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초속 5센티미터

유년의 기억에 각인된 너에게로

by 도연호

인천의 기숙사는 주말에 한산했습니다. 오후가 되어 기숙사 앨리베이터를 타고 후드를 푹 눌러쓰고 나서면 숲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인공적인 숲이었습니다. 차가운 공기에는 술 냄새가 섞여나고 다리가 후들거릴때까지 걷고는 했습니다. 해돋이공원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자서전과 하루키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하루종일 멍하니 걸어다녔습니다. RADWIMPS와 가로사옥을 들었습니다. 쏜애플과 알루미늄까지 듣고 나면 음악실의 피아노에 자리가 비었을까 호수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밤이 될때까지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으면 그 애가 떠올랐습니다. 밤에 빌딩들과 자동차의 라이트에서 희미한 빛이 번져서 지나가는 학생들을 잘 알아볼 수 없게 되면 그 애가 겹쳐 보였습니다. 그립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외로울수록 추억은 무거워졌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애도 저처럼 거리를 혼자 걷고 있을 상상에 눈을 감으면 검은 하늘에 별동별처럼 하얀 직선의 빗금이 그였습니다. 월요일이 찾아오면 다시 기숙사가 붐빕니다. 저는 기억을 잠그고 다시 웃고 말하고 썼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년과 소녀의 사이에 기찻길이 놓여있습니다. 소녀가 소년에게 묻지요. 내년에도 우리가 벚꽃을 함께 볼 수 있을까? 소년이 답을 하려던 그 순간에 열차가 지나갑니다. 프레임은 열차로 가득하고 소녀의 얼굴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Cherry blossom


<너의 이름은>이 탄생하기 이전,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은 작가주의와 대중성 사이의 간극에 있었습니다. <해리 포터와 불의 잔>처럼 <초속 5센티미터>는 <언어의 정원>과 함께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세계를 둘로 나누었을 때 사이를 잇는 교두보입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일본에서 지금 저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합정역 거리와 비슷하게 보이기도 하고 빛은 그때처럼 흐붓하게 빛나구요. 자정이 훌쩍 넘었습니다. 피곤하군요.


타카기는 전학이 잦습니다. 아카리도 전학이 잦습니다. 우연히 둘은 서로의 일상을 가득 채웠습니다. 아직 초등학생인 둘은 언제까지나 함께 하리라 생각하고 있지만 곧 둘은 서로 다른 중학교에 진학하고 타카기는 끝내 멀리 전학을 갑니다. 중학생 타카기는 아카리를 만나러 기차를 탑니다. 가깝지만 어린 중학생에게는 멀었습니다. 벚꽃처럼 눈이 쌓이고 열차는 노란 빛을 내뿜으며 오랜 시간 눈밭에 머무릅니다. 약속시간보다 몇시간을 늦은 타카기는 역에 발을 내딛습니다. 그곳에는 추운 승합실에 졸고 있는 아카리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의 시간은 점점 빠르게 흐르고 있습니다. 어린 둘에게는 시간이 초속 5센티미터 그러니까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만큼이나 느리게 흐르고 있지만요. 과학적으로도 시간은 상대적이지만 철학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둘의 서로를 향한 마음은 승합실의 그 밤에 영원했던 무엇일지도 모릅니다. 영원했던. 모순적이지만 그렇습니다. 또 벚꽃이 떨어지고 눈이 떨어진다는 그 추락의 이미지도 그렇습니다. 벚꽃잎이 둘의 마음을 상징하는 오브제라고 해볼까요. 벚꽃잎이 지고 둘의 편지는 뜸해집니다. 둘의 거리는 멀어집니다. 벚꽃처럼 눈이 쌓여 기차는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타카기와 아카리는 마음이 지나치게 컸기에 눈처럼 벚꽃이 두껍게 쌓였기에 서로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끝내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타카기는 도쿄로 진학해 아카리를 지키겠다고 다짐합니다.


기술적으로 보자면 빛의 마술사라는 별칭이 어울리는 단편입니다. 타카기와 아카리의 작화는 평범하지만 여름 학교 책상을 덥히는 잔잔한 햇볕, 대합실 난로의 붉은 빛. 눈밭을 지나가는 열차에서 흘러나오는 그 불빛. 악의를 가지고 번뜩이는 붉은 신호. 열차의 철제 바닥에 백열전등의 빛이 반사되어 일그러지는 모양까지 완벽합니다. 그리고 순간순간의 정지된 프레임 그리고 감정이 절제된 타카기의 나레이션만으로 간접적으로 암시되는 타카기의 마음까지도요.




