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스틴 트리에, 추락의 해부

진실이라는 사체를 해부하자 나타난 검게 타버린 동전 하나

by 도연호

<추락의 해부>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그런 작품치고는 <기생충>보다는 부족한 작품으로 느껴지기도 했지요. 특히 초중반부까지는 전형적인 웰메이드 클래시컬 후더닛 장르의 영화처럼 보이다가 후반부에는 긴장감이 조금 떨어지며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뭘까 고민하게 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살인의 추억>이나 <헤어질 결심>이 떠오르기도 했구요. 마쓰무라 야스조의 <아내는 고백한다>와는 이야기 구조와 메시지가 거의 일치하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이 작품의 주연인 산드라 휠러는 2023년에 <존 오브 인터레스트>와 위 영화에 출연하여 각각 칸영화제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동시에 오르는 괴랄한 경력을 쌓았는데요. 더 놀라운 것은 둘 다 최고 작품상을 수상하는 바람에 중복 수상과 관련된 규정상 수상이 불발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산드라 휠러의 연기는 돋보였습니다.




오프닝의 맹점


<추락의 해부>는 다니엘과 산드라 부부의 집에서 산드라가 한 학생을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매우 높은 음량의 음악이 관객의 청각을 자극하고 두 사람의 말소리는 오히려 음악에 묻히도록 독특하게 연출했습니다. 산드라는 학생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함인지 여러 질문을 던지고 학생은 대답하는데 산드라는 그녀의 말을 잘 듣고 있지 않지요. 결국 둘은 헤어지고 산드라는 위층으로 올라갑니다. 남편은 죽은 채로 발견됩니다. 이는 진실의 해석과 감정 전달의 어려움을 화면으로 구현한 장면으로 생각됩니다.


소통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다른 요소로 언어적 장벽도 계속해서 강조되는데요. 독일인인 산드라는 집 안에서 프랑스인인 남편과 영어만 사용하기를 강요하고 프랑스 재판에서는 영어를 사용하지 못해 변론하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마침 사건에 연관된 용의자들이 각각 맹인, 개, 유력 용의자로 소통이나 사실의 진위 판단이 어려운 위치에 있음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합니다. 영화에서 주목할 부분 중 하나는 주연들의 대사에 섞여있는 진실의 정도를 주체적으로 판단하도록 관객에게 강요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산드라가 남편을 실제로 죽였는지는 끝까지 알 수 없게 연출되지요. 산드라가 울먹이면서도 태연하게 요리 재료를 정정해주는 것이 충격의 영향인지 혹은 살인자의 태연함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다가 아니죠. 변호사인 뱅상은 그녀에게 연심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뱅상은 그녀가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고 믿는다 말하지만 정작 처음에는 자신도 못 믿겠다는 투로 말하는 등 모순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심지어 재판의 과정 중 죽은 남편의 의도조차도 불분명해지는데요. 남편이 죽기 전 날 산드라와의 격렬한 싸움 내용을 몰래 녹음해놓은 정황이 드러나며 남편이 아내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죽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드라마 무죄추정처럼요.




진실의 해부학


다른 중요한 부분 하나는 산드라의 가족의 치부가 해부되는 과정입니다. 재판을 통해 산드라의 행동과 그녀의 의도는 낱낱이 해부됩니다. 양성애자인 그녀의 성향과 첫 장면에 나온 학생을 산드라가 유혹했는지 여부를 검사가 묻는 장면에서 처음의 인터뷰 장면은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가집니다. 눈을 잃은 아들을 데려오기로 하고 데려오지 않은 남편의 행각과 은근하게 남편의 탓으로 아들의 장애를 떠넘긴 산드라의 행동도 드러납니다. 그러면서도 아들의 장애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산드라의 다층적인 심리도 돋보였어요. 한편 경찰은 아들의 사소한 증언을 걸고 넘어지며 산드라와 남편의 언쟁을 산드라와 아들 앞에서 재연하는 등 배려심이 부족하고 지나친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남편을 죽이고 싶다는 내용을 소설로 쓴 산드라와 평소 자신의 경험을 소설의 소재로 삼는 산드라의 성향도 지적되지요. 한 전문가가 벽에 튄 핏자국을 지적하며 타살의 가능성이 백퍼센트라고 단언하자마자 다른 전문가가 등장해 자살의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합니다. 길고 긴 재판의 과정을 거쳐 가장 결정적이었던 아들의 증언을 끝으로 주인공은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나지요.


