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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머시, <패터슨>

일상에 스며든 저마다의 운율을 찾아서

by 도연호

이전에 짐 자머시 감독의 <브로큰 플라워스>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담백하고 불친절한 화법으로 세심한 감정을 전달하는 독특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 기억에 남았었죠. 그래서 <패터슨>도 자연스럽게 찾아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패터슨>은 이야기의 전개 없이 주인공 패터슨의 일주일을 따라가는 이상한 줄거리를 가진 영화입니다. 따라서 평소 박진감이 넘치는 영화를 찾아보는 사람이라면 다소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일이 없는 주말에 햇살이 비쳐들거나 할 때, 바닥에 누워서 뒹굴거리며 영화의 색감과 주인공의 아이 같고 섬세한 모습, 따뜻한 시선과 부담스럽지 않은 유머를 따라가다보면 잔잔히 번져가는 영화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패터슨


패터슨은 버스 기사라는 직업을 가진 인물입니다. 그는 상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고 잊어버리는 습관이 있고 아이 같고 서투른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아내의 컵케이크 행사 참석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시 물어보고, 어설프게 수저를 집거나 소매를 만지작거리는 장면도 잦습니다. 고지식하기도 하고 다소 재미없는 면도 있어 다양한 옷을 입고 작중 등장하는 아내와 달리 그의 복장은 대부분 일정하죠. 폰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 그야말로 자연인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일상의 아름다운 조각들을 포착해내는 마법 같은 이면이 있습니다. 아내가 단 커튼의 구멍이 서로 달라 인상 깊다는 말을 해주는가하면, 매일 아침 아내에게 키스를 해주고 버스 승객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고 재미있어 합니다. 평소 가지고 다니는 성냥갑에서 시상을 떠올리지요. 기르던 개 마빈에게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는 귀여운 모습도 보입니다. 동시에 그는 다른 이의 마음을 배려하는데 익숙하고 스스로를 낮추기를 좋아하는 수줍은 인물이기도 해요. 시 노트가 찢겨지거나 버스가 갑자기 멈춰선 힘든 일을 겪고서도 집에 들어오자 마자 아내의 연주를 듣고 웃으며 박수를 쳐주고, 아내의 알배추와 체다치즈를 넣은 괴식 파이를 먹고도 맛있다고 웃어주며 물을 조용히 들이키는 재미있는 장면도 있습니다. 길에서 만난 꼬마 시인에게는 진짜 시인이라고 주켜세워주고 심지어 그 아이의 시를 외우면서도 자신에게 시인이냐고 묻는 행인의 말에는 버스 기사일 뿐이라고 답변하는 겸손함도 있습니다.


영화는 매력적인 주연 패터슨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패터슨의 시선 끝에 머무르는 일상의 아름다운 조각들을 전달해줍니다. 서로 좋아하는 여자를 꼬신 이야기를 푸는 두 친구들과 그들을 같잖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여자 승객, 무정무부주의자 대학생 커플들의 잘난 척이 담긴 귀여운 대화, 어린아이들이 푸는 유명인에 관한 루머에 귀를 기울이는 승객, 버스가 멈추자 패터슨에게 폰을 빌려주는 아이까지 소소하면서 즐겁고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이 장면들을 매일 반복되는 일상임을 밝히면서 전달하는 것도 특징입니다. 매일 아침 패터슨이 지나는 붉은 벽돌담, 파란 색감의 장면들과 패터슨의 버스 앞에서 매일 다른 불평을 늘어놓는 직장 동료가 반복적으로 배치되지요. 패터슨의 반복되는 일상들은 패터슨이 매일 써내려가는 시로 인해 특별함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시가 화면에 띄워질 때, 패터슨의 손목 시계가 돌아가는 연출과 함께 다양한 장면이 오버랩되는 몽타주가 이를 드러내지요.




쌍둥이


쌍둥이는 극 중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소재입니다. 패터슨은 아내에게 꿈에서 아이를 가졌는데 쌍둥이였다는 말을 첫 장면에서 듣고 난 후 반복적으로 쌍둥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만난 쌍둥이만 네 쌍은 되는 것 같아요. 이는 패터슨의 시점에서 보이는 인물들은 패터슨의 심리나 상황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동시에 패터슨과 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또다른 쌍둥이들인 관객들에게 전하는 일종의 위로이기도 합니다. 패터슨은 아내와 영화를 보고 오고 나서, 배우가 아내와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이야기를 하지요. 패터슨 부부가 영화를 보러가는 장면이 영화의 절정 부분인 것도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관객들은 느끼지만 실은 관객들의 일상도 패터슨의 그것처럼 따듯하게 빛나는, 영화 필름처럼 상영될 수도 있는 순간들임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해석되었습니다. 패터슨이라는 이름도 그래요. 패터슨은 패터슨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패터슨이라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전형적 일상을 대표함이 내포되어 있는 이름이에요. 또한 패터슨의 성은 작중 밝혀지지 않는데, 셜록 홈즈의 레스트레이드 경감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성을 생략하는 것은 보편적인 인물의 전형을 묘사할 때 주로 사용되는 화법이지요.




매력


패터슨은 결국 쓴 노트가 개에게 갈기갈기 찢겨 쓴 시를 모두 잃어버리고 맙니다. 이때 패터슨의 모습은 애처로워 보일 정도인데 이때 바에서 만난 다른 남자가 그에게 내일도 태양은 뜬다며 위로해주지요. 패터슨은 그 자리에서 영화 내의 마지막 시를 읊는데 스스로를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는 물고기에 비유하는 내용입니다. 영화는 결국 관객에게 일상의 숭고함이라는 미학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가 끝나자 영화는 영화의 첫 장면과 유사한 아내와 침대에서 포옹한 채 아침을 맞이하는 마지막 장면을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줄거리는 거창하지 않지만 소소한 유머가 숨어들어가 있는 장면이 많고, 색감이나 구도가 잘 짜여져 있어 미학적으로도 아름다운 영화라 비교적 쉽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돋보이는데, 애덤 드라이버의 절제된 연기를 중점으로 감상하는 것도 좋아요.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결혼 이야기>나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격렬한 감정 연기로 대중들에게 인상을 남긴 그이기에 애덤 드라이버의 팬이라면 그의 색다른 연기를 더 흥미롭게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중간에 등장하는 무정부주의자 대학생 커플은 그동안 영화에 잘 등장하지 않았던 <문라이즈 킹덤>의 두 주연들이라 해당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훌쩍 자란 두 아역의 모습을 보게 되는 재미도 있습니다.


짐 자머시 감독의 담백하고 따뜻한 일상의 아름다을 녹여낸 영화.


<패터슨>이었습니다.




평점 4/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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