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한번 뒤로 가서 볼까요?

파란 병과 오렌지 (4)

by 김초록


오늘도 도구 세팅을 하고 나면 무엇을 먼저 할까 궁리한다. 색이 채워질수록 시작이 막막해진다. 동시다발로 손대고 싶기 때문이다.


캔버스에 색을 많이 덮었음에도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캔버스의 하얀 천이 보이는 '하얀 점'들이 있다. 그림의 '바닥'부분이 유독 많았기 때문에 바닥부터 시작했다. 회색과 연보라를 섞어 칠한다. 특히 사물과 사물 사이에 세밀하게 붓이 닿아야 하는 부분을 신경 써서 메꾸어 봤다. 그러다 보면 내가 잘못 본 색이 있고 짙고 옅은 그 사이 색이 보인다.



따라 그리려는 피사체 그림이 내 캔버스보다 커서 사물이 꽉 차다 못해 넘칠 수준이다. 바닥의 우글거리는 천의 부드러움, 그림자를 어떻게 구현할지 막막했지만 초벌 작업은 오히려 나에게 '무식하면 용감한 단계'이므로 얼추 그 위치에 '그려봄'을 시전 했다. 그리고 이제 올 것이 온 '정신 똑바로 차리고 붓질해라 단계'가 온 것 같다. 아래 사진을 보면 눈치채실 수도 있겠다. '망한 부분'에 대해서..... 어색함을 넘어선 '이상함'이 감지되셨다면 바로 그것. 거기 맞아요.




하단부 구겨진 천이 올라온 부분과 그림자 처리를 버벅거리면서 이렇게도 섞어보고 저렇게도 섞어보고. 잘 되지 않아 근처의 오렌지 그림자의 번짐 효과도 표현해보았다. 그리고 병의 좌우 대칭을 나름대로 수정해 보았다. 정확하게는 우측 병목 라인을 조금 더 통통하게 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대칭이 잘 맞지는 않았다. 말린 후 다시 교정을 해보고 싶다.


그럼에도 이쯤 되면 이 그림을 지난번에도 본 사람은 그렇게 물을 수 있다. "지난번과 무엇이 달라졌느냐"

그래서 프롤로그에 썼었다. 어쩌면 <비포&애프터> 어쩌면 <숨은 그림 찾기>라고.

바로 직전 사진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아시는 분? 당신은 아마도 '숨은 그림 찾기' '고수' 일지도.


어쨌든 기억을 더듬어 나의 붓질의 의미를 찾아가 성의 있게 숨은 그림 찾기 정답을 기록한다.




결국 선생님이 오셔서 난잡해진 그림자 구현하기 현장에서 교통정리를 해주셨다. 추가로 (내가 눈감아 버리고 싶어 보지 못했던) 새로운 그림자 까지. 3분도 채 되지 않은 붓터치였는데 색도 많이 쓰지 않았고 새로운 점은 아무 색도 묻히지 않은 새 넓은 붓을 활용해서 경계를 부드럽게 풀어준 것이다. 과감하게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화이트보다 더 하얀 화이트인 '징크 화이트'를 활용해서 도드라져 보일 수 있는 부분은 강조를 한다. 오렌지에만 있었던 '구체'에서 입체감이 전체로 확장됐다. 하지만 근거리에서 본 바닥 부분이 그다지 피사체와 유사한지 영 감이 오지 않았다. 어떻게 선생님처럼 내가 그릴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선생님의 작업은 '수습'에 기반한 것이라 그런 것일 수도. 항상 그림을 그릴 때 선생님이 하는 말씀이 있다. "자, 나와서 보세요. 멀리서 한번 볼래요? 어떻게 보이는지."


맞다. 열심히 그리다가도 그림을 확인하는 방법은 의자에서 일어나 멀리서 보는 것이다.

인생도 그런 것이겠지. 멀리서 한 번 보면, 호흡에 여유가 돌지.

(이 그림도 한번 멀리서 봐주실래요?)


선생님이 교정해주면서 다음 시간엔 마무리를 할 수 있을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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