맹인 아들은 영화를 보며 진실을 가려내는 관객의 역할을 대신합니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의 오프닝이나 <라쇼몽>의 연출처럼요. 동시에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대신 전달해주는 역할도 합니다. 재판 과정에서 증언 하나하나를 상처를 받아가면서도 진실을 간절히 알고 싶어하는 아들의 의지는 영화 내내 부각되지요. 아들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인지 특정한 피아노 곡조를 계속 반복하여 치는데 이는 맹인 아들의 실수로 인한 불협화음과 맞물려 기괴한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재판의 막바지에 다다라서도 아들은 진실을 찾지 못하고 이에 절망하여 눈물을 쏟아내는데요. 이런 아들을 지켜봐왔던 마르주는 이제 결정해야 될 시간이라는 요지의 말을 하는데 재판장에서 다니엘은 침착하게 산드라를 지지하는 증언을 합니다. 진실을 알아내지 못했지만 어머니인 그녀를 믿기로 결정한 것이지요.


부부가 기르던 개인 스눕은 작중에서 아빠 다니엘을 비유합니다. 가족의 사회적인 해부와 주인공 산드라의 추락을 담아낸 이 영화에서 죽어 없어진 다니엘의 역할은 스눕이 담당합니다. 아들이 직접 재판정에서 스눕과 아버지를 비유한 말을 하기도 하고요. 죽어 늘어진 다니엘을 누워서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스눕의 행동. 다니엘처럼 수면제를 먹고 토하는 스눕을 통해 스눕이 다니엘의 역할을 대신함을 알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죽기 전 스눕도 가족을 위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며 언젠가 스눕이 없어질 때를 생각해야 한다고 아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아들이 던지던 막대기를 물어오던 스눕은 다니엘이 죽던 시점 입에서 쥐고 있던 막대기를 놓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두운 밤 재판을 마치고 돌아온 산드라가 소파에 몸을 뉘이자 달려와 옆에 눕는 스눕과 스눕을 안는 산드라의 모습은 섬뜩합니다. 산드라가 남편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과 스눕이 영화 내에서 다니엘의 분신처럼 기능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말이지요. 혹은 자살한 남편과 죽고 나서야 관계를 회복하는 산드라의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훌륭한 영화들은 어디로 나아가는가


법정 영화의 최고작 중 하나로 꼽히는 <살인의 해부>를 오마주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장르 영화의 구성을 충실히 따라갑니다. 하지만 사실과 소통 그리고 자의적인 판단의 중요성을 역설하고자 하는 의도를 중반부부터 확연히 드러냅니다. 혼란스럽고 다층적인 사실을 앞에 두었을 때. 인간이 명확한 진실을 가려낼 수 없을 때. 무엇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믿을 것인지에 관한 영화인 것이지요. 예술 영화처럼 보이는 일면도 존재하는데 하얀 설원 위에 누워있는 다니엘과 주위의 핏자국으로 시작되는 첫 장면 이후 다니엘과 산드라 부부의 흑백 사진이 이어지고 아들이 치는 기괴한 피아노 곡조와 맞물려 음산함을 자아내는 장면이 대표적이었습니다. 몽타주는 소재로나 화면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리도 지대한 영향을 미침을 확인했던 장면이었죠. 칸 영화제는 더이상 예술성과 작품성뿐만 아니라 장르 영화로서의 일면 즉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지 여부도 신경 쓰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연기 측면에서는 산드라 휠러가 연기로 저글링을 하는 것처럼 복잡하고 모호한 감정의 경계를 완벽하게 소화해내서 경이롭기도 했지만 스눕의 역할을 한 개의 연기도 인상깊었어요. 개가 저렇게 게거품을 무는 연기를 할 수 있는지를 처음 알았습니다.


복잡한 철학을 장르 영화의 틀 안에 담아낸 영화.


쥐스틴 트리에의 <추락의 해부>였습니다.




평점 5/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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