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니 빌뇌브, 컨택트

시간을 휘어 완성한 원형의 언어학

by 도연호

2026년 12월인가요. <어벤져스 둠스데이>와 <듄 파트 3>가 동시에 개봉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도 개봉일이 다가오고 있지요. 영화 중에는 영화사의 운명을 좌우할만큼 초거대자본이 투입된 영화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영화들을 에픽 영화라고 부르는데요. 시초는 제가 알기로 거대한 전차경기장을 직접 건설해버리고 직접 경주를 벌인 <벤허>일 겁니다. 이러한 대작 영화들은 일정한 특징이 있어요. 일정 스케일을 넘어가는 장대한 액션과 웅장한 세계관. 그에 걸맞는 음모와 주인공 그리고 악역이 곁들여져야 하겠죠. 제가 나열한 영화들만 보아도 어지간히 성공해서는 손익분기점을 넘기가 어렵기 때문에 관객을 갈퀴로 끌어모을 자극적인 요소들이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영화라는 예술을 추구하고 있다라기보다는 어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는 영화에 가깝다는 느낌도 들어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러니까 에픽 영화의 조건들을 충실히 만족시키면서도 예술적으로 보아도 훌륭한 영화를 창조해내는 괴수들이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드니 빌뇌브가 대표적이지요. 오늘은 그중에서도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를 가지고 왔습니다.




펜과 플라스크


<컨택트>의 구성은 단순하고 진부해 보입니다. 한줄로 요약할 수도 있습니다. 외계인이 지구에 방문합니다. 그들의 의도를 알기 위해 전세계 정부들은 힘을 모아 각국의 과학자들을 끌어모으지요. 약간은 이질적인 점은 주인공은 과학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녀는 언어학자이지요. 언어학자 루이즈와 이안은 힘을 합쳐 외계인과 대화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니 관객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외계인 영화를 마주하고 당황하게 되지요. 외계인의 침략도 친구가 된 외계인도 아닌, 외계인과의 소통에 집중하는 영화를 빌뇌브는 영상화하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은 관객에게 흔치 않은 지적 쾌감을 가져다줍니다.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려는 노력보다는 외계인에게 우리 언어를 가르친다는 역발상으로 문제 해결에 전념하는 루이즈. 고전적인 방식으로 카나리아를 우주선에 들고 가는 과학자들. 두 외계인들을 애벗과 코스텔로로 이름짓는 센스있는 농담까지 등장합니다. 정치적인 압력과 외계인을 향한 불신으로 각국이 동요하는 모습도 등장하지요. 외계인과의 대화 이후 괴로워하는 루이즈에게 이안은 언어적 상대성의 개념도 언급합니다. 언어가 개인의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였죠.




시간과 언어는 상대적이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은 관객이 언듯 이해하기 어려운 핵을 투하하고 유유히 떠납니다. 언어로 외계인들과 소통하던 루이즈는 그들의 원형으로 시각화하는 방식의 언어를 배웁니다. 그리고 무척 루이즈는 딸의 꿈을 꾸지요. 아 그리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오프닝을 빼먹었는데요. 루이즈와 딸이 풀밭에서 뛰어노는 장면과 루이즈의 딸이 불치병에 걸려 죽는 씬이 이어지는 시퀀스입니다.


그리고 루이즈가 해석한 외계인들이 지구를 방문한 의도가 전세계로 퍼지면서 각국의 수상들은 우주선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리지요. 루이즈는 급하게 중국의 수상에게 전화를 겁니다. 루이즈를 말리려는 웨버 대령을 이제는 루이즈를 믿고 사랑하게 된 이안이 막아세우지요. 루이즈가 수상에게 한 이야기는 충격적입니다. 그녀는 갑자기 수상의 아직 죽지 않은 아내의 유언을 신들린 듯 읊어댑니다. 장면이 전환되고 중국의 수상은 미래의 한 시점에서 루이즈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그는 루이즈에게 귓속말로 아내의 유언을 전하지요.


루이즈는 결혼하지도 딸을 낳지도 않았습니다. 인간들에게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만 헵타포드들에게 시간은 원형으로 이어져 있었지요. 루이즈는 언어적 상대성에 의해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시간을 인식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그녀는 이안과 결혼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죽을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아이를 낳기로 한 루이즈를 이해하지 못한 이안은 그들을 떠나고 말지요.




드니 빌뇌브의 영화 세계


드니 빌뇌브의 영화는 다른 에픽 영화들과 무엇이 다를까요. 저는 그의 영화들을 보았을 때 어떤 특정한 패턴을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촘촘하고 광활한 세계관입니다. 컨택트에서 공중숏으로 끝이 없는 푸른 풀밭에 떠있는 검은 우주선을 비추는 장면처럼요. <시카리오>의 멕시코의 마약 세계와 정부의 협약과 다툼도 그렇지요. <블레이드 러너 2049>와 <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거대한 아라키스의 사막과 스파이스 채취 기계들이 가져다주는 그 위압감과 모래의 건조함을 기억하시나요. 그의 세계관은 뛰어난 영상미와 혼연일체가 된 음악까지 제시하며 관객을 영화로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있습니다.


두번째는 수동적인 주인공입니다. 그의 세계관에서 사건들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는 코스믹 호러의 성격을 지닙니다. <시카리오>의 케이트는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휘둘립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적극적으로 행동했다면 정부가 마약 전쟁에서 타협하고 비리를 저지르는 것을 막을 수 있었나요? 아닙니다. 알레한드로의 가족이 마약조직에게 살해당하는 것도 막을 수 없는 비극이었습니다. 권력 앞에 그들은 무력했지요. <컨택트>의 루이즈도 결국 이안과 딸과의 이별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듄>의 폴 아트레이데스는 광신도들의 종교 전쟁을 이끌 선지자의 운명에 사로잡혀 있지요.


이제 그건 알겠다. 그래서 그게 뭐가 특별하다는 거냐. 이런 의문이 드실 수가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자 에픽 영화들은 어디를 향해 나아갈까요. <벤허>는 마차경주에 <어벤져스>는 타노스와의 전투에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지요. 드니 빌뇌브는 특이하게도 거대한 자본으로 거대한 세계관을 건설하고 관객의 눈알들을 그 거대한 세계관에 사로잡힌 연약하고 작은 인간에게 돌립니다.


어디에서 어디로 도착하는가. <컨택트>의 원제 Arrival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루이즈의 딸의 죽음에서 출발하여 딸의 탄생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감당할 수 없고 대체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컨택트>는 겉보기에 우주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연약한 인간이 딸의 죽음과 같은 거대한 비극을 수용하고 반응하는 과정이 영화의 핵입니다. 그리고 저는 빌뇌브의 다른 영화들도 같은 방식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빌뇌브의 지적인 영화. 시간과 언어 그리고 인간을 사색한 영화.


<컨택트>입니다.




평점 4/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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