저 버튼의 전환율은 안 봐도 뻔하다. 저 버튼을 클릭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감각 적응 현상을 제대로 이해했을 때 비로소 저런 디자인을 해 낼 수 있는 거 아닐까? 특별한 게 있다고 무조건 남발하면 특별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듯, 우리 몸의 감각들도 마찬가지다. 감각 적응 현상은 사람들의 경험을 디자인할 때 각별히 신경 써야 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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