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 그대 내게 돌아와 나 온통 그대 생각뿐이야
영화는 허구입니다. 오죽하면 공포영화를 향유하는 이유는 편안하고 안온한 상태에서 허구의 공포가 실재하는 광경을 보고 싶어서 그렇다는 내용의 논문까지 있을까요. 그러나 어떤 영화들은 허구가 아닙니다. 어떤 영화들은 연출과 각본의 완성도나 미장센이 형편없음에도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단단한 모습으로 실재합니다. 그러한 영화들 앞에서는 그럴듯한 철학과 해석도 힘을 잃고 말죠.
허구의 영화들이 실재한다는 표현은 언뜻 이질적으로 보입니다. 사실 제가 지어낸 표현이기도 하고 저도 영화를 보면서 몇번 경험해보지 못하기도 했어요. 무엇인지도 아직 정확히 모르겠구요. 하지만 몇가지 예를 들어 보고 싶습니다. <보이후드>를 이해하는데 어쩌면 필수적인 일종의 배경지식이라고 느껴지기도 해서요. 그래서 이 글은 어쩌면 그동안 제가 쓴 글 가운데 가장 난잡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제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라는 대만 영화를 보았습니다. 로맨스 영화 흥행으로는 역대 순위권에 드는 영화죠. 많은 사람들이 인생 영화로 꼽기도 하는 영화이구요. 그럼에도 이 영화는 완성도나 내용이 끔찍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남주인공은 수업 시간에 딸딸이를 치고 집에서는 아예 벗고 다니는데 영화는 이를 가감없이 묘사합니다. 이게 비유나 상징인가?했지만 딸딸이로 뭔 비유를 하겠습니까. 그리고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은 이어지지도 않아요. 표면적인 이유도 황당하기 그지없었는데요. 뜬금없이 남주인공이 대학에서 격투 대회를 열어 죽도록 얻어터지고 이를 본 여주인공은 화를 내며 눈물을 흘리고 둘은 헤어집니다. 남주인공은 결말부 여주인공의 결혼식에 참석하는데 남편이 예쁜 신부에게 키스하려면 자기에게 먼저 키스하라는 일종의 농담을 합니다.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의 남편에게 진한 키스를 날리는데 여기서 또또 뜬금없이 몽타주 형식으로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이어진 평행세계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마지막 반전이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다가 울고 말았다는 반전이죠. <너의 결혼식>을 볼때도, <국제시장>을 볼때도 저는 눈물 한방울 안 흘렸거든요. 제가 운 이유를 스스로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존 카니 감독의 <원스>라는 영화를 볼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무명가수가 거리에서 노래를 하는 장면이었는데 핸드 헬드로 찍었는지 화면은 흔들리고 옛날 영화라 화질도 좋지 않았고 노래도 별로였어요. 그러나 Falling slowly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명곡으로 남아있지요. 저 또한 해당 장면을 보면서 감정적으로 또다시 이해할 수 없는 동요를 경험하고야 말았습니다. 이후 두 작품 <싱 스트리트>와 <비긴 어게인>은 더 잘 만든 것 같다고는 생각되었지만 <원스>와 같은 감동을 가져다주지는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각본이 나은가. 아니면 배우가 연기를 더 잘했을 수도 있구요. 저는 꽤 고민했습니다. 제가 <보이후드>를 본 게 2년 전이었고 그때도 이 글을 쓰고 싶었거든요. 그러나 뭘 써야할지 몰라서 멈추었습니다. 2년이 지난 이제는 조금은 알것만 같아서 다시 써봅니다.
<보이후드>는 한 소년의 생을 12년간 촬영한 작품입니다. 괴랄하게도 말 그대로 12년간 어린 아역 배우를 데리고 촬영했지요. 이 영화는 그래서 특별한 영화입니다. 삶 그대로를 담기 위해 노력한 영화이죠.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는 시간적인 한계를 뛰어넘고 있지요. 그러기 위해서 링클레이터는 무명 배우들을 대거 기용하는 선택을 내립니다. 메이슨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제외하구요. 각각 패트리샤 아퀘트와 에단 호크라는 연기력이 검증된 대형 배우들이 캐스팅되었죠. <보이후드>는 그럴듯한 줄거리도 없고 간단한 사건들이 나열됩니다. 주인공 메이슨은 어린 아이에서 대학생이 됩니다.
그런데도 몇몇 장면들은 제 망막에 새겨져 있습니다. 2년이 지났는데도요. 막상 쓰고 보니 별로 길지 않은 시간인 것 같기도 하네요. 늦은 밤 싸우는 엄마와 아빠를 몰래 무표정한 얼굴로 응시하는 어린 메이슨. 메이슨의 아빠가 차를 몰며 아이들과 대화하려고 서툴게 애쓰는 모습. 차고에서 엄마가 새아빠에게 폭행당하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아이들. 푸르고 구름 낀 하늘에 떠오른 영화의 제목 그리고 하늘을 응시하는 어린 메이슨과 흐르는 기타 선율. 노을을 응시하는 스무살의 메이슨과 검은 화면으로 영화가 끝나는 순간 흐르는 피아노 선율. 메이슨과 누나가 떠나자 새로운 삶을 기대하지만 막상 메이슨이 떠나는 날에 삶에 대한 허망함과 분노를 갑작스럽게 토해내며 오열하는 메이슨의 어머니까지요.
