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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닉 Aug 04. 2017

연애상담일기 - 괜찮아. 연애 안 해도 돼!





명절만 다가오면 어디든 도망치려는 사람들이 있다. 싱글들이다. 추석과 설이 가까워질수록 가시방석에 앉은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한다.


그녀는 내가 아는 싱글들 중에서 유독 명절을 더 힘들어했다. 무려 무남독녀 외동딸에 뭐하나 빠지는 게 없는 골드 미스였다. 인권 변호사라는 직함을 달고 있었고 이쁘장한 얼굴의 소유자였다.


보통 이렇게 말하면 여자가 기운이 세서 그런다. 잘나서 그런다며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뭐랄까. 네 맞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그럴지도 몰라요. 정도의 반응이랄까.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그런 반응에 시들해졌다. 반응이 없으면 더 이상 호기심도 관심도 갖지 않는 것이 사람들의 특징이니까.






하지만 가족과 친척들은 달랐다. 아무래도 친척들은 그녀를 일 년에 한두 번만 만나다 보니 볼 때마다 호기심이 식지 않는 것이다.


친척들은 그녀에게 매년 똑같은 질문으로 그녀를 고문했다. 심지어 좋은 사람을 소개하겠다고 사진을 들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머릿속엔 오만가지 생각들이 깜빡일 것이다.


'빨리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해야 할 텐데...'

'저러다 평생 혼자 사는 거 아니야?'

'저 나이 먹도록 연애 한 번 안 했다고.'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등등






그녀가 겪어야 하는 고통의 강도는 매년 더 해 갔다. 추석을 두 달이나 앞두고 그녀가 나를 찾은 건 안 봐도 비디오였다.  



"올 해는 추석이 너무 길어서 미칠 것 같아요!"


"보자마자 그 소리. 도망쳐. 해외로."


"부모님이 기다리는 거 뻔히 알면서요?"


"효녀 났네."


"십 년째 똑같은 말을 해요. 다들 로봇 같아."


"십 년째 연애를 안 하니까 그렇지."


"그냥 그럴 수도 있지요. 내가 이상해요?"


"아니 안 이상해. 그 사람들이 이상하지."


"당연하죠. 내가 뭐가 이상해. 참 기가 막혀서."


"사람들은 나와 다르게 사는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해."


"아니 좀 다를 수도 있지. 그걸 왜 색안경을 쓰고 보냐고요?"


"남들과 비슷하게 사는 게 맞다고 배웠으니까. 그게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하니까."


"인생에 정답이 어딨냐고요?"


"그렇지. 인생엔 정답이 없지. 그래도 내가 비교적 남들처럼 혹은 남보다 잘 살고 있다는 만족감은 무시할 수 없어."


"사람마다 다른 거잖아요? 나름대로 행복하면 되지!"


"네 말이 맞아. 자기 삶에서 행복하면 되지. 그런데 어떤 사람은 꼭 이렇게 해야 행복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잖아."


"그건 자기 생각이잖아요."


"맞아. 그 사람 생각이지.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잖아. 너도 그렇고."


"내가 뭘요? 누구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구먼."


"괜찮아. 연애 안 해도 돼! 너 또 이 말이 듣고 싶은 거지?"


"아무도 그 말을 안 해 주니까. 그렇죠? 괜찮아 연애 같은 건 안 해도 된다고."


"괜찮아. 결혼 안 해도 돼!"


"맞아요. 그 말도 세트니까."


"넌 참 신기해. 혼자가 그렇게 좋으니?"


"선배도 참 자기 생각만 해요. 제가 혼자서 궁상만 떨어요? 이렇게 선배도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일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살잖아요."


"미안. 나도 모르게. 그 말 취소할게."


"모르겠어요. 그냥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좋은 사람도 만날 수 있겠죠. 지금은 아니지만. 영원히 못 해도 상관없고요."


"이해해. 그 마음. 그걸 받아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문제지. 지금까지 누구의 무엇으로만 살아와서 그럴 수도 있어. 자기가 없어서."


"한 번 더 해주세요. 그 말."


"괜찮아. 연애 안 해도 돼!


"다른 말도요."


"괜찮아. 결혼 안 해도 돼!"


"아 좋다. 힘이 좀 났어요. 올 해도 명절을 무사히 넘기고 올게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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