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의 발레 <볼트>를 들어요.

오늘도 일하기 싫은 당신! <볼트>를 들어라!

by 도자기

러시아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를 아시나요?

어디선가 그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보신 적도, 혹은 쇼스타코비치의 가장 유명한 곡이라고 할 수 있는 왈츠 2번을 들어보신 적도 있으실 거예요. 잘 모르시겠다고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의 삽입곡으로 유명하다고 하면 기억이 나실 수도 있을 거예요. 쿵 짝짝 쿵 짝짝하는 왈츠 반주 위에 따~ 라라 라~ 하는 멜랑꼴릭하면서 귀에 착 달라붙는 선율은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테니까요.


IMG_8124-2.JPG 쇼스타코비치, 대략 1940년

쇼스타코비치는 1906년생으로 위 사진은 30대 시절의 모습입니다. 그는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출신입니다. 이 도시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말씀드리겠지만 그와, 그가 쓴 곡과도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지요.




오늘 소개해드릴 음악은 바로 쇼스타코비치가 쓴 곡 중 <볼트>라는 발레입니다.

볼트라고? 네, 그 볼트 맞습니다. 집에 하나씩은 있을 공구함에 속 너트의 영원한 짝꿍, 볼트 말이에요.


imagesizecacheurl.php.jpeg 쇼스타코비치 발레 <볼트>, 볼쇼이 극장 제작

발레 <볼트>는 쇼스타코비치가 1930년-1931년에 작곡, 1931년 레닌그라드(당시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당연히 레닌에서 가져왔습니다.)에서 처음으로 공연된 발레입니다. 그러나 이 발레는 말 그대로 첫 공연이 마지막 공연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 2000년대에 들어서 볼쇼이 극장에서 다시 이 발레를 공연에 올릴 때까지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번도 공연되지 않습니다.


왜?

오늘은 그 이야기에 대해 해보려고 합니다. 더불어 발레 <볼트>와 쇼스타코비치 음악의 영업글이기도 합니다.


발레 <볼트>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룐까는 일하기 싫어합니다. 그는 결국 공장에서 쫓겨나고, 반감을 가지고 사보타주를 계획합니다. 바로 공장의 기계 안에 볼트 하나를 넣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의 이 행동은 적발되고, 결국 룐까는 체포됩니다.


간단한 플롯이지만 조금 이상함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 이 발레는 1930년 러시아, 그러니까 당시 소련에서 만들어진 곡입니다. 국가가 산업 생산을 주도하고, 제1차 경제개발 계획이 한창이던 당시 소련에서 사보타주를 계획하는 주인공을 둔 발레를 쓰는 것은 어땠을까요? 그리 윗선들의 눈에 탐탁지 않았겠지요? 작품의 결말은 사보타주를 저지하는 것으로, 그들의 입장에서는 해피엔딩이었지만요.


두 번째, 공장을 배경으로 한 발레라고?

보통 발레라고 하면 <백조의 호수> <로미오와 줄리엣> <신데렐라>와 같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우아한 공연을 떠올리실 수 있지요. 물론 그것도 발레, 이것도 발레입니다. 그저 곡이 쓰인 배경이 다를 뿐이죠.


당시 공장은 러시아 구성주의 예술가들에게 흥미로운 소재였습니다. 작곡가 모솔로프는 <공장>이라는 곡을 쓰기도 했고, 작가 로드첸코는 자신을 '기술자'로 표현하고 실제 공장 노동자들이 입고 다니는 것과 같은 작업복을 입었지요. 1931년 <볼트>의 초연 디자인 역시 타티아나 브루니라는 구성주의 작가가 맡았고요. 당시 코스튬 디자인 스케치만 보아도 구성주의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fd9c9007-fed1-4fc1-accd-f9a69e763841-1436x2040.jpeg 발레 <볼트> 코스튬 디자인, 타티아나 브루니


그러나 이 발레는 1931년 4월 8일 초연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말 그대로 딱 한 번 공연하고 사라진 것입니다.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진행 중인 소련에서 사보타주를 소재로 한 발레라니.. 확실히 위험했을 겁니다. 그 결말이 어떻더라도 말이죠.