메이슨은 불쌍하게도 보이고 냉정하게도 보입니다. 그는 수다스럽기도 하고 과묵하기도 하죠.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혼을 경험하고 새아버지의 가정 학대도 경험합니다. 여자친구와 이별하기도 하는 경험을 거치며 그는 클수록 점점 책임감을 느끼는 듯도 보이고 혹은 자유롭게도 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메이슨의 불행과 행복은 그의 아버지의 잘못도 어머니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우 어린 나이에 메이슨과 누나를 낳은 것으로 묘사됩니다. 철이 없는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열살의 메이슨과 늙어버린 아버지와 미래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스무살의 메이슨을 바라볼 때 우리는 메이슨에 대한 안타까움뿐만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도 함께 느낍니다. 자식을 사랑하고 싶었음에도 자식을 사랑해주어야 할 올바른 시기에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 아버지는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아들을 조금은 미안한 눈길로 바라봅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죠. 아들과 딸을 홀로 기르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생을 포기하거나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당당히 교수가 되었죠. 그러나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에게 현명한 분이라며 찬사를 받는 어머니의 표정도, 찬사를 받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두 남매의 표정도 따뜻하지만은 않습니다. 영화는 삶은 다면적이고 다층적이라는 메시지를 뚜렷이 전달하고 있죠.
메이슨을 연기한 아역배우는 엘라 콜트레인입니다. 그의 부모는 그가 아직 어렸을 나이에 이혼을 택했죠. 에단 호크에게는 <보이후드>를 촬영할 무렵 두 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딸이었고 둘째는 아들입니다. <보이후드>에서 메이슨의 누나를 연기한 배우는 감독의 딸입니다. 그녀는 배우가 아닙니다. 앞서 영화는 삶의 다면성을 전달하고 있다고 썼는데요. 그건 단지 제 생각일 뿐이지 3시간이 조금 안되는 영화의 분량 중 대부분은 위의 메시지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아빠와 볼링을 치는 장면. 여자친구와 쓰잘데기없이 벌이는 말싸움. 마당에 누워있는 메이슨. 12년 동안의 연결성없는 여러 개의 이야기는 콜트레인의 삶을 잇는 기억들이 되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감독은 생초짜입니다. 감독 뿐만 아니라 스태프와 배우들도 죄다 초짜입니다. 애초에 그는 감독이 아니라 소설가입니다. 그는 영화에서 자신의 첫사랑에게 고백하지 못했던 과거의 모습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영화를 찍기 얼마전 그는 자신의 첫사랑과 굉장히 닮은 한 신인 배우를 만나게 되죠. 그는 영화를 찍기로 결심합니다. 굉장히 마초적이고 자신감 넘쳤던 감독 구파도는 무술 대회를 열었다가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크게 다치고 첫사랑과 연락이 끊어졌다고 하죠. 아직 첫사랑을 사랑했던 과거의 자신을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한 감독은 여배우에게 한가지 부탁을 했는데요. 마지막 촬영 후에 그녀에게 고백할테니 고백을 받아들이는 연기를 해줄 수 없겠냐는 주문이었죠. 여배우는 승낙했으나 감독은 끝내 고백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원스>의 무명가수는 글렌이라는 실제 가수입니다. 그는 현재 큰 무대를 지양하고 소규모 음악회를 열면서 생활하고 있죠. 그는 <원스>의 여주인공과 영화를 찍으며 실제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무명가수가 거리에서 노래하는 장면들의 관객들은 실제 관객이었고 행인도 실제 행인이었다고 하죠. 어쩌면 이 영화들이 저와 다른 수많은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영화의 몇몇 장면 동안 감독의 디렉팅과 배우의 연기가 프로페셔널의 그것이 아니라 자기 경험 속의 그것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연기가 아니라 진짜였던 것이죠. 영화들이 실재했던 가장 명확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것들이 말 그대로 실재했기 때문인 겁니다.
아니면 다른 이유일 수도 있어요. 앞의 해석들을 죄다 부정하는 것이기는 한데요. 반대로 수많은 관객들이 저는 알수가 없는 서로 다른 이유로 앞의 영화들을 사랑했을 수도 있죠. 저도 그냥 제 경험과 감정에 이끌려 위 영화들이 연출도 각본도 안 좋아서 설득력이 없는데도 감동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제 첫사랑이 제 등에 볼펜을 찔러 저를 불렀었던 습관이 기억났기 때문이거나 밴드에서 키보드를 연주하며 느꼈던 흥분 때문에 영화가 제 마음을 움직였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보이후드>를 사랑한 이유도 제가 부모님에게서 처음 독립하고 아무도 없는 주말 기숙사의 야심한 밤에 이 영화를 틀어놓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고요. 그랬기 때문에 메이슨의 어머니가 갑작스러운 눈물을 흘렸을 때 제 엄마가 흘렸을 눈물이 떠올랐을지도 모릅니다. 문득 어쨌거나 제가 감동을 느낀 이유는 상관없다는 생각도 드네요. 중요한 것은 제가 영화를 보던 순간이 분명한 감정들을 느꼈다는 사실일지도요.
가장 위대하지만 가장 개인적인 영화. 한 소년이 내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낸 영화.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입니다.
평점 5/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