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하루의 여백과 슬픈 기억의 조각들
누워서 천장을 보고 눈을 감을 때면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지 떠올려보곤 합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가 대부분입니다. 조금 허탈해집니다. 그럴때면 일상의 특별함과 숭고함을 포착하는 능력도 재능의 영역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는 그런 일상의 특별함을 포착하는 영화입니다. <패터슨>처럼요. 다른 점이 있다면 <퍼펙트 데이즈>에는 일상이 마냥 안온하고 편안하지는 않다는 겁니다. 또 <퍼펙트 데이즈>는 <패터슨>보다 감독의 개인적인 선호와 취향이 짙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독일인이 만든 일본 영화라는 점에서 독특하기도 하지요. 저는 브런치에서 <퍼펙트 데이즈>를 해석한 글을 굉장히 많이 보았습니다.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대부분이 <퍼펙트 데이즈>가 관객에게 주는 감정적인 깊이 주목하셨었습니다. 그래서저도 <패터슨>에서는 감상적으로 해석을 해보았으니 <퍼펙트 데이즈>의 경우에는 조금 면밀히 분석해보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싶어요. 그럼 시작해보겠습니다.
야쿠쇼 쇼지의 히라야마는 이 영화에서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나 <화양연화>의 양조위처럼 대단한 존재감을 자랑합니다. <패터슨>은 아마 애덤 드라이버가 아니라도 충분히 많은 상을 받았을 텐데요. <퍼펙트 데이즈>는 히라야마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좀 듭니다. 애초에 영화가 일본의 사소설의 형태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누구의 소설이냐 하면 히라야마의 소설입니다. 특히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누구나 엔딩 장면에서 야쿠쇼 쇼지의 클로즈업 연기는 괴랄할 정도로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그 무언가를 건드렸다는 사실에 공감하실 겁니다. 그런데 저는 몇몇 장면에서는 히라야마가 일본인이 아니라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의 취향에 대한 부분에서였습니다. 영화를 보면 매우 담백하고 절제된 느낌을 받으셨을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만 사실은 영화는 여러 디테일의 부분에서 꽉 차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음악입니다. 브런치에서 이 영화에 대해 글을 써주신 많은 분들이 음악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구요. 저도 미국 음악에 심취한 친구에게서 이 영화 이야기를 들을 때는 거의 음악 이야기 밖에 못했습니다. 물론 중간에 카네노부 사치코의 노래도 삽입되어 있습니다만 거의 롤링 스톤스나 애니멀스, 루 리드의 노래처럼 미국 70년대의 명곡들 위주로 삽입되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노래의 내용도 작품의 진행에 맞게 감독이 맞추었어요. 일단 삽입된 곡들이 좋기는 하지만 각 가수들의 완전한 대표곡이냐라고 물으면 그렇지는 않구요. 보시면 엔딩에서는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 삽입되고 히라야마는 웃는지 우는지 모를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함께 일하는 다카시의 여자친구에게 눈물이 섞인 입맞춤을 받고는 밴 모리슨의 Brown eyed girl이 삽입되고 오프닝에는 The house of the rising sun이 삽입됩니다. 히라야마의 첫번쨰 출근길 장면이죠. 그러니까 히라야마가 듣는 노래들은 모두 감독 빈 벤더스의 취향입니다. 그러니까 이질감이 드는 것이죠.
소설들도 그렇습니다. 미국에서 해밍웨이와 함께 대문호의 자리를 차지한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 종려나무도 등장하죠. 음향과 분노가 아니라 왜 야생 종려나무냐고 물으신다면 그것은 음악 선정의 기준과 동일합니다. 야생 종려나무는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는 연인과 늙은 죄수의 이야기이죠. 11은 제가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내용은 찾아봤는데요. 어머니에게 학대를 받는 소년이 자라와 친구가 되는데, 어머니가 자라로 용봉탕을 끓이려 하자 소년이 어머니를 죽이는 내용입니다. 소년을 히라야마의 조카에 엄마를 히라야마의 여동생에 히라야마를 자라에 비유하면 끔찍하기 짝이 없는 비유가 완성됩니다. 그리고 히라야마는 반복적으로 나무를 비롯한 여러 사진을 찍습니다. 이 또한 평생 영화를 사랑해 온 벤더스의 취향이 드러나는 부분이죠. 물론 영화 내부적으로 보자면 이는 히라야마가 지금은 말없는 공중화장실 청소부이지만 과거에는 상당히 부유하고 지적인 삶을 살았을 거라는 부분이 암시되는 부분이기도 하죠.
