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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닉 Oct 10. 2017

연애상담일기 - 군대간 남자친구




한국 국적을 가진 건강한 20대의 남자라면 군대를 피해갈 수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 문장은 미국의 심장 전문의 로버트 엘리엇의 '스트레스에서 건강으로-마음의 짐을 덜고 건강하게 삶을 사는 법'의 유명한 구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군대에 간 한국 남자들의 머릿속에 좌우명처럼 박혀 되뇌는 말이 되었다.


군대를 가야만 하는 남자 친구와 그들을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


군대 간 남자를 기다려야 하는 여자들도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하는 것일까?


대학 후배였던 그녀 또한 남자 친구가 입대를 하고 그리운 마음에 편지를 정성스럽게 쓰던 평범한 곰신이었다. 틈만 나면 사람들과 함께 남자 친구 부대에 면회를 가며 애정을 과시하던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 



"남자 친구는 아직 군대에 있지?"


"네 부대에 있어요."


"얼마나 남았지?"


"앞으로 350일 남았어요."


"정확하게 알고 있구나."


"군전역계산기로 매일 확인했어요."


"그 친구는 좋겠다. 이런 여자 친구가 있어서. 둘 관계는 변함없고?"


"지금까지는 변함없어요. 앞으로가 문제에요."


"왜 무슨 문제인데?"


"남자 친구가 하사관으로 지원하겠대요!"


"하사관? 직업군인?"


"네 며칠 전에 직업군인이 되겠다고 말했어요."


"그렇게만 말했어?"


"아니요. 자기에겐 이게 최선의 길이라고... 저에게 이해해 달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그 문제 때문에 상의하러 온 거고요."


"그랬구나. 그 친구 생각대로 직업군인이 되면 전역이 문제가 아니네."


"1년 넘게 기다렸는데... 직업군인이 되겠다는 말을 들으니까 저도 모르게 힘이 빠지더라고요."


"이해해. 병역의 의무 때문에 군대에 간 것과 직업으로 군인을 선택하는 건 완전 다른 문제니까."


"캠퍼스 커플로 시작해서 군대 기간까지 합치면 벌써 3년이 넘었어요. 지금도 서로 좋아하는 감정은 변함없어요. 그런데 직업군인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제 주변 친구들도 직업군인과 사귀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요. 좀 혼란스러워요."


"구체적으로 말해봐. 널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뭐야?"


"직업군인이 되면 평생을 기다려야 하잖아요. 출퇴근을 하겠지만 그래도 훈련에 군생활은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직업군인에 대해서 찾아보니까 사병과 거의 다르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승진이 안 되면 당장 그만둬야 하고 그것 때문에 계속 스트레스받고... 모르겠어요. 이해할 수 없어요. 갑자기 직업군인이 되겠다는 게!"


"요즘은 군생활 중에 직업군인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어. 공무원처럼 안정된 생활에 퇴직 후에 연금도 넉넉하게 나온다고..."


"그건 나중 이야기잖아요. 20년 뒤를 생각하고 살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그건 그 사람의 인생이잖아요. 제 인생은 어쩌고요. 아직 20대 초반밖에 안 됐는데 남자 친구가 계속 군대에 있는 건 상상도 못 해 봤어요. 제가 학교 졸업할 때까지 아니 그 뒤에도 계속해서 군생활을 해야 하잖아요."


"그게 직업군인의 삶이니까..."


"가장 두려운 건 결혼이에요. 남자 친구가 직업군인으로 지원한다고 말하면서 진급만 되면 결혼하자고 말하는데... 솔직히 결혼까지는 생각을 못 해 봤거든요. 남자들은 왜 그렇게 이기적이에요? 밉더라고요."


"그랬구나. 아무래도 그 친구는 직업군인으로 살겠다고 결정했을 때, 결혼도 염두에 뒀을 거야. 어떤 사람들은 일찍 가정을 갖고 싶어 하니까."


"그전부터 알고는 있었어요. 남자 친구가 빨리 결혼하고 가정을 꾸미고 싶어 한다는 걸요. 편지에도 매일같이 그 이야기를 했어요. 그럴수록 부담스러웠고요. 아직은 때가 안 된 느낌이에요. 아직 사회생활도 안 해 봤는데 결혼하고 아이라도 갖게 되면 꼼짝없이 전업주부가 돼야 하잖아요.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지금 마음 같아선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요."


