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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닉 Aug 01. 2017

연애상담일기 - 12살 연상녀와 결혼서약서를 쓰다





"나 이혼한다."



그에게서 전화가 온 건 미국으로 떠난 지 1년이 넘어서였다. 그들은 내가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내던 커플이었다.


그 커플은 결혼과 동시에 남해의 작은 마을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었다. 두 사람은 도시의 삶에 염증을 느꼈고, 자연을 동경했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귀농하고 싶다고 한 입으로 말하는 커플. 버려진 농가주택을 수리해서 집을 꾸미고, 작은 텃밭을 가꿀 때만 해도 둘은 제법 보기 좋았었다. 젊은 나이에 농촌에 들어와 사는 모습이 딱했는지 주변에 도와주는 분들도 많았다.


자리를 잡아가나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고 말았다. 둘의 뉴욕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고 들었다. 비록 여행비자지만 돈도 벌고 여행도 다니며 새로운 기운을 받고 싶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두 사람 다 충동적인 경향이 있었다. 서울에서 남해까지의 생활도. 남해에서 뉴욕으로의 이동도. 돈을 벌며 여행을 다니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호주에서 워킹 경험이 있던 나로서는 둘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듣고 놀랐었다.



"돈 벌러 간 거였어?"



그들은 그곳에서 조금만 고생하면 한국에서 집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집을 사기 위해서 미국에서 일하는 게 이상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버렸다.


뉴욕 생활이 깊어 갈수록 그들의 관계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살인적인 스케줄 때문에 집에 오면 쓰러져 잠들었고, 스트레스로 작은 일에도 예민했다. 남해에선 텃밭의 오이와 고추를 나눠먹으며 함께 웃었지만 뉴욕에선 얼굴 보기도 바빴다. 여행자 신분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갈등이 있었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마음과 돈을 조금만 더 모으면 집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욕심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결국 둘은 뉴욕 한복판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어떻게 할 거야? 한국은 안 오니?"


"모르겠어.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면 뭘 할 수 있을까?"


"뭐든 하겠지. 별 걱정이다."


"불법체류 중이라 한국 가면 다시는 여기에 올 수 없어. 처리할 문제도 있고..."



공동소유의 재산 문제. 돈 문제. 땅 문제. 이혼은 여러 가지 문제를 낳는다. 그 뒤로 그에게서 가끔 전화가 왔다. 힘들다는 하소연. 뉴욕 생활의 비루함. 자기합리화와 자랑들. 불행했던 결혼생활을 이야기했다.


슬프고 힘들어하는 그에게 현지의 선배가 누군가를 소개했다. 스무 살부터 뉴욕 생활을 했던 앤이라는 여자였다. 열두 살 연상의 싱글녀였다. 처음엔 그저 아는 누님 정도라고 여겼다고 했다. 사이가 급속하게 발전한 건 과도한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내 말을 잘 들어줘."

"앤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

"나와 잘 맞는 사람 같아."



그렇게 둘은 연인이 됐고 관계가 깊어졌다. 나이 차이는 문제 될 게 없었다. 보통의 연인처럼 데이트를 하고 사소한 다툼도 있었다.


앤도 자기처럼 상처가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20살에 미국으로 건너와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삶이 녹록지 않았다고. 그녀 집안의 식구들도 그의 존재를 알게 되고 결국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나 두 번째로 결혼하려고!"


"그래 축하해. 그런데 어머니는 아셔?"


"힘들었는데.. 실은 지금까지 이혼한 것도 숨기고 있었거든."


"이혼한 것도 모르셨구나."


"이혼한 거 말씀드리고 새로운 사람하고 결혼도 하게 됐다고 말씀드렸어."


"잘했다. 어머니는 뭐라셔?"


"그런데 내가 괜한 말을 한 거 같아!"


"왜 뭐라고 했는데?"


"그냥 거짓말하기 싫어서 결혼하는 사람의 나이를 이야기했거든. 그리고 앤은 나와 네 번째 결혼이라고도..."


"너랑 12살 차이 나는 것도?


"말씀드렸어. 그랬더니 이제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며..."


"그걸 전부 말씀드렸다고?"


"솔직히 말씀드리고 싶었지."


"너 정말 못 됐구나! 이기적 놈아! 엄마 생각도 했어야지!"


"그럼 뭐라고 말씀드리니? 속일 수는 없잖아?"


"그럴 때 말을 아끼거나 좋게 바꿔서 말씀드릴 수도 있는 거잖아. 그게 거짓이라도..."


"거짓말이잖아. 내가 거짓말을 못해. 알잖아? 너도."  


"아무튼 엎질러진 물이다. 주어 담을 수 없다. 결혼식 잘 해라!"


"고마워. 그런데 엄마한텐 어떻게 하지?"


"기다려야지. 마음이 풀리실 때까지..."


"그렇구나. 그렇겠지. 나 이제는 정말 잘 살 거다!"


"언제는 진짜 잘 안 살았냐? 한국은 언제와?"


"지금은 결혼식 때문에 돈도 없고. 영주권 문제도 그렇고. 최대한 빨리 가야지."


"그놈의 돈은 항상 사랑과 우정을 초월한다!"


"그러게 사는 게 별 볼일 없다."



그렇게 그는 뉴욕에서 연상의 여인과 결혼서약서를 썼다. 영주권 문제로 한국에서보다 더 공식적으로 서약을 맺었다.


자연에서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귀농을 선택했고, 한국에서 더 잘 살기 위해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던 커플은 이제 없다.






사랑은 의도치 않게 변질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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