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의 숲 - 프롤로그

랜선 집사일 땐 몰랐던 것들

by 인플리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인터스텔라>의 명대사에 콧방귀를 뀌게 될 것이다.
- 1년 차 고양이 집사




고양이 리지를 입양해 ‘랜선 집사’에서 ‘현장 집사’가 된 지 1년쯤 된 어느 날, 난 깨달았다. 고양이를 키운다는 건 ‘물음표의 숲’을 헤매는 일이란 걸. 매일 원인 모를 행동을 하며 집안을 돌아다니는 고양이는 머릿속에 크고 작은 물음표가 불쑥불쑥 솟아나게 한다.

왜 잠복근무하는 형사처럼 계속 따라다녀??

왜 고양이면 환장한다는 캣잎에 아무 반응이 없지??

왜 고양이 본능에 최적화해서 발명했다는 자동 장난감엔 영 시큰둥해??

...


대개 먼저 생긴 물음표의 답을 찾는 속도보다 새로운 물음표가 생기는 속도가 빨라서, 물음표의 숲은 금세 울창해진다. 혹자는 반문할 것이다. “요즘 블로그나 유튜브에 고양이 정보 많잖아요. 그래도 답 찾기가 그렇게 어려워요?”라고. 그럼 난 해탈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하리라.


사바사, 냥바냥*이거든요.


*사람이 ‘사람 바이(by) 사람’으로 제각각 다르듯, 고양이도 제각각 다르다는 뜻


답 찾기에 자주 실패하며 나는 매일 물음표를 붙들고 씨름한다. ‘랜선 집사’일 땐 그저 그때그때 보고 싶은 귀엽고, 장난끼 많고, 엉뚱한 고양이의 모습을 클릭해서 구경하고, 창을 닫으면 그만이었다. 10초 내외의 그 압축적인 즐거움이란! 그런데 ‘현장 집사’가 되니 24시간 궁금증을 자극하는 고양이가 내 곁을 멤돈다. 환장할 노릇이다. 고양이 고유의 습성에 대한 궁금증은 나중에 해결해도 되지만(ex. 왜 낮잠은 꼭 캣타워 꼭대기에 올라가서 자?), 걱정을 끼치는 궁금증은 바로 답을 찾아야 할 의무가 있다(ex. 왜 요즘 물을 잘 안 먹지?). 그리고 대부분의 물음표들은 초보 집사에겐 빨리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히 초보 집사인 나는 모르는 것 투성이라 ‘물음표의 숲’에서 자주 주저앉고, 안절부절해 한다.


예로 지난 봄, 평소 참치캔을 따 주면 밥그릇 바닥에 찰박이는 육수까지 핥아먹던 리지가 갑자기 참치를 반만 먹고 돌아섰다. 응? 왜 먹다 말지?


바로 검색창에 ‘고양이 갑자기 밥 안 먹는 이유’를 쳤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구내염’. ‘초기에 손쓰지 않으면 전체 발치까지 각오해야……’라는 무시무시한 경고에 소파에 기댄 몸이 벌떡 일으켜졌다. 얼른 구내염 증상을 훑어보았다. 딱딱한 음식을 거부한다? 그런데 리지는 몇 시간 전, 단단한 치석 제거용 간식을 우적우적 잘 씹어 먹었다. 그럼 다음 이유인 ‘자주 먹던 음식에 질려서’? 그럴 리 없다. 전에도 좋아했던 참치를 약 1달 만에 준 거니까. 더 훑어봐도 맞는 답이 없다. ‘물음표의 숲’에서 방황하던 나는 내가 밥을 먹다 마는 때까지 고민해보다 남편에게 물었다.


“……고양이도 봄 타?”

“글쎄, 그러면 입맛 없을 수 있긴 한데……”


그때, 언제인지도 모르게 고양이 화장실에 간 리지가 모래를 발로 퍼내는 소리가 들렸다. 쓱쓱. 잠시 후, 꼬리를 세운채 엉덩이를 씰룩이며 돌아온 리지는 태연히 마저 밥을 먹었다. 챱챱. ASMR처럼 거실에 리지의 식사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화장실에 가 보니 리지가 거사(!)를 치뤄두었다. 아하, ‘급똥’ 마려워서 먹다 만 거구나? 싸고 와서 먹는다고 한 마디 해주면 어디가 덧나냐. ‘물음표의 숲’에서 빠져 나오며 궁시렁댔다. 이런 날 자주 봐 온 남편은 말했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자.”


숱한 시행착오 끝에 물음표의 답 대부분은 ‘고양이니까’였단 걸, 예전에 고양이 레오를 키우면서 깨달았다는 거다(레오는 지금 시부모님 댁의 막둥이로 한껏 사랑받고 있다). 해탈한 남편으로부터 배운 ‘물음표의 숲’ 탈출 3계명을 되새겨본다.


1. 때론 답을 맞히려는 집착을 내려놓는 게 답이다.
2. 때론 알게 된 답이 이해가 안 가도 넘어가는 게 답이다.
3. 때론 답을 영영 모를 수 있단 걸 인정하는 게 답이다.


오늘도 마음을 다스려 본다. 리지가 물음표를 하나도 안 남긴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니라… 하고. 그리고 답을 알려는 내 욕심이, 생각보다 답을 몰라도 괜찮은 물음표가 많단 걸 일깨워주는 이 사랑스럽고, 건강하며, 영리한 존재를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애써 본다. 답을 바로 알지 못하면 안달이 나는 내 급한 성질을 반성하면서. 아마 다른 집사들도 고양이 덕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절절히 깨우치고 있으리라.


궁금증과 깨달음으로 번뇌하고 있을 또 다른 집사에게 위안이 되길 바라며, 지금부터 나의 ‘물음표의 숲’ 방황기를 풀어 본다.




<‘물음표의 숲’ 창시자 소개>



이름 : 리지

나이/성별 : 1살(2021년 5월 23일생) /♀

취미 : 창밖 구경, 집사 쳐다보기

특기 : 라당, 탁구공 발리슛

좋아하는 음식 : 열빙어 트릿, 참치 캔, 챠오 츄르

좋아하는 노래 : 또띠따또 (자동급식기 알람음)

좋아하는 장난감 : 운동화 끈, 탁구공


썸네일 이미지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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