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과 분노를 지나 마침내

by 도요

나를 돌보지 못했다는 걸 처음 깨달았을 때, 모호하고 아득하여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모든 연애는 뭔가를 가르쳐준다.

헤어짐을 고민하는 이가 있을 때마다 건넨 문장이었다. 정작 나는 분노밖에 얻지 못했다. 무기력한 상태로 자책을 반복했다. '좀 더 일찍 빠져나왔어야 하는데, 바보같이..' 하고 후회하면서 침대를 떠나지 못했다.

존재를 부수는 이별 후에 나 자신을 단단히 일으키기. 그게 이번 이별이 내게 준 가장 큰 숙제였다.


끊어졌던 세상과의 연결을 처음 이어준 건 가족과 친구들이었다. 내가 집에 틀어박힌 걸 알고는, 카오위를 먹자거나 북촌의 마카롱 집에 가자고 나를 꼬드겼다.

처음 먹어 본 마라 카오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맛있었고, 유자바질 마카롱은 스쳐 가는 계절을 내 안에 기록하는 선명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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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사 스토어, 그라운드시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순라길. 가게와 집만 오가던 지친 일상에 새로운 이름과 공간들이 들어왔다. 조각을 맞추듯, 자연스레 마음의 틈이 조금씩 메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행복하게 웃는 연인들을 마주할 때 입맛이 쓴 건 어쩔 수 없었다. 나 또한 그런 행복을 염원했으니까.


하지만 멈춰 서서 잃어버린 시간을 반추할 틈이 없었다.

나는 이미 충분히 오래 멈춰 있었고, 이젠 나아가야 했다.


서울 탐방을 하지 않을 때는, 내 손으로 매 끼 건강한 식사를 만들어 꼭꼭 씹어 넘겼다. 혼자 먹는 밥도, 일하지 않는 일상도 낯설었지만 비워낸 만큼 채워갈 기대에 몸이 살짝 떨렸다.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정리와 청소를 반복하고, 물걸레로 먼지를 닦아냈다.


빛이 나도록 닦은 주방, 먼지 한 톨 없는 거실, 텅 빈 안방에 나그참파 인센스를 태웠다. 요가원에 갈 때면 마음이 좀 차분해졌기에 집에서도 그 기분을 이어가고 싶었던 탓이다.

그렇게 조심스레 평화의 맛을 보고 있자면 이내, 전보다 뚜렷한 분노가 덮쳐왔다.


평화라는 새로운 감각은 외려 분노의 땔감이 되었다. 노자의 제자인 양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외며 살아가던 내겐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의 파도였다.


전철에서 누가 밀쳐도, 음식 배달이 한 시간 늦어져도 괜찮았는데 — 그럴 수 있는 일이니까.

아무리 말을 걸어도 핸드폰에 눈이 고정된 채로 "뭐라고? 못 들었어."만 반복하던 그의 낯짝이 떠오르면 구역질이 났다. 그런 사람에게 사랑받아 보겠다고 애쓴 내가 안쓰러웠다.


서른여섯이 되도록 이렇게 강한 분노를 겪은 적은 없었다.

해방감과 외로움이 같이 다가왔고, 분노와 억울함이 날로 커져갔다. 마음을 어떻게든 가라앉히고 이 분노를 철저히 몰아내자고 다짐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거니, 내겐 더더욱 아무렇지 않을 자격이 있었다.



그렇게 나를 지배한 분노와 처음 마주 보게 되었다. 배가 고픈 사자를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처음 평온한 일상의 맛을 보여준 건 서울 나들이와 달달한 디저트, 매트 위의 요가였다. 그리고 내 손으로 만든 따뜻한 한 끼, 먼지를 털고 인센스를 피우는 일. 뭐든 닥치는 대로 반복하며 평소의 무던한 나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랐다.


하지만 불편한 감정을 억누르고 외면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분노는 점점 더 날카롭게 존재를 드러냈다. 송곳이 폐부를 찌르듯 자꾸만 '나 아직 여기 있어'라고 어필해 왔다.

시간이 흐른다고 분노가 저절로 잊히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한계에 다다른 뒤 깨달았다. 사자를 재우는 게 아니라, '길들이는' 쪽으로 전략을 바꿔야 했다.


분노는 날 해치기 위해 온 게 아니었다. 그건 나를 지키려고 애써온 감정이었다.

그래서 이 감정을 밀어내지 않고, 꺼내어 합당한 제 자리를 찾아주기로 했다.


"참지 않아도 괜찮아. 나에겐 화를 낼 권리가 있어."

속삭이며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심장이 두근거릴 때마다 4초 들이마시고, 6초를 내쉬기를 반복했다. 숨이 길어지는 만큼 분노는 조금 작아지고, 호흡이 편안해졌다.

장을 보며 속으로 그를 향해 욕지거리를 날리고, 절대 같이 가주지 않았던 코인노래방에 가서 마음껏 내질렀다. 몇 년 만에 MMA 경기를 보기도 했다. 마음이 좀 풀릴 때까지 저주도 잊지 않았다. 참고 삭히기만 하는 대신, 내 안에 넘치는 감정을 자연스레 발산했다.


이제 나는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숨을 고르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스스로를 다독이고 왜 화가 났는지 물으며, 차츰 이 '낯선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고 있다.


분노는 여전히 내 안에서 숨 쉰다. 다만 이제 나는 그 숨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사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내 곁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날 위협하는 존재가 없는지 내 주변을 살핀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언젠가 — 그 숨소리조차 자장가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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