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머우, 붉은 수수밭

온통 붉은 원시적 영화의 세계로 그대를

by 도연호

저는 장이머우의 영화를 좀 특이한 경로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적이 있으신가요. 누군가 어떤 영화를 너무너무 망작이라고 하면 대체 뭔지 괜히 확인하고 싶어지는 그런 마음이 솟아난 적이요. 저도 그런 적이 몇번 있었습니다. <더 마블즈>도 그런 경로로 봤었구요. 장이머우 영화는 처음에 어떻게 보게 되었냐면, 제가 신서유기를 보는데 갑자기 이수근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레이트 월>이라는 영화를 봐보아라 진짜 엄청난 명작이다. 그러니 지금은 군대 문제로 날아가버린 송민호가 리뷰를 찾아보고 연출도 엉망인데 스토리가 개똥망이라는데요?라고 이수근에게 말했고 강호동과 은지원은 바로 깍깍깍깍하는 그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면서 이수근을 비웃어 댔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그레이트 월>을 봤습니다. 안타깝게도 망작이었습니다. 이견이 아마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나서 저는 아시아 영화를 대학교 교양으로 배우게 됩니다. 이때 처음으로 배운 감독이 아이러니하게도 장이머우 감독이었습니다. 이 감독한테 배울 게 없을텐데 이게 무슨 일이지하는 마음으로 그 감독의 영화 몇편을 봤었습니다. <붉은 수수밭>, <홍등>, <인생> 이렇게 3개 영화를 봤었는데 놀랐습니다. 대단한 감독이더라구요. 대체 지금은 어떻게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폭스 캐처>를 만든 베넷 밀러 감독의 실종만큼이나 안타깝습니다.


아무튼 <붉은 수수밭>은 장이머우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중국의 여배우 공리의 데뷔작이기도 하구요. 영화사적으로도 중요하기에 많은 연구가 진행되기도 했고 찾아보시면 뛰어난 평론가들의 평론도 많을 겁니다. 사실 이해할 능력이 있으시다면 제 글보다는 그 분들의 글을 보시는 게 교양 쌓는데는 더 많은 도움이 될 것도 같군요.


보신 분들이 많으실지 적으실지 감이 잘 안 오기 때문에 줄거리를 잠깐 알려드리자면 전반부는 일꾼이었던 화자의 할아버지와 술을 만드는 양조장에 팔려간 어린 아내였던 할머니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둘은 함께 양조장을 운영하게 되지요. 후반부는 일본의 침략과 이에 대한 항쟁을 담고 있지요. 그렇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 최초의 현대소설인 무정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진짜 마지막으로 시작하기 전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글은 영화를 보신 분들을 대상으로 쓴 글입니다. 영화를 안 보셨다면 이해가 힘들 수 있습니다.




붉은 수수밭?


장이머우의 영화는 직관적인 시선으로 보아도 천재적이고 특별합니다. 애초에 장이머우 감독은 사진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이었고 미장센과 영화의 색감은 가히 압도적인 수준입니다. 그런데 영화의 색감이 압도적일 뿐만 아니라 독특하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강렬한 원색을 자주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는 다양한 색이 사용되지만 원색이 그대로 활용되는 경우는 적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원색이 유독 자주 활용됩니다. 강렬한 붉은색, 싯누런 사막의 색감, 푸른 밤과 노란 보름달. 붉은 양조장의 술. 그리고 물론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붉은색이 지배적입니다. 제 기준 가장 아름다웠던 한 장면만 예시로 알려드리면 일꾼들이 잠이 든 푸른 밤에 빛나는 노란 백열등을 밝히고 파이프에서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뿜어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두번째 특별한 점은 굉장히 중국적인 영화이면서 동시에 야만적이라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웃통을 항상 까고 다닙니다. 그리고 둘의 첫 데이트는 할아버지가 그전까지 말 한마디 해본 적 없었던 할머니를 보쌈해가지고 수수밭에서 수수를 온통 짓밟고 그 위에서 사랑을 나눕니다. <붉은 수수밭>은 황금곰상을 수상했는데요. 이때 심사위원들이 말한 이야기가 인상깊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요소이기에 나중에 다루기로 하구요. 느낌만 약간 알려드리면 심사위원들은 중국의 색채를 드러내는 오리엔탈리즘과 영화의 색감에 큰 점수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모순적인 면은 중국 내부에서는 중국인을 실제와 다르게 완전히 야만인으로 왜곡했다며 비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줄이면, 해외에서는 중국적인 영화다!라고 극찬했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외국인들 비위 맞춰주려고 우리를 야만인으로 만들어? 이건 중국적인 영화가 아니다!라고 성을 냈던 것이죠. 제 개인적인 감상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전자에 가깝게 보았구요. 야만성이 해방감으로 투박함이 진지함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어서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강렬한 원색과 등장인물들의 야만성이 잘 어울려서 연출과 설정이 아귀가 맞는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환상적 리얼리즘


