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간의 부재
초록과 노랑 사이 바나나 잎 (2)
그리기를 쉰 것은 아니다. 5월에 시작한 그림을 세 달째 이어 그리고 있다. 한 가지만 매주 2시간 반 씩. 매 번 색을 입히는 작업만 하다 보니 글감이 부재했다. 그래서 글을 쓰지 못했다. 항상 찍어오지 못했고 약간의 작업 변화를 사진으로 담았다.
선생님은 오늘 세밀한 잎맥 2개 정도 이렇게 작업을 해보라고 지시했다. 정말 잎맥을 그리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내 스타일이나 느낌대로라면 사실 더 투박하고 모질러(?)보이게 뚝뚝 끊어서 색을 표현하고 이쯤에서 마무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지금 배우는 중이니까, 어느 정도까지 완성도가 올라가는지 보고 싶다. 꼼꼼함을 요구해도 너무 지나친 것 같을 정도의 나의 성질 벽을 뛰어넘는 작업이라는 생각이다. (지금까지도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more and more...)
내 성질을 뛰어넘지 못할 것 같을 때는 붓을 내려놓는다.
내 그림이지만 질릴 때가 있다. 권태로움이 온다. 그럼에도 뛰어넘지 못하면 그림을 다시 못 볼 것 같다. 내가 시작한 그림, 누가 완성해주나? 내가 끝내야 한다. 왠지 극복하고 싶어 진다.
가끔 그리기가 흡사 수도승의 정진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번외) 그리기 생활에 대해
질문 1 : "역시 미술은 소질이 있어야 해. 맞지?" 친구의 말
내가 이 프로그램에 입문하면서 여러 어르신들과 함께 배우는데, 이 분들이 하나 같이 나를 보며 하는 말이 있다. "자기는 젊어서 이거 시작해서 너무 부럽다. 난 조금만 일찍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 난 이 말에 두 가지 논점이 있다고 보는데 하나는 우리나라 입시교육의 문제, 다음은 30대 중반 한창 경제 활동할 나이의 한계다. 소질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이 있으면 할 수 있어야 하는 거다. 학창 시절 '그리기'란 입시할 것이 아니면 쓸모없는 짓거리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굳어진 것이다. 소질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페인팅이나 드로잉의 순기능에 대한 것들은 은퇴 후의 삶에나 두드러진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내 나이에 한가하게 미술 취미생활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나도 경제활동을 다시 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 육아나 직장에 치이는 친구들에게 함부로 권할수는 없다. 이런 세대에 낀 자로서 '한가하게 취미로 그림이나 그리는' 취급을 받고 싶지는 않은데 여러모로 그리기 활동으로 수혜를 입고 있으니 고리타분한 평가들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관심이 있고 즐거우면 해보는 거다. 잘 그려야만 그리기를 꿈꾼다는 생각이 이젠 진부한 변명 같을 정도..
질문 2 : "어떻게 그리기가 '하고 싶지?'"
위에 언급했던 '그리기의 수혜를 입었다'는 것에 이어지는 맥락일 수 있다. '그리기'는 우울증에 효과가 좋다. 난 약을 복용하지 않고도 우울감으로부터 벗어나려고 그리기를 하고 있다. 그 맛은 못 본 사람은 모른다. 이 보다 더 좋은 설명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