이제 다음으로 살펴볼 부분은 영화의 상징과 구조에 대한 부분입니다. <퍼펙트 데이즈>는 정말, 정말 구성이 특이합니다. 히라야마의 일상이 영화 내내 반복되죠.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매체에서 같은 부분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정말이지 어이없는 선택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관객의 재미라는 요소를 저해시키는 끔찍한 선택으로까지 분류할 수도 있는 것이죠. 제 생각에는 벤더스가 <패터슨>의 구조를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보입니다. 짐 자머시와 빔 벤더스는 사제 관계일 뿐만 아니라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기도 했으니까요. 그리고 자세히 보시면 반복되는 부분에 조금씩 작은 변주가 드러난 부분을 확인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상의 반복이 그 변주를 더욱 도드라지게 하죠. 영화에서 발생한 수많은 사건들은 사실 히라야마의 반복되는 일상에 삽입되지 않았더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사소합니다. 그리고 그 작은 변주에는 벤더스와 히라야마의 시선과 성격이 드러나 있습니다.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를 히라야마가 찾아주는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이 장면은 과묵한 히라야마의 따뜻한 성격을 드러내면서 빔 벤더스가 바라보는 일본인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일본인은 모르는 타인을 과하게 경계하죠. 한국인들처럼요.
또 있습니다. 화장실에 끼워진 오목 쪽지. 히라야마가 청소하는 동안 고물상 할아버지가 나무를 안으며 혹은 공중을 보며 천천히 도는 기이한 춤. 찾아온 조카와 함께하는 일상. 이 장면들은 히라야마의 일상이 과연 행복하기만 할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하나하나 해석해 드리자면 오목 쪽지는 과묵하고 고독을 즐기는 히라야마가 실은 사람과의 접촉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고물상 할아버지가 나무를 안으며 추는 춤은 글쎄 해석이 다양할 수는 있겠지만 구원을 바라고 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에 히라야마는 이 할아버지가 사거리의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게 되죠. 그리고 찾아온 조카와 함께하는 일상은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 이야기>를 오마주한 부분으로 느껴집니다. <동경 이야기>에서는 반대로 늙은 노부부가 도쿄에 홀로 사는 자녀들의 집에 방문합니다. 마침 오즈 야스지로 감독 또한 미니멀리즘을 추종하지요. 빔 벤더스 감독이 영향을 받은 감독 중 하나이기 도 하구요.
영화에서는 히라야마가 잠에 드는 동안에는 초현실적인 몽타주가 나타납니다. 영화는 흑백이고 히라야마의 꿈에서는 그가 하루에 겪은 일들과 나무의 잎들이 겹쳐지지요. 이 몽타주는 잉마르 베리만이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같은 유럽 거장 감독들의 향기가 남아있는 장면입니다. 특히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향이 짙은 것 같아요. 히라야마는 지금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데 가족은 엄청난 부자로 보입니다. 아마도 부도덕한 방법으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암시가 대사와 히라야마의 콧수염을 통해 드러나지요. 그런 히라야마가 화장실 청소를 한다는 설정 자체가 다분히 의도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히라야마의 일상은 어쩌면 스스로를 구원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물상 할아버지의 춤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했구요. <퍼펙트 데이즈>는 과할 정도로 나무라는 요소가 강조됩니다. <어쩔수가없다>의 만수처럼 히라야마는 노란 도시의 불빛 가운데 홀로 푸른 청색을 뿜어내는 방에서 식물들에게 물을 주지요. 나무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서는 구원을 상징합니다. 제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를 해석할 때 나무는 일반적으로 재생의 의미가 있다고 했었는데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에서는 구원을 상징합니다.
자 이제 거의 끝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는 제 해석이 아예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도 영화를 보는 동안은 히라야마의 감정적인 아픔과 그의 평온함에, 그리고 영화의 음악과 화면의 색감에 압도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제 개인적인 감상에 대해서는 글의 시작에 밝혔듯이 이번에는 쓰지 않았습니다. <패터슨>의 해석과 동어 반복이 될 것 같기도 했구요. 제 해석은 그 감정들과 감정의 전달법들이 어디에서 유래한지를 쓴 것이었습니다. 그 감정들 자체가 당연히 훨씬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감상자의 개인적인 영역입니다. 제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따뜻한 음악과 그보다 더 따뜻하고 과묵한 히라야마의 일상의 반짝이는 조각들을 감독의 여러 취향을 뭉쳐 만든 영화.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입니다.
평점 5/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