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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자기 Jan 16. 2022

『불꽃같은 생애』

수학자, 작가, 혁명가 소피야 코발레프스카야 전기

2022년 첫 번째로 완독한 책은 바로 『불꽃같은 생애 - 수학자, 작가, 혁명가 소피야 코발레프스카야 전기이다. 이 책은 1850년 제정 러시아에서 태어나 근대 유럽에서 여성으로서 최초로 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스톡홀름 대학교의 정교수가 된 소피야 코발레프스카야(1850-1891)의 전기이다. 절판된 책이고, 모 온라인 중고 서점에서 무려 4만 원에 가까운 돈으로 판매하고 있어서 도서관에서 빌려 봤다. 이 책을 소장한 도서관도 집에서 거리가 있어서 처음으로 택배 대출을 이용했는데, 걱정과 달리 편했고 좋았다. 택배 대출은 반납도 택배로 보낼 수 있어서 집에서 먼 도서관의 책을 대출하고 싶을 때 종종 쓰면 좋을 것 같다.


소피야 코발레프스카야에 대해 알게 된 건 재작년 읽은 책 Science, Women and Revolution in Russia에서였다. 이 책 역시 같은 저자인 앤 히브너 코블리츠의 책이다.

Science, Women and Revolution in Russia』는 1860, 1870년대 유럽 대학에서 여성으로서 최초로 과학, 수학, 법학 등 분야에서 학위를 받은 러시아 여성들과 당시 시대적 배경을 다루고 있다. 


그 시작은 나데즈다 수슬로바이다. 그는 1865년 취리히 대학의 청강생으로 등록해, 1867년 최초로 정식 여학생이 되었고, 그해 9월 시험을 통과해, 1867년 12월 14일 유럽 대학에서 최초로 의학사 자격을 받은 여성이 된다. 나데즈다 수슬로바를 이어 러시아 여성들은 약학, 생리학, 수학, 법학 등 분야에서 유럽 최초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나데즈다 수슬로바(1843-1918)


러시아는 유럽이지만, 유럽의 중심이 아닌 변방에 있는 나라이다. 그런데 1860, 70년대 러시아 여성들은 왜 조국이 아닌 스위스, 독일 등 외국으로 건너와 공부를 하고 이곳에서 학위를 받았을까?


이는 당시 러시아 대학에 여성이 입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위 책들에 의하면 1860년대 초에 여성들은 청강생으로 수업을 듣곤 했지만, 이는 1861년 3월에 시작한 학생 봉기가 무력으로 진압되면서 정식으로 등록한 학생을 제외한 모두에게 대학의 문을 닫으며 막힌다. 여성은 정식으로 러시아 대학에 등록할 수 없었기에 이는 여성이 더 이상 대학에서 수업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고등 교육을 받고자 한 여성들은 개인 교습을 받거나 외국에서 공부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어졌다.


여기서 당시 러시아 진보주의 사상과 여성 교육 운동의 관련성도 주목할 만하다. 1860년대 러시아 급진주의 운동의 기본적인 두 가지 신조는 사회의 병폐를 치유하기 위한 교육의 힘을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며 따라서 똑같은 권리를 가질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남성 니힐리스트들은 공부하기 원하는 여성들에게 무료 강습을 해주었다.(출처 : 『불꽃같은 생애) 


또한 자연 과학 분야와 진보주의 사상의 관련성도 있다. 진보주의자들에게 과학은 종교와 권위에 도전하는 대표적인 학문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의학 등 당시 자연 과학 분야의 지식인들은 상대적으로 여성 교육에 열려 있었고, 초기에 고등 교육을 받으려 한 많은 여성들이 자연 과학 분야를 공부하려고 했다.


특히 1860, 70년대 여성들의 이야기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위장 결혼'이었다. 당시 러시아에서 여성은 아버지 혹은 남편의 여권에 등록되었다. 이때 여권은 지금처럼 국외 여행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 혹은 남편의 여권에 등록된 여성들은 남성의 승낙 없이는 일할 수도, 공부할 수도, 심지어 그들과 따로 떨어져 살 수 없었다.(출처 : 『불꽃같은 생애)


그래서 자국 내에서 고등 교육의 길이 막히고, 결국 외국에서 공부하는 길뿐이었던 여성들은 아버지의 허락을 받지 못한 경우, 자신이 외국에 나가 공부하는 것을 허락해줄 남편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이때 그들이 선택한 것이 바로 '위장 결혼'이다. 


위장 결혼의 단어 그대로 취지는 여성의 유학을 승낙해줄 적당한 남편감을 찾아 서류상 결혼하고, 결혼 후 여성은 유학을 떠나고, 남편은 여성의 삶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물론 이 위장 결혼이 그들이 뜻한 대로만 된 것은 아니고, 부부간에 위장 결혼의 개념을 서로 다르게 인식한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정말 말 그대로 '위장 결혼'을 했고, 어떤 이들은 처음에 위장 결혼으로 시작했다가 후에 부부 관계를 맺게 되었다. 『불꽃같은 생애의 주인공 소피야 코발레프스카야가 후자의 경우였다.


