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은 자유

‘개묘차’를 모르면 벌어지는 일

by 인플리
리지는 우리를 너어어어무 사랑하나 봐.


2021년 12월 13일, 리지가 우리 집에 온 지 약 3주째던 날. 난 나와 남편을 향한 리지의 사랑을 목격하곤 가슴이 벅찼다. 리지가 우리가 없는 이 방 저 방을 다니며 뭔가를 찾듯이 애타게 울길래, 고양이 울음소리를 번역해주는 앱을 써 봤더니 이런 결과가 떴기 때문이다.


“내 사랑, 내 목소리가 들리세요?” 12/13 09:49


‘자기야 나 잡아봐~라.’의 고양이 버전인가? 우리는 못 이기는 척 리지를 따라다녔다(허허~ 리지야, 우리 거실에 있는 거 보구선 옷방으로 오라고 꼬시는 거야? 알았어. 간다, 가! 나~ 참!). 사랑을 듬뿍 줬더니 우리한테 마음의 문을 열었, 아니 열어제꼈구나?


리지의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내 사랑, 내가 여기 있어요” 12/13 22:46

“나 여기 있어요, 사랑해 주세요” 12/15 08:14

“사랑에 빠졌어요” 12/17 17:54


리지가 하는 사랑의 숨바꼭질에 심장이 자주 아렸다. 끝내 “사랑해요” 4글자가 뜬 날엔 감동이 목젖까지 차올랐다. 기술도 증명한 사랑이었다. 고양이는 보통 시크하다던데, 리지는 ‘개냥이(애교가 많은 개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고양이를 부르는 말)’구나?

리지의 사랑에 우리도 부지런히 응답했다.


“오구~~ 리지 우리가 그렇게 쬬아아?”

“리지는 완전 사랑둥이네에에?”


그런데 언제부턴가 리지의 울음 톤이 서럽게 바뀌었다. ‘웅애애애!’, ‘애오오!’. 발정기인지 의심했지만 리지는 발정기의 대표 증상인 엉덩이를 높이 치켜드는 자세를 한 번도 취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려 하지도, 소변을 뿌리는 스프레이를 하지도 않았다. 검색해보니 고양이의 발정은 보통 따뜻한 봄(2~4월), 여름(6~8월)에 온다고 했다. 그럼 뭐 때문에 저렇게 우는 걸까? 각종 블로그와 유튜브에서 ‘계속 우는 고양이’ 사례를 뒤지던 우리는 리지가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 때문에 운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태어난 후 약 6개월 동안 탁 트인 길에서 살다가 갑자기 사방이 벽으로 막힌 집에 왔으니 낯설겠지? 우리는 리지를 집안 곳곳에서 놀아주며 집 어디도 위험한 곳이 아니란 걸 리지가 빨리 알아주길 바랐다.


그런데 리지는 갈수록 더 크게 물었다. 밤낮없이 울었다. 울음소리는 미친 방음력을 자랑하는 독일제 실리콘 이어 플러그를 뚫을만큼 앙칼졌다. 리지야, 제발 그만! 새벽 3시쯤, 잠을 설친 우리는 해결 방법을 찾아 인터넷을 뒤졌고, 고양이를 진정시켜준다는 신묘한 음악 앨범을 발견했다. 첼리스트이자 작곡가인 데이비드 테이에(David Teie)가 동물 연구자와 함께 고양이의 뇌와 귀를 연구해 만든 <Music for Cats> 앨범이었다.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내는 골골 소리와 아기 고양이가 어미 고양이의 젖을 빠는 소리 등이 담겨 있어 고양이 진정에 효과가 좋다고 적혀 있었다. 우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리지는 더 큰 울음소리로 화답했다. 아아악!


