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습한 공기가 얼굴에 훅 끼쳤다. 7월 초라는 걸 믿을 수 없을 만큼 무더운 날씨였다. 비행기표와 호텔만 예약하고 홀린 듯 떠나온 곳은 후쿠오카였다.
후쿠오카는 자주 왔던 도시여서 왠지 마음이 편했다. 여기라면 길을 잃을 염려도, 낯선 풍경에 압도될 두려움도 없었다. 그 익숙함은 어쩐지 울타리와 닮아 있었다.
도심을 살짝 비껴간 위치에 호텔을 잡아 두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도심 속 번화가보다, 마이즈루 공원 앞 연못에 연꽃이 피기 시작했는지 보고 싶었다. 하지만 먼저, 한 끼를 해결해야 했다.
내가 먹고 싶은 게 뭔지 짚어내기까지 호텔 근처 상점가를 세 바퀴 돌아야 했다.
왠지 맘에 든 작은 식당에서 도미머리 간장조림을 주문했다. 할머니들이 많길래 요리가 담백한 곳인가 했는데, 생각보다 달달한 간장 맛에 밥 한 그릇을 싹 비웠다.
체크인 전, 시간을 때우러 주변 쇼핑몰로 향했다. 무더위 속에 십오 분을 걸어 도착했지만 정말 볼 게 없었다. 작은 실패 또한 혼자 다니는 여행의 묘미였다.
모든 게 좋았다. 저녁에 곁들인 무알콜 병맥주도, 호텔 근처에서 산 안닌도후(杏仁豆腐) 푸딩도. 무엇이든 웃고 넘기면 그만이었고, 내 선택의 결과에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온전히 나의 필요만 신경 써도 되는 시간은 생각보다 더 큰 해방감을 가져다주었다.
정신없이 새벽부터 움직인 탓에, 묵직한 이불을 덮자 곧 깊은 잠에 빠졌다.
이번 여행엔 그저 마음 편히 놀고, 맛있는 건 많이 먹을 요량이었다. 밭일할 때 쓰는 것처럼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채 하이에나처럼 골목골목을 쏘다녔다. 드럭 스토어에서 산 쿨링시트도 목에 칭칭 감았다.
튀김 정식을 먹고, 오타쿠 상점을 보다가 크림이 듬뿍 든 크레페를 먹었다. 가방 구경도 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이나 재밌는 구경보다 더 기억에 남은 것은, 길 위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 오래도록 한 자리를 지켜온 가게의 간판, 화분, 가로수 아래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빛.
목적지로 바쁘게 향하는 중 갑작스레 주어진 포상 같았다. 그건 아무리 전철 노선이 익숙하고 도시를 잘 알아도 예측할 수 없는 순간들이었다.
반면, 계속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린 즐거움도 있었다. 좋아하는 프랜차이즈 카페의 아이스 카페라떼 한 잔에 더위를 씻어내고, 자연스레 복잡한 길을 지나 근처 잡화점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새로운 도시로 떠났다면 낯선 환경에 약간은 긴장했을 거다. 그랬다면, 내 몫으로 주어진 즐거움을 깨달을 여유도 좀 부족했을지 모른다.
후쿠오카는 내게 있어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 걸쳐진 도시였다. 거리는 익숙하지만, 내가 소속된 곳은 아니기에 적당히 편안한 거리감이 있었다.
"내게 이 이상의 장소는 없었겠군." 생각하며 작은 푸딩을 두 개 연거푸 들이키고 잠자리에 들었다.
'혼자 행복한 사람이 둘이서도 행복하다'고 한다. 그 말에 따르면 내겐 둘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여겼다. 나는 혼자 뭐든 씩씩하고 용감하게 해내니까.
그럼에도 풀리지 않았던 의문의 답이 이 곳에서 어렴풋이 형체를 갖추고 있었다. 혼자도 잘 지내고, 상대방에게도 잘해주는데 왜 상대는 나를 함부로 대할까 — 그건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었다.
그가 날 귀하게 여겨주길 바라면서도, 나도 그가 정한 기준 안에 갇혀 그만큼만 날 존중했다. 그러다 보니 관계의 저울이 늘 그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러나 사랑은 나를 버리고 깎아내며 지켜내는 것이 아니었다.
기운 저울은 언젠가 무너지기 마련이다. 혼자서 행복하려면,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했다.
여행 마지막 식사로 택한 초밥집에서 행복한 가족과 커플들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그 모습에 더 이상 마음이 쓰리지 않음을 깨달았다. 이번 여행 내내 그랬다.
나는 혼자서도 이미 행복에 닿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