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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닉 Aug 05. 2017

연애상담일기 - 가면을 쓰다




처음 술을 배울 때는 한두 번 실수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 사소한 실수가 그저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지만 어떤 이에겐 평생의 상처로 남기도 한다.


그는 만취한 상태에서 필름이 끊겼고, 눈을 떴을 땐 응급실의 침대 위에서였다. 20대 초반의 건강한 남자가 장애인이 되는 건 한 순간이었다. 지하철 CCTV 속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그는 직접 봤다고 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철로 위로 떨어지는 자신의 모습부터 엠블란스에 실려가는 모습까지.


"그 순간의 일이 전혀 기억이 안 나요! 그냥 악몽을 꾼 것 같아요. 지금도 꿈속에 있는 느낌이고요."


기차는 그의 두 다리를 절단했다. 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신이 장애인이 될 거라고 상상조차 본 적이 없었다.  재활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만큼 장애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는 재활 치료 중에 의족을 맞췄다.


"남들보다 길고 큰 신발을 신는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이고 외향적인 그도 집으로 돌아와 의족을 벗으면 우울해졌다. 앉은뱅이가 돼버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건 힘든 일이다. 


그 사건 뒤로는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그가 내 앞에서 다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 술은..."


"다 술 때문이죠. 술만 마시지 않았어도."


"너무 자책하진 말고."


"저 어제 차였어요!"


"그랬구나."


"마음에 들었어요. 그 사고가 있고 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이었어요. 만난지 3개월 지나고 모텔에 갔었어요."


"모텔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그 날 처음 고백했죠. 다리가 없다고. 그랬더니..."


"그랬더니?"


"남자가 사고로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위로하더라고요."


"별 일 없었네."


"어느 다리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양쪽 다라고 했죠. 그랬더니 당황하더라고요. 그리고 떠났어요."


"마음이 아팠겠네."


"죽고 싶더라고요. 진짜 병신 같아서."


"말이 심하다."


"그 사람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거잖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은 기억을 지우는 가면이 있대요.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는 가면. 그 가면을 쓰고 싶어요."


"부모님이며 친구들의 기억이 다 사라지는데..."


"상관없어요. 지금이 너무 싫어서 전부 지워버리고 싶어요."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는 건 어때? 모임들이 있을 거야?"


"저 같은 병신들이 모여 있겠죠!"


"술 취했구나. 그만 마시고. 혼자가 부끄러우면 나랑 같이 갈까?"


"됐어요. 관심 없어요."






그에게 다시 연락이 온 건 그로부터 1년 뒤였다.


"저 다음 달에 결혼해요."


"잘 됐다. 축하해."


"모임에서 만난 사람이에요. 저처럼 사고 한쪽 다리가 없어요. 저는 두쪽인데 저보다 낫죠."


"서로 마음이 통했구나."


"그 사람 앞에서는 가면을 쓸 필요가 없어요. 저를 편하게 해줘요."


"다행이다. 진심으로 축하해."


"고마워요. 그때 그렇게 말해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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