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 돌연변이들의 마음에 불씨를
원래 <퍼펙트 데이즈>에 대해서 쓰려고 했는데요. <퍼펙트 데이즈>가 <패터슨>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너무 즐겁게 보았던 작품이라서요.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금이 시험 기간이라는 문제이지요. 저는 상당히 피폐하고 괴로운 상태라 도무지 조금이라도 무겁거나 생각을 요하는 작품에 대해 쓰고 싶다는 마음이 안 들고 있습니다. 원래는 학점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공부하고 싶은 과목만 했었는데 이제는 고학번이라 성적 압박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요. 그래서 <퍼펙트 데이즈>는 다음 주에 제대로 쓰고 이번에는 쉬어가는 느낌으로 마블 영화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마침 최근에 <기묘한 이야기>의 마지막 시즌이 공개되었잖아요. 곧 있으면 <응답하라 1988>의 출연진도 다시 만난다고 하구요. <슈퍼 걸>의 새 예고편도 공개되었구요. 자연스럽게 이 영화가 떠오르더군요. 마블 영화는 제가 인피니티 사가까지는 다 봤는데 글로 쓰는 건 처음이라 설레기도 하네요.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은 최근 마블에게 실망해왔던 관객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되살려준 영화이자, 우주 영화, 코미디 영화, 가족 영화, 어떤 부문에서도 우수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영화입니다. 시리즈의 팬들에게는 가슴 아픈 마지막이자 달콤씁쓸한 이별로 오랜 여운으로 남을 듯 해요. 영화의 오프닝을 먼저 살펴보고 싶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는 음악과 조합한 화려한 오프닝으로 유명합니다. 제임스 건의 영화들에서 음악은 단순히 배경 기능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감정과 추억, 잊고 있었던 한 세대들의 공통된 마음의 응어리를 조용히 뭉쳐주는 그런 특별한 주연의 위치에 머무르고 있어요. <응답하라 1988>이나 <기묘한 이야기>가 그랬던 것처럼요. 1편에서 스타로드가 춤을 추고 Come and get your love가 흐르는 장면, Mr.blue sky와 함께 애빌리스크와 즐겁게 싸워대는 가디언즈들을 춤추는 아기 그루트를 중심으로 비추는 2편의 오프닝이 그 예시입니다. 3편에서는 가디언즈의 새로운 근거지가 된 노웨어에서 피터의 Zune으로 Creep이라는 음악을 들으며 거리를 활보하는 로켓을 비추어 줍니다. 로켓은 씁슬한 표정으로 가사를 읊는데, 이 가사는 영화가 지나며 알 수 있듯 로켓 본인의 상황과 아주 유사하지요. 동시에 전 두 편보다 어두운 영화의 분위기를 드러내주기도 합니다.
로켓은 피터와 함께 이 영화의 두 주인공 중 하나입니다. 영화는 1편에서 로켓이 드랙스와 싸우는 장면, 체포된 로켓의 옆에 뜬 라일라라는 의문의 인물 등으로 암시된 로켓의 과거를 푸는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로켓은 외로운 인물입니다. 실험실에서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의도로 태어난 괴물이지요. 태어날 때 부터 고문받으며 창조자에게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고 유일한 친구들을 모두 잃습니다. 로켓은 시즌 내내 냉소적이고 공격적인 말투를 유지하는데, 과거 시점에서는 아기처럼 높은 말투를 쓰다가,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친구를 모두 죽이고 로켓의 뇌를 뜯어갈 것을 밝히는 시점부터 극도의 긴장과 불안에 시달리면서 시리즈 내의 말투와 유사한 말투를 사용하는 소름끼치는 디테일이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 시점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 로켓은 죄책감과 괴로움, 극도의 긴장에 사로잡혀 도망다녔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이후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라일라를 쏘아 죽이고 이후의 총격전으로 티프스, 플로어가 모두 죽게 되는 장면은 마블의 긴 역사 동안 손꼽힐 정도로 참혹하고 절절한 장면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탈출 후, 그토록 꿈꿔왔던 하늘을 마주한 로켓의 감탄과 고통이 섞인 눈이 클로즈업 되는 장면은 압권이었죠. 라일라, 티프스, 플로어와 이름을 짓는 장면, 카드키를 만들고 탈출할 것을 선포하는 장면에서는 리더의 면모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인피니티 워 때부터 퀼과 리더 자리를 놓고 다투던 장면과 함께 로켓이 어두운 과거를 이겨내고 가디언즈들의 새로운 리더가 되는 것에 당위성을 부여해줍니다.
영화 내에서 로켓과 가디언즈 멤버들이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함선에서 동물들과 아이들을 구하는 장면은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킵니다. 시리즈의 막바지에 와서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이 우주의 진정한 구원자로 거듭나게 되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해요. 이 과정에서 로켓은 마치 예수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에 도달했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이 장면 또한 감동적이었습니다. 제 친구는 이 장면을 보고 해리 포터의 킹스 크로스 역 장면을 떠올렸다고 하던데요. 저도 그랬습니다. 저승의 경계에서 해리가 마주한 것이 본인의 삶을 가장 크게 바꾸어준 킹스 크로스 역이었던 것처럼 티프스, 플로어, 라일라도 하얀 배경에 본인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즐거운 기억이 간직된 철창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라일라가 로켓에게 본인들은 하늘에 도달했다며 우리 생각대로 하늘은 아름답고 영원했다고 말하는데요. 그전부터 죄책감과 슬픔에 못 이겨 흐느끼던 로켓의 울음이 더 심해집니다. 라일라는 하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하얗고 끝없는 저승의 공간을 하늘이라 착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로켓은 굳이 이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자신도 가도 되냐고 묻는데요. 로켓은 더 이상 하늘을 갈망하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동시에 라일라를 단순한 친구 이상으로 여겼다는 사실도 암시합니다. 이 장면에서 로켓은 우리는 버려질 소모품이라고 울부짖습니다. 라일라는 창조자 위에 더 큰 무엇인가가 있다고 로켓을 달래주고 로켓을 이승으로 돌려보냅니다. 끔찍했던 트라우마를 라일라에게 위로받고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철창에 갇힌 너구리들을 라일라를 구해주지 못했던 카드키로 구해주며 로켓은 완전히 과거를 떨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됩니다. 더는 도망치지 않게 되지요.