사실 2022년을 사는 내가 느끼기에 결혼은 일종의 굴레이다. 그래서 나에게 결혼은 하고 싶은 사람은 하는 거고, 그러나 나는 할 생각이 없는 제도이다. 2022년의 내가 이렇게 느끼는데 150년 전은 오죽했을까. 그런데 1860, 70년대 몇몇 러시아 여성들은 결혼을 유학을 가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이런 시각과 그들의 행동력, 의지에 감탄했고, 그들의 이야기에 점차 빠져들었다.

소피야 코발레프스카야(1850-1891)


다시 『불꽃같은 생애 이야기로 돌아와서, 소피야 코발레프스카야는 1868년 열여덟 살의 나이로 출판업자이자 당시에는 아마추어 과학자였던 블라디미르 코발레프스키와 위장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1년 뒤, 소피야는 러시아를 떠나 독일 하이델베르크로 간다. 이때 그와 동행한 것은 남편 블라디미르와 소피야의 언니 아뉴타, 사촌 율리야 레먼토바, 후에 합류한 율리야의 사촌이었던 안나 예브레이노바였다. 이때 소피야와 함께 러시아를 떠난 율리야 레먼토바는 몇 년 뒤 유럽에서 여성으로서 최초로 화학 박사 학위를 받고, 안나 예브레이노바는 법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소피야의 언니 아뉴타(안나)는 파리 코뮌에서 활동한다.


소피야는 이후 베를린으로 거처를 옮겨 베를린 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지는 못하지만 저명한 수학자 바이어슈트라스의 지도를 4년간 받게 된다. 이 사이에 파리 코뮌이 있어, 그때 파리에 가기도 하고 그런다. 그리고 1874년 근대 유럽에서 최초로 여성으로서 수학 박사 학위를 받게 된다. 이때 박사 학위를 받은 학교가 괴팅겐 대학이다.(괴팅겐 대학이 출석하지 않은 외국인에게도 학위 수여하는 것으로 평판이 있어서)


학위를 받은 소피야는 조국 러시아의 고등 교육 기관에서 자리를 구하기 위해 돌아가지만, 그때까지도 러시아는 고등 교육 기관에서 여성에게 교수 자리가 열려있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학생으로도 받아주지 않았다. 이후 1878년까지 4년 남짓 소피야는 수학 연구에서 손을 놓고 대신 투기에 뛰어든다. 이 시기에 그때까지 위장 결혼 관계였던 남편과 부부 관계를 맺고 딸을 낳기도 한다.


하지만 부부는 파산하고, 1878년 이후 소피야는 다시 수학 연구로 돌아온다. 그는 연구를 위해 베를린으로 건너가고, 유럽의 저명한 수학자들과 교류한다. 이때 베를린에서 소피야를 가르쳤던 바이어슈트라스의 제자인 미타하 레플러는 대학에서 소피야의 자리를 알아보려고 노력한다. 그 결과 1883년 11월, 소피야는 당시 스톡홀름 대학에서 무급 강사 자리를 제안받고 수락한다. 이후 미타하 레플러 등 소피야를 지지하는 이들의 도움으로 소피야는 1884년부터 1889년까지 5년짜리 조교수 비슷한 특별 교수직에 임명된다. 


그리고 1888년 12월, 소피야는 회전 문제에 관한 논문을 완성해 프랑스 과학원에서 보르당상을 수상하고, 1889년 6월 중순 마침내 스톡홀름 대학의 종신 교수직에 임명된다. 이는 여성으로서 근대 유럽 최초라 하고, 그 이후에 여성이 유럽 대학에서 교수가 된 것은 1906년 마리 퀴리였다.


그러나 소피야는 불과 2년 뒤인 1891년 감기가 악화되어 사망한다.



그리고 소피야와 이름이 똑같았던 그의 딸 소피야는? 그는 초등학교를 스웨덴에서 마치고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가 모스크바 고등 여성 교육 과정을 다닌 뒤 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소련과 외국의 적십자에서 일하고, 의학 사서, 스웨덴어 번역가로도 활동했으며, 일흔넷에 소련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1860, 70년대 나데즈다 수슬로바와 러시아 여성들이 유럽 대학의 문을 열기 시작한 이후로 많은 러시아 여성들이 그 뒤를 이었다.


Science, Women and Revolution in Russia에 의하면 1867년 나데즈다 수슬로바가 취리히 대학에서 처음으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1867년에서 1883년까지 67명의 러시아 여성이 학위를 받았고, 이중 35명이 자연과학, 31명이 의학, 1명이 언어학 전공이었다고 한다. 


1876년에서 1914년 동안 취리히에서는 1,376명의 여성이 의학부를 졸업했다고 한다. 그중 971명이 러시아인이었고, 111명이 당시 러시아 제국 내 폴란드인이었다. 또한 1900년까지 러시아 제국에서는 천 명 이상의 여성이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는 러시아 의사의 10퍼센트라고 한다. 반면, 1900년까지 오직 16명의 독일인 여성만이 의학 학위를 땄다고 한다.


이 흐름이 너무 멋지고 뭉클하다.