Cosmonaut


이제 시간은 시속 5킬로미터로 흐릅니다. 카나에는 서핑을 합니다. 그녀는 흘러가고 나아가는 이입니다. 카나에가 짝사랑하는 타카기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도쿄로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왜? 알 수 없습니다. 그는 이제 아카리와 연락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의 편지는 방향을 잃고 그는 주인이 없는 문자를 쓰고 지웁니다. 쏠 대상이 없는 그는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쏩니다. 우주선이 그저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듯 그도 나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카나에는 타카기에게 고백하기를 포기합니다. 타카기는 그녀가 보기에 우주비행사와 같았습니다. 목표가 없이 영원처럼 끝없이 나아가는 타카기. 그러나 그는 영원을 이미 경험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영원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 순간에 타카기에게 아카리의 입술은 슬프지만 영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카나에의 강아지는 마치 고양이를 어루만지던 아카리의 잔상처럼 연출적으로 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순간에 타카기가 아카리를 떠올렸을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타카기는 어쨌거나 카나에가 자신이 먹던 커피 우유를 똑같이 골랐다는 사실도 카나에가 고백하려 했다는 사실도 카나에가 왜 우는지도 몰랐으니까요. 어쩌면 그는 스스로가 읽었던 나니아 연대기의 캐스피언 왕자처럼 그저 공허와 몽상의 나라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카리와 상관없이 말이지요. 그러니까 카나에와 타카기가 본 우주선의 이륙은 이어질 수 없는 아카리를 품고 그녀를 향해 나아가고자하는 타카기에 대한 비유일수도 있고 혹은 그저 타카기가 두번째로 경험하게 된 경이와 영원의 순간일수도 있는 것이지요. 빨라가는 시간의 속도처럼 나이가 든 타카기의 두번째 이야기의 러닝타임은 눈에 띄게 짧아집니다.




초속 5센티미터


타카기는 도쿄에서 프로그래밍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공허한 일상을 보내고 있지요. 그는 그의 연인과 수백개의 문자를 주고받았지만 둘의 거리는 단 1센티미터도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단편의 러닝타임은 15분 정도입니다. 아카리는 다른 이와 결혼을 합니다. 어느날 아카리와 타카기는 동일한 꿈을 꿉니다. 폭설이 내리던 날 서로와 입을 맞추는 꿈이지요. 아카리는 그에게 보여줄 벚꽃을 찍으러 길을 나섭니다.


이제는 어른이 된 소녀와 소년이 우연히 다시 서로를 지나칩니다. 둘은 동시에 뒤돌아봅니다. 소년이 소녀를 보려던 그 순간에 기차가 지나갑니다. 아카리와 타카기의 추억들이 플래시백으로 상영됩니다. 기차가 프레임을 가득 채우고 지나갔을 때 소녀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소년은 미소를 지으며 돌아섭니다.


왜? 타카기에게 아카리는 초속 5센티미터의 속도로 너무나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혹은 아카리에게는 더이상 자신이 필요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안도의 웃음일지도 모르지요. 혹은 아카리와 함께한 영원을 바로 그 순간 관객들이 확인한 것과 같은 형태로 타카기가 확인했을지도 모르구요. 어쨌거나 영화의 정보는 충분하지 않으니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정의내릴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이니까요.




지나간 것들


신카이 마코토는 이 영화에서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실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사랑의 실패. 그리고 우주선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꿈의 실패.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 신카이 마코토는 담담하게 괜찮다고 이야기합니다. 지금의 일상이 비루할지라도 실패의 순간과 동경의 순간 사랑의 순간은 영원했음을 그는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것을 이해시키는 방식은 시간과 속도 거리의 상대성을 통해서입니다. 어린 아카리와 타카기가 Cherry Blossom에서 경험한 시련은 중학생이 아닌 성인에게는 너무나 미미한 거리에 의해 발생합니다. 열차가 지체되는 시간은 관객에게나 타카기에게나 지독할 정도로 느리게 흐릅니다. 그리고 타카기의 마음에 아카리가 그토록 오래 머무르며 그를 고통스럽게 한 것도 어쩌면 그때 타카기가 너무나 어렸고 벚꽃잎은 너무나 느리게 떨어져서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좀 두서가 없었습니다. 이게 뭔 글이다냐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하기도 하지만 스티븐 킹도 그렇게 쓴다니까 그냥 이해해달라고 뻔뻔하게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네요.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재난을 다루는 방식이나 별과 우주, 시간과 거리를 다루는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면서 체계적으로 소개할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깊이를 전달해 주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호불호도 갈리고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심지어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보다도 평이 안 좋은 경우도 있습니다만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곧 개봉할 실사영화도 기대가 되는군요.


빛의 마술사가 다룬 시간과 속도 거리의 상대성과 공허함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 남은 유년의 기억 그리고 영원에 대한 애니메이션.


신카이 마코토의 <초속 5센티미터>입니다.




평점 5/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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