그렇다면 이제 한가지 의문이 듭니다. 영화는 아무런 겉치레없이 온통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왜 하필 붉은색일까? 하는 의문입니다. 한가지 해석은 중국을 상징하는 색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일본군의 습격에 양조장의 일꾼들과 할머니는 수수밭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푸른 수수밭은 피에 덮여 붉어지지요. 할아버지는 황망히 서서 어린 아들과 손을 잡고 시체들 앞에 섭니다. 영화는 막을 내리지요. 그런데 이때 이상한 연출이 있습니다. 일식이 일어나서 수수밭이 진짜로 붉어집니다. 화면도 마찬가지구요. 할아버지도 아들도 붉어집니다. 제 생각에는 일본의 침략에 대한 중국의 저항 정신을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인 붉은색으로 형상화한 것 같습니다. 마침 양조장의 어른이 붙잡혀 고문을 당할 때 산채로 가죽이 벗겨집니다. 또 할아버지가 난동을 부릴 때 양조장의 술에 오줌을 쌌는데 그것이 오히려 더 붉어지고 맛있어집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장면들이 일본군 너희들이 아무리 찔러도 우리는 더 붉어질 뿐이다라고 말없이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완벽한 해석이군요. 하지만 이 해석은 한가지 구멍이 있습니다. 장이머우 감독은 영화를 굉장히 늦은 시기에 배웠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예술가였지요. 어느 정도였냐면, 카메라를 사기 위해서 스스로의 붉은 피를 팔았다고 합니다. 왜? 그것은 마오쩌둥의 문화 대혁명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데뷔작을 중국 친화적인 선전 영화를 만들 이유는 사실상 없지요. 그럼 왜 때문에 붉은색으로 영화를 가득 채웠느냐? 이를 많은 사람들은 원시적 열정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원시적 열정 이전에는 그것을 환상적 리얼리즘이라고 혹은 허구적 리얼리즘이라고 불렀습니다. 누가 그렇게 불렀느냐하면 <붉은 수수밭>에 황금곰상을 수상한 심사위원들이 그랬습니다. 영화는 중국의 역사를 그대로 모방하지 않았다는 중국 본토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 영화는 리얼리즘 그러니까 중국의 과거 역사를 환상적으로 왜곡했다는 것이 요지였죠. 그 왜곡이 너무나 매력적이고 연출적으로 뛰어났다고 해외 평론가들은 역설했습니다. 그 근거로는 화자의 존재가 제시되었죠. <붉은 수수밭>은 화자가 자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예전에 이랬다더라하고 설화를 구전하는 형식입니다. 저는 이 해석이 좀 별로였습니다. 제 생각에는 자장커 감독의 <스틸 라이프>가 오히려 환상적 리얼리즘에 가깝고 이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새로 해석해 봤습니다.




원시적 열정


그럼 이제 제 해석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글을 지금까지 읽어주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저는 영화는 기본적으로 감독의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초등학생 때 배운 것을 기억해 보시면, 문학을 해석하는 방법에는 세가지가 있었습니다. 국어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첫번째는 글 내 해석. 두번째는 글 외 해석, 세번째는 독자의 해석. 글 내 해석은 말 그대로 글 자체만 가지고 해석을 하는 것이고 글 외 해석은 작가와 시대적인 외부적 상황을 고려해 해석하는 것입니다. 독자의 해석은 글 내, 글 외 해석 다 필요없고 독자가 느낀 바가 정답이다라는 것이죠. 그중에 저는 창작자의 의도와 시대적 상황을 중시한 해석을 가장 좋아하고 옳다고 믿는 쪽입니다. 물론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습니다.


장이머우 감독의 상황에 대해서는 아까 말씀을 드렸을 테고요. 그 정보를 바탕으로 추론해 보신다면 그의 영화에 대한 열정은 과할 정도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피를 팔아 카메라를 사고, 마오쩌둥이 늙어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늦깎이 복학생으로 영화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신인 여배우를 데리고 찍은 첫 작품이 <붉은 수수밭>입니다. 그의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피처럼 붉었습니다. 엔딩에서 할아버지가 온통 붉어진 채로 영화가 끝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엔딩은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평론가들과 관객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요. 그럼 오프닝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장이머우가 감독으로서 자신을 소개하는 첫장면이니까요. 저는 오프닝에 주목했습니다.


할머니는 붉은 가마에 타 있습니다. 아무도 붉은 가마 안을 볼 수 없지요. 일꾼들은 광활한 노란 사막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신부를 골리기 위해 가마를 잔뜩 흔들어 댑니다. 이때 관객은 온통 붉은 천에 휩싸인 공리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영화의 오프닝에는 할머니가 엔딩에는 할아버지가 붉게 물들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일꾼들은 공리의 얼굴을 볼 수가 없지요. 일꾼 가운데 할아버지가 껴있습니다. 수수밭을 지나게 되면 강도가 나타납니다. 강도가 할머니의 얼굴을 보려 하자 할아버지가 용감히 강도를 쓰러뜨립니다. 강도는 빈 총을 들고 있었지요.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얼굴을 그때서야 처음으로 보게됩니다.


설명이 길었지요. 근데 이 이상 축약이 안 됩니다. 이 오프닝을 제가 해석한 바를 최대한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가마가 카메라입니다. 강도는 문화대혁명이지요. 할아버지는 감독이거나 혹은 문화대혁명 시기를 겪었던 영화인들입니다. 혹은 감독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겪었던 모든 어려움의 총체일 수도 있구요. 공리는 영화라는 매체 그 자체입니다. 공리에 대한 붉은색 원시적 열정으로 스크린은 가득합니다. 어쩌면 영화의 야만성과 강렬한 원색을 활용한 완벽한 미장센은 평론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중국의 과거를 환상적으로 왜곡한 그것이 아닌 감독이 가진 단순한 원시적인 열정이었을지 모릅니다. 그 찬란한 붉은색 화면을 보며 관객들과 평론가들은 찬탄하고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았지만 정작 영화는 단순한 줄거리를 표현한 매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관객들과 평론가들이 본 이 영화의 보이지 않는 투박한 매력은 장이머우의 개인적인 열정의 산물이었던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그 원시적 열정을 장이머우가 잃어버리고 대자본에 발을 들인 그 순간부터 그의 영화 세계가 무너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상입니다. 온통 붉은 영화. 장이머우와 공리의 특별한 데뷔작.


<붉은 수수밭>이었습니다.




평점 4/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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