피터의 감정선도 영화에서 중요하게 그려집니다. 영화 내에서 피터는 당연하게도 가모라가 자신을 알지도 못하며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가모라를 다시 가디언즈로 자신의 옆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면서 있는 그대로의 가모라를 바꾸려는 행동을 취하는데, 이는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행동과 어떤 면에서 유사하기도 해요. 가모라를 놓아준 피터는 맨티스의 조언을 받아들여 자신이 버리고 간 또 하나의 혈육인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디언즈를 떠납니다. 특히 시리즈 동안 어머니 그리고 사실상 아버지 역할을 했던 욘두, 연인 가모라를 잃고 로켓의 죽음까지 목전에 두자 이성을 잃고 고함을 지르는 크리스 프랫의 연기는 계속 생각이 나더라구요. 가모라는 난폭한 면이 부각되어 1, 2편을 본 사람들에게는 설정 오류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1편의 가모라와 마찬가지로 가족과 사랑을 갈망하는 전사로서의 캐릭터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피터의 가족사진을 건네주는 장면, 피터가 가족을 갈망하고 있지 않냐며 가디언즈로 돌아오라 권유할 때, 갑자기 피터를 강하게 밀며 과민 반응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습니다. 다만, 1편에서와는 달리 그 가족을 가디언즈가 아닌 라바저스에서 찾았을 뿐이라 보는게 알맞겠네요.
다른 가디언즈들의 결말도 절묘하고 만족스럽게 그려집니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에게 고문당했던 네뷸라, 딸을 잃은 드랙스는 새로운 딸들을 데리고 가정을 꾸리며 가디언즈를 떠납니다. 맨티스는 자신의 자아를 찾아 애빌리스크들과 여행을 떠나며 가디언즈를 탈퇴하지요. 딸처럼 여겼던, 떠나는 맨티스 앞에서 드랙스가 겉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과 이후 드랙스가 조용히 노웨어로 돌아와 씁쓸한 표정으로 새로운 딸들을 위해 웃음을 지으며 춤을 추는 장면은 시리즈 주제에 딱 들어맞는 결말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첫번째 가족, 티프스, 플로어, 라일라를 잃고 두번째 가족 가디언즈까지 떠나보낸 로켓은 울적한 표정으로 맨 첫 장면과 같이 계단에 앉고 양아들 그루트의 춤을 보고는 웃음을 찾고 같이 춤을 춥니다. 전 시리즈 내내 강조한 가족애라는 주제를 끝까지 일관성있게 강조한 것이지요. 동시에 혼자 춤을 추던 1편의 주인공 피터와 그가 만들어낸 가족들이 그가 떠나고 다 함꼐 춤을 추는 장면을 수미상관으로 배치한 것 같기도 하네요.
이 외에 인상 깊은 장면은 그루트와 피터의 액션 장면이 있었어요. 1편에서 그루트의 액션을 보며 굉장히 창의적이라고 생각했구요. 이만한 충격을 또 가져다 줄 수 있을라나하고 의구심을 품었는데요. 제임스 건은 가능했습니다. 가디언즈들의 통로 액션 장면은 1편의 통로 싸움 장면을 떠올리게 했는데 연계기가 조화롭게 이어지고 화려한 롱테이크라 눈도 호강했어요. 개인 플레이였던 1편과는 달리 가족으로 끈끈해진 가디언즈를 부각하는 것 같아 좋았네요. 이외에도 중력장 조종장면, 경비원들에게 둘러싸이는 드랙스와 맨티스는 각각 1편의 교도소 탈출 장면과 그루트, 로캣이 잔다르의 군인에게 둘러싸이는 장면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다시 등장한 1편의 브로커와 하워드 더 덕도 시리즈 팬에게는 소소한 반가움을 선사했어요. 그 외에도 애빌리스크가 맨티스를 둘러싸는 장면은 2편의 오프닝을 떠오르게 하기도 했고요. 욘두가 크래글린의 회상에서 깜짝 등장하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투닥투닥대던 1,2편과는 다르게 가디언즈들의 날 선 모습이 유독 잦서 놀랐어요. 로켓이 죽기 직전이라 정신적으로 몰린 가족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인가 생각도 들었네요. 결말에서 로켓이 Come and get your love를 틀며 영화가 마무리 되어 하나의 시리즈가 수미상관적인 구성을 띠는 것도 여운을 더해주었습니다. 엔딩 크레딧과 초반에 나오는 로고도 가디언즈 멤버들의 명장면과 스틸 컷으로 채워져 있어 아주 훌륭한 팬서비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영화의 완성도로 보았을 때는 솔직히 제가 앞서 썼던 영화들에는 함참 못 미치지만 시리즈물을 평가할 때는 한 독립적인 영화로서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가지 요소들이 개입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명나는 음악과 가족애가 얹혀진 코미디 우주 영화, 가장 독창적이고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던 마블 시리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마지막 이야기.
제임스 건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입니다.
평점 3/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