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일터에서 높으신 분과 함께하는 좌담회가 열렸다. 그곳에서 높으신 분은 당시 자리에는 없었지만 한 직원이 개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일을 화제로 꺼냈다. 그 채널은 아직 수익창출 조건을 달성하지 않은 상태였다. 높으신 분은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하셨다.
질문의 직접적인 대상자는 내가 아니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나는 그 질문이 마치 나 자신을 향한 것처럼 느껴졌다. 왜냐하면 나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유튜브는 화제에 오른 직원이 운영한 유튜브 채널보다도 훨씬 적은 수의 구독자를 갖고 있다.
(돈도 안 되는데) 그걸 왜 하는데?
이 질문은 내가 나 자신에게 수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유튜브 채널뿐만이 아니었다. 독립출판 만화책 작업도, 지금 글 쓰는 것도 모두 돈이 되지 않는 일이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모든 작업은 제작비를 회수하면 성공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다. 그래서 이걸 왜 하는데?
그 대답은 현재 두 가지 정도로 답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좋아하니까 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사랑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작업을 떠올려보면 독립출판 만화책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쇼스타코비치 그 이후> 그리고 공동 작업한 <칼리가리 박사의 얼굴>이 있다.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내 사랑이야... 두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 클래식 음악 역시 10년째 애정하고 있는 장르이다. <칼리가리 박사의 얼굴>의 소재가 된 독일 표현주의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역시 내가 좋아하는 영화이다. 좋아하는 것을 소재로 작업하고, 독립출판물을 만들고, 제작비를 벌 수 있다는 사실은 '돈도 안 되는 일'로 치부할 게 아니다. 제작비를 벌어 책을 만들고! 북페어에도 나갈 수 있다니!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쇼스타코비치를 그린 만화로?! 감사한 일이다.
사실 그동안 내가 그렸던 모든 만화, 일러스트레이션, 그동안 썼던 모든 글, 브이로그 영상은 내가 좋아하고 진심으로 작업하고 싶어서 만든 결과물이다. 물론 작업하는 과정에서 힘든 일도 있었지만, 힘들다고 좋아하는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모종의 애증? 비슷한 복잡한 감정까지 섞여서 결국에는 마음이 더 깊어지며, 점점 더 빠져나오기 힘든 어딘가로 가게 된다.
두 번째 이유는 최근에 읽은 한 책에서 인용하고 싶다.
"그러니 작가가 글을 쓰는 건 바로 '독자'를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아닌, '당신'인 독자를 위해, '친애하는 독자'를 위해...(중략)... 그리고 어쨌거나 이런 이상적인 독자는 누군가, 어떤 '한 사람'이지요. 독서라는 행위도 글을 쓰는 행위처럼 언제나 단수로 이루어지니까요."
- 마거릿 애트우드, 박설영 역, <글쓰기에 대하여>, 프시케의숲(2021), 214
이 문장은 내가 오랫동안 찾고 있던 바로 그 마음이었다. 언젠가부터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작업을 봐주는 사람이 있다면 계속하자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런 마음을 갖고 있어야 작업을 지속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마음은 더해져 그 '단 한 사람'이 '미래의 나 자신'일뿐이라도, 그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미래의 나 자신이 내 작업의 독자가 된다는 것은 사실 종종 경험하게 되는 일이다. 일단 글이든 만화든 퇴고할 때 이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며칠 전, 몇 달 전 쓰거나 그린 작업을 마주하면 막 작업을 끝마쳤을 때보다 다소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경우는 이쪽이 아니라 조금 더 시간이 흘러 한 작업이 완전히 끝난 뒤,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내가 한 작업을 다시 보게 되는 경우이다. 이럴 때는 보다 독자에 가까운 시각을 갖게 된다. 또한 작업한 당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같으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미래의 나 역시 한 명의 독자로 볼 수 있다.
물론 나에게도 독자가 있다. 정말 감사하게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이다. 나에게는 독자 한 명, 한 명이 정말 소중하다. 그 수가 적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그래서 지금 읽고 있는 <작가란 무엇인가2>에서 보르헤스의 다음 말을 만났을 때 바로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구매자들을 전부 찾아가서 책에 관해 사과하고, 구매해준 데 대해서 감사를 표하고 싶었지요. 그런 감정이 생긴 이유는 서른일곱 명이라는 사람들이 실제 살아 있는 인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 모두가 자신만의 얼굴이 있고 가족이 있고 특정한 거리에 살고 있다는 게 실감났습니다. 그런데 2000부가 팔린 경우라면 하나도 팔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2000명은 너무 많은 숫자거든요. 상상력으로 파악하기엔 너무 많습니다."
- 파리 리뷰, 김진아˙권승혁 역, <작가란 무엇인가2>, 다른(2015)
이 대목은 보르헤스가 오래전, 그러니까 1936년 출판한 책의 구매자들을 두고 한 말이었다. 서른일곱 명이라는 구매자 수를 보며 나는 텀블벅 후원자들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두 번 텀블벅 펀딩으로 독립출판물을 만들었는데 딱 이것과 비슷한 숫자였다. 직접 포장하고 배송까지 마치며 접한 후원자에 대한 체감은 정말 '특정한 거리에 살고 있는', '구매해준 데 대해서 감사를 표하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독자는 아직도 한 사람, 한 사람이다.
이런 생각들 속에 "(돈도 안 되는데) 그걸 왜 하는데?"라는 질문은 점점 흐려진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며, 내 작업을 보는 독자 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꿈속에서 꿈을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에서 돈을 쓰며 살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미래의 내게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좀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내게는 이것으로 충분하고, 나머지 이유들은 앞으로 차차 찾아가고 더해가면 된다.
2021. 03. 27.
도자기
<인용 출처>
- 마거릿 애트우드, 박설영 역, <글쓰기에 대하여>, 프시케의숲(2021), 214
- 파리 리뷰, 김진아˙권승혁 역, <작가란 무엇인가2>, 다른(2015)
이 기회에 소개합니다. 제가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과 그동안 만든 독립출판물 판매 링크입니다^^ 지속 가능한 창작을 위해서 구독과 구매는 사랑입니다♡
1.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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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독립출판 4컷 만화책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구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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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독립출판 리소 단편 만화책 <칼리가리 박사의 얼굴> 구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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