"당장 그렇게 되는 건 아니겠지. 아직 직업군인이 된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한 것도 아니니까.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하면 되는 문제야."


"그 문제를 생각하는 게 고통스러워서 그래요. 그 생각만 하면 잊고 싶어서 계속 딴짓만 하고 남자 친구가 원망돼요.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지..."


"나도 군대에 갔을 때 하늘이 원망스러웠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지... 돌이켜봐도 끔찍한 순간이었어. 그런데 그 또한 지나가더라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전 군대 간 사람이 아니잖아요!"


"센스 없긴, 나도 너와 똑같은 심정이었다는 거야. 남자 친구와는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게 좋겠어. 직업군인이 된다고 해도 시간이 필요할 거야. 적성에 안 맞아 금방 그만두는 사람도 있으니까."


"저도 그러고 싶은데 남자 친구는 확인을 받고 싶어 해요. 몇 년 후에는 꼭 결혼하자. 이런 식이에요. 계획이 분명해야 하고 목표가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처럼요."


"정말 군인스럽구나."


"그게 저를 더 혼란스럽게 해요. 여유를 주지 않아요. 이상하죠. 군대에 있는 사람보다 제가 더 방방 떠서 칭얼대고."


"군대가 뭐 별건가? 그 친구도 너무 일방적으로 자기 계획만 있는 느낌이야. 네 말처럼 여유 있게 긴 안목으로 보고 계획을 세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급할수록 돌아가란 말처럼..."


"전 어쩌면 좋죠?"  


"우선 전역계산기부터 부셔버려."


"헤어지라고요?"


"직업군인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전역일을 계산할 필요가 없으니까 계산하지 말라는 소리야."


"그게 끝이에요?"


"그리고 그 친구에게 편지를 써. 전화하지 말고."


"뭐라고요?"


"직업으로 군인을 선택하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군인의 아내가 되는 건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그럼 그 사람이 힘들어하겠죠?"


"이건 힘들고 상처 주고 하는 문제가 아니야. 단지 솔직한 내 마음을 알려주는 것뿐이야. 헤어지잔 이야기도 아니잖아. 여유를 갖고 생각해 보겠다는 거니까. 만약 그렇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것 때문에 힘든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땐 헤어지도록 해. 그런 사람과는 행복할 수 없으니까."


"이상해요. 전 곰신을 거꾸로 신은 것도 아니고, 그럴 마음도 없는데... 왜 이런 상황이 돼버렸는지. 제대하면 더 좋은 커플이 될 줄만 알았는데..."


"오히려 좋은 기회야. 다른 사람은 생각도 못 해 본 걸 고민할 수 있는 기회니까. 살아가는 게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잖아. 어떤 사람을 만나고 여러 가지 추억들이 쌓이고 헤어지기도 하는 게 자연스럽고 건강한 삶이잖아.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는가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 시련이 나에게 좋은 거름이 될 거라고 생각해!"


"남자 친구와 헤어질 건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최악의 경우는 헤어질 수도 있는 거네요?"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그건 최악이 아니라 최선일 거야. 그리고 한 번 헤어졌다고 인생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잖아. 그런 과정을 겪을수록 생각이 깊고 단단해져서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로울 수 있는 거야."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다고요?"


"응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의연하게 나에게 가장 좋은 선택을 하게 될 거야."


"지금 저에게 가장 좋은 선택은 뭐죠?"


"아까 말한 대로 편지를 쓰고 기다리는 거지. 그 전과 다른 마음으로. 조급해하지 말고."


"솔직히 제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단지 남자 친구가 빨리 제대하길 바란 것뿐인데... 기약 없이 더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어떻게 돼 버렸나 봐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에게 모든 걸 맞춰줄 수는 없어. 생각도 못한 상황이 언제 어떻게 닥칠지 아무도 몰라.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인생이 바뀔 수도 있어. 지금의 처한 상황도 힘들고 두려운 것 잘 알아. 그럴 때일수록 마음을 가볍하고. 내가 어떻게 해야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지만 생각해. 피하지 말고 더 당당하게 헤치고 나가야지."


"진짜 그럴 수 있을까요. 제가 겁이 많아서..."


"나도 겁이 많아. 다들 그래."


"알겠어요. 힘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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