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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자기 Oct 19. 2021

내 진짜 삶은 어디에 있을까?

내 진짜 삶은 어디에 있을까?


한동안 이런 고민을 했었다.

당시 내 상황, 주변 환경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나온 질문이었다. 


그렇다면 저 질문을 던졌을 때 내 진짜 삶은 어디에 있었을까?

생업으로 꾸역꾸역 나가는 일자리가 내 진짜 삶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마음이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작가로서 작업하는 순간이 내 진짜 삶이었을까?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간단히 끝났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한동안 자료 조사에 시간이 많이 걸려 생업을 주 3일제로 확 줄인 적이 있었다. 생업에 종사하지 않는 일주일의 남은 4일 동안은 오로지 자료 조사와 작업에 매달렸는데, 4일 중 3, 4일째가 되면 내 머릿속에 머물던 생각은 "제발 이 지옥에서 날 꺼내 줘."였다. 당시 내가 하던 작업은 정말로 좋아하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그리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온전히 작업만 해서 살아갈 수는 없는 사람이구나.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 끝을 정해두지 않고 하고 싶지만, 그것이 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내 진짜 삶은 어디에 있을까?

SNS? 블로그와 브런치에 올리는 글 속? 


그렇지도 않았다. SNS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또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창구임과 동시에, 항상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었다. 마음속에 넘쳐나는 말들을 털어놓는 글은 SNS보다는 나았지만, 그것이 내 진짜 삶이라고 하기에는 글 쓰는 시간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도 작았다. 글 쓰는 시간이 내 진짜 삶이라면 그 나머지 시간은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다가 "내 진짜 삶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질문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진짜 삶'이 있다는 것은 그것에 반대되는 '가짜 삶'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삶에 '가짜'가 존재할 수 있을까? 물론 살아가기 위해 내 진짜 모습을 숨기고 태연한 척 행동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가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모습을 하고 있던 순간은 당연히 힘들고 때때로 괴로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가짜'라고 인정한다면 내 마음속 무언가가 갈기갈기 찢어지고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마음이 무너질 것처럼 괴롭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은 아직도 불쑥불쑥 찾아오지만, 어떤 게 진짜 삶이고 가짜 삶인지는 이제 묻고 싶지 않다. 그저 이 모든 순간과 장소 속의 나는 수없이 나눠진 삶의 여러 가지 단면 중 하나일 것이다. 삶에 어떻게 진짜와 가짜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거지? 도망치고 싶고, 그만두고 싶은 그 순간들마저 나는 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데. 


이제는 그저 드디어 시작된 내가 좋아하는 찬 바람 부는 계절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관심 가는 책을 읽고, 따뜻한 이불을 덮고 자는 순간순간에 집중하고 싶다. 매일매일 힘들고 도망치고 싶어지고 짜증나는 순간들이 찾아오지만, 그런 상황들 속에서도 가끔일지언정 조금이나마 빛이 보이는 순간이 존재하고,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힘들고 도망치고 싶고 괴로울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굴레는 앞으로도 계속 반복되겠지만 매년 가을이 지나고 내가 사랑하는 겨울이 오는 것처럼, 살고 있다면 그 모든 순간이 내 일부분이고, 가짜는 없고 모두 진짜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내 진짜 삶은 어디 있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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