이 여성들의 이야기가 더 읽어보고 싶어서 또 찾은 책은 1869년에 시베리아 지역에서 태어나 의사가 된 안나 베크의 자서전과 당시 시대 상황을 엮은 책 The Life of a Russian Woman Doctor가 있다. 


안나 베크는 1850년 태어난 소피야 코발레프스카야보다 대략 20년 뒤에 태어났다. 아직 안나가 시베리아에서 페테르부르크 여성 고등 교육 과정으로 수학하러 떠나는 부분까지만 읽어서 그 뒤에 어떻게 의사가 되었고, 의사로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너무 궁금하다. 하지만 영어로 읽어야 해서... 엄청 천천히 읽고 있다. 사기는 재작년에 샀는데... 정말 『불꽃같은 생애를 번역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백만 번 한다.



또 관련 책으로 산 건

이 책이다. 어머니들과 딸들이라니... 책 제목부터 너무 좋다. 19세기 러시아 여성 인텔리겐치야의 이야기라고. 제목만 읽어도 너무 재밌어 보여서 역시 재작년에 샀는데, 이 책도 2년 넘게 1장만 읽었다...


어머니들과 딸들 구판인 것 같은데, 표지가 이쪽이 더 예뻐서 이것도 가져와 봤다.



그리고 아직 사지는 않았지만 사고 싶은 책은

이 책이다. 이 책도 『불꽃같은 생애에 많이 인용되었다.

저 책은 전자책으로 무려 8만 원이 넘는다... 사실 Science, Women and Revolution in Russia도 전자책으로 샀는데, 4만 원이 넘어서 살 때는 엄청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내용이 너무 좋아서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 하지만 위 책은 그 두 배라 조금 더 망설여진다.




이렇게 책 한 권 읽고 관련 도서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모으는 건 재밌다.


세상에 자기 길 가는 멋진 사람들이 가득하고, 가득했다는 사실이 너무 좋다.


문과/이과 딱 나누는 것은 섣불리 사람에게 한계를 정하고 규정짓는 거라고 생각해서 반대하지만, 나는 정말 수학은... 수능 이후로 손을 뗐다. 이제 간단한 산수 계산도 머리 쓰지 않고 바로 계산기를 꺼내서 쓴다. 고등학생 때 수학 학원만 다녔는데, 어느 날 학원 끝나고 집에 와서 부모님 앞에서 "수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펑펑 울었다. 그리고 부모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덕분에 수능 끝나고 수학이랑 빠른 손절을 했는데, 가끔씩 내가 수학에 관심이 있었다면 과학에 좀 더 관심을 갖고 공부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부분에 대한 로망인지, 자연 과학 전공하는 사람들에 대한 로망이 아직도 있다.


그렇게 수학은 나와 거리가 멀다고만 생각했는데 『불꽃같은 생애를 읽고 소피야 코발레프스카야의 다음 말을 보고는 많이 와닿았다. 소피야 코발레프스카야는 수학은 물론이고 문학 작업에도 관심을 갖고 있어서 실제로 문학 작품을 쓰기도 했다. 그래서 소피야가 문학을 쓴다는 걸 보고 이제 수학에서 멀어지는 것 아냐? 하는 의문을 갖는 사람을 향해 하는 말 같다.


"내가 문학과 수학을 동시에 병행할 수 있다는 것에 당신이 매우 놀랐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학에 관해 좀더 많은 것을 발견할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던 사람들은 수학을 산수와 혼동하고 수학은 메마르고 무미 건조한 과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수학은 가장 커다란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과학입니다. 금세기 가장 유명한 수학자 중의 한 분(바이어슈트라스)은 시인의 정신을 갖지 못한 사람은 수학자가 될 수 없다고 아주 정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 앤 히브너 코블리츠, 이혜숙.정계선 역, 『불꽃같은 생애』, 320


저 말을 읽고 나도 수학을 산수와 혼동한 단계에서 끝난 것 같아서 살짝 아쉬워졌다.



그리고 『불꽃같은 생애에서 가장 좋았던 구절은 소피야 코발레프스카야가 역시 외국에서 공부하길 원하지만 부모의 반대로 자국을 떠나지 못하는 여성에게 자신의 여권을 보내자, 아무한테나 여권을 넘기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하는 대답이다.


"지식을 찾고자 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원천에 도달할 수 없는 누군가를 돕기를 거절한다는 게 정말로 가능할까? 결국 여자의 행로에서 결혼에 이르는 잘 다져진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하길 원했을 때에는, 너무나 많은 어려움이 쌓인다. 나 자신도 이런 일을 수없이 겪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의 길에 놓여 있는 방해물을 부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 앤 히브너 코블리츠, 이혜숙.정계선 역, 『불꽃같은 생애』, 243


너무 좋다. 15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의 말이지만 지금 나한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이렇게 2022년 첫 번째 책 독서가 끝났고, 한 해의 시작을 여는 책으로 너무 좋은 책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참고 문헌

- 앤 히브너 코블리츠, 이혜숙.정계선 역, 『불꽃같은 생애』,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1997)

- Ann Hibner Koblitz, 『Science, Women and Revolution in Russia』, Harwood Academic(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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