다음 날 아침, 우린 눈이 뜬 눈으로 서로의 퀭한 눈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리지도 괴로워 보였다. 몸을 자주 뒤집었다. 내 몸 왜 이래? 하며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동물병원에 전화해 본 우리는 결국 리지가 200% 발정기이며, 고양이마다 발정기 증상이 다양하단 사실을 우리가 놓쳤단 걸 깨달았다. 리지의 울음소리는 처음부터 밖에 있는 불특정 다수의 로미오(수컷 고양이)를 꼬시기 위한 콜링(calling)이었던 것이다(집사와의 사랑의 숨바꼭질은 개뿔).


서로의 고통을 빨리 끝내기 위해 우린 1월 중순으로 잡아둔 중성화 수술을 12월 27일로 앞당겼다. 그런데 남은 1주일 간 리지의 울음소리를 견디며 잘 자신이 없었다. 잠만 근처 호텔에서 자고 올지 고민하고 있는데, 리지가 몇 시간 뒤, 처음으로 화장실이 아닌 침대 위에 오줌을 누었다. 맙소사. 부리나케 이불을 세탁기에 쑤셔 넣으면서 고민도 끝냈다. 집을 비우면 또 어디가 리지의 똥간이 될지, 리지가 혼자 어떤 증상에 괴로워할지 모를 일이었다. 더 빨리 수술할 수 있나 싶어 근처 24시 동물병원에도 전화를 했다. 그런데 수술은 바로 다음 날 가능하지만, 수술 전날과 당일 입원이 필수라 했다.

“리지 집 온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병원에서 다른 고양이들이랑 있다가 수술 잘 할 수 있을까?

“안되겠다. 스트레스가 클 것 같아.”

결국 우리는 몇일 더 참기로 하고, 원래 수술하려 했던 병원에서 수술 날짜를 조금 앞당겼다. 그렇게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오전 10시, 리지는 중성화 수술을 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리지는 바로 울음을 뚝 그쳤으니까. 산타 할아버지가 리지에겐 편안함을, 우리에겐 숙면을 선물해주셨다.


수술 후 돌아오는 길, 집사 노릇은 어릴 적 다마고치로 했던 사이버 집사 노릇보다 100배는 더 어렵다고 생각했다. 다마고치 게임기 속 공룡은 원하는 것을 정확한 신호로 보낸다. 신호에 대한 대응도 정해져 있다. 꼬르륵 신호가 뜨면 밥을 주고, 심심함 사인이 뜨면 놀아주고, 똥이 뜨면 치워주면 그만이다. 그런데, 고양이는 고양이마다 발정기 증상으로 보내는 신호가 제각각이다. 이러한 ‘개묘차’는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다른 고양이들은 수술 후 힘들어서 잠만 잔다는데, 리지는 집에 오자마자 복대를 찬 채 캣타워를 오르내리는 건강함을 과시했으니까. 병원에서 준 복대도, 복대보다 편하라고 사준 환묘복도, 플라스틱 넥카라보다 부드러운 천 넥카라도 훌훌 벗어 던지는 말썽도 부렸고. 리지가 상처 부위를 못 핥게 막느라 애를 먹었다.



그래도 지나치게(?) 건강한 리지는 회복이 빨랐다.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으며 다행히 빠르게 생기를 되찾았다.



리지는 열창하던 사랑의 세레나데도 더는 부르지 않았다. 그 사랑이 우리를 향하는 줄 착각해서 행복했던 때가 생각났다. 그래, 뭐 사랑에 있어선 착각하는 게 특권이지. 그 행복한 착각만큼 살아있다는 감각을 생생하게 일깨워주는 것도 없으니까.

리지를 쓰다듬으며 짓궂게 물었다.

“우리 리지~ 이제 로미오 까먹었나 보네?”

남편이 대신 답했다.

“걔 이름이 로~ 뭐였더라?”


1월 중순쯤, 리지의 인스타 계정을 열면서, 이 기념비적 망각을 소개글에 반영했다.

‘2021년 5월 23일생. 수컷 관심 없어요.’

남편의 조언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렇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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