쇼스타코비치는 <볼트> 이외에도 두 개의 발레를 더 만들었습니다. <볼트> 이전에 작곡한 <황금시대>와 <볼트> 이후에 작곡한 <맑은 시냇물>이라는 발레이지요.

1930년 초연된 발레 <황금시대>는 서구에 방문한 소련 축구팀을 소재로 한 발레입니다. 서구의 갱들이 소련 축구팀을 모함하려고 하지만, 결국 소련 축구팀은 위기를 이겨낸다는 내용이지요. 이 발레에는 우리의 귀에서 익숙한 쇼스타코비치의 유명한 곡들(탱고, 쇼스타코비치의 '타히티 트롯(Tea for Two)' 편곡)이 들어있습니다.


47388-9ed4d821a4aedd80591932ac47277709.jpg 쇼스타코비치 발레 <황금시대>, 볼쇼이 극장 제작
1522085978453.jpeg 쇼스타코비치 발레 <황금시대> 속 타히티 트롯(Tea for two) 장면, 볼쇼이 극장 제작


1935년 초연된 발레 <맑은 시냇물>은 소련의 집단 농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발레는 <볼트>나 <황금시대>와 마찬가지로 체제 선전의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집단 농장에서 펼쳐지는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실제 현실 속 집단농장의 그림자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QPAC_Bolshoi_7-6-13_8846.jpeg 쇼스타코비치 발레 <맑은 시냇물>, 볼쇼이 극장 제작


그러나 이 두 작품 모두 각각의 이유로 비난을 당합니다. <황금시대>는 작품 속에 서구의 퇴폐 음악(탱고 등)들이 들어있다고 공격을 받고, <맑은 시냇물>은 이 작품이 배경으로 한 코카서스의 전통 음악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집단 농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마치 '사탕 봉지 위에 그려진 농부'와 같이 표현했다. 라는 비난을 말이지요. 하지만 당연히 쇼스타코비치는 집단 농장의 현실을 작품에 담을 수 없었겠지요. 현실은 너무 참혹했고, 정부는 절대로 그런 현실이 발레에 반영되는 것도 원치도, 그렇게 놔두지도 않았을 겁니다. 결국 이 비난들은 어떻게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덫입니다.


결국 쇼스타코비치는 <맑은 시냇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발레를 쓰지 않습니다. 따라서 쇼스타코비치의 발레는 <황금시대>, <볼트>, <맑은 시냇물> 이렇게 딱 세 개 뿐이지요.




이런 우여곡절이 있지만 쇼스타코비치의 발레는 들어볼 만합니다.

쇼스타코비치의 발레 음악은 생동감 넘치고, 경쾌하고, 어떤 부분은 마치 놀이공원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줍니 다. 체제 선전의 내용을 담고 있었기에 소련의 낙관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그런 음악을 썼다고도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또한 세 발레 음악은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발레 <맑은 시냇물>에는 앞서서 작곡한 발레 <볼트>의 음악들을 많이 가져와 썼습니다. 볼트는 결국 한 번만 공연하고 더 이상 공연되지 않았으니까 쇼스타코비치 입장에서는 더 이상 공연하지 못하는 발레 음악을 다음 발레에 가져다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도 쇼스타코비치의 발레 음악 모음곡(Suites)들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 경쾌함과 넘치는 생동감은 없던 힘도 만들게 해주거든요.

그러니 여러분도 일하기 싫은 날, 쇼스타코비치의 발레 <볼트> 음악을 들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내 주머니 속에도 매일같이 돌아가는 기계를 멈추게 할 볼트가 하나쯤은 들어있다!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힘차게 톱니바퀴를 돌려보는 겁니다! 쇼스타코비치의 발레 음악과 함께라면 할 수 있어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