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3일

동장군도 막지 못한 고양이 기운

by 인플리
그 글램핑장 고양이들이 계시였나 봐요!


고양이 임시보호 소식을 처음으로 회사의 같은 팀 분들께 전했을 때, 한 대리님이 이렇게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양이들은 정말 어마어마했으니까.


그러니까 리지를 만나기 4일 전인 11월 18일 목요일, 산과 노래와 술(!)을 좋아하는 우리 팀 다섯 명은 영월로 함께 글램핑을 떠났다. 캠핑 전문가인 팀장님의 노하우와 장비를 믿고(네 명 다 숟가락 하나 안 들고 팀장님께 묻어갔다는 소리) 회사와 멀어질수록 커지는 짜릿함을 느끼면서. 도착해서 색색의 카라반을 구경하는데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데크 위로 폴짝 올라왔다. 난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며 말했다.


“와, 여기 고양이도 한 마리 있어.”


그런데 저녁 식사 세팅을 시작하자 고양이는 한 마리가 아니라 한 무리임이 드러났다. 음식 냄새를 맡았는지 주위 산과 들에서 고양이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어떤 고양이는 한우가 담긴 포장지로 곧장 다가왔다. 어떤 고양이는 의자에 발을 딛고 식탁 위 김치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고기를 굽기 시작하자 고양이들은 연기를 피해 2m쯤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이 잘 구워진 고기 몇 점이 던져질 VIP석임을 안다는 듯이. 고양이들의 예상은 적중했고, 팀장님이 익힌 투쁠 소고기를 던져주실 때마다 고양이들은 열광했다. 지각한 고양이들까지 합하면 총 열댓 마리의 고양이들이 우리의 한우 성찬에 함께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고양이들과 밥을 같이 먹어 본 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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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캠핑에서 돌아온 지 4일째 되던 2021년 11월 22일 월요일, 퇴근하던 남편이 전화로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밤 10시 쯤이었다.


“방금 대학교 동아리 선배한테 연락이 왔는데, 선배 아파트 근처에 사람 손을 탄 고양이가 있대. 지금 구조하면 잠시 임보(임시보호) 해 줄 수 있는지 물어보는데 어쩌지?”


을 탄 고양이는 사람을 덜 경계해서 학대범의 표적이 되기 쉽다. 게다가 그날 겨울바람은 패딩 속을 파고들 정도로 기세가 맹렬했다.


“선배는 이미 고양이를 세 마리 키우거든. 직접 임보하긴 어려운 상황이라 연락하신 것 같은데…


남편 말을 듣는 동안 흙 위에서 추위에 덜덜 떨던 고양이가 우리 집 거실에 오더니 바닥의 온기에 나른해 눈을 붙이는 장면이 상상되었다. 그 장면이 주는 안도감은 고양이 임보에 필요한 책임감, 준비물 체크리스트 같은 이성적 사고를 훅, 앞질렀다. 바로 남편에게 답했다.


“좋아! 데려오자.”


에 온 남편이 선배 전에 찍었다던 그 고양이 영상을 보여주었다. 흰색, 갈색, 검은색이 어우러진 털무늬가 독특했다. 고양이는 간식을 발견하고 걸어 나오면서도 경계하듯 뒤를 홱, 홱, 돌아보았다. 선배의 검지에 다가가서는 ‘코 쪽(뽀뽀하듯 코를 대는 행동)’을 하는 애교도 선보였다. 그리곤 당당히 냥냥거렸다. ‘팬서비스 했는데 간식은?’이고 말하는 것처럼.


얼굴을 알게 되자 일반명사였던, ‘고양이’는 ‘그 고양이’라는 고유명사로 바뀌어 마음을 침범해왔다. 잔고도 침범했다(!). 전 집사인 남편이 필요한 고양이용품을 줄줄 읊는대로, 난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를 착착 채웠다. 고양이용 화장실, 장난감, 발톱깎이, 브러시, 방묘문…….


그런데 그날 밤, 기다리던 구조 소식은 오지 않았다. 선배는 그 고양이가 좋아하던 간식을 갖고 길을 다녀봐도, 고양이가 통 나오질 않는다셨다. 밤은 깊어가고, 바람은 매서워지고 있었다. 더 구조 활동을 하긴 무리였다. 다음 날 퇴근 후 다시 구조하겠다는 선배에게 고생 많으셨다는 인사를 전하며 속으로 빌었다. 오늘 밤만 버텨줘!


다음 날, 난 출근 후 틈날 때마다 그 고양이 영상을 봤다. 팀에도 내가 ‘예비 집사’임을 알렸다. “얘 오늘 저녁에 구조되면 저희 집에 와요.”라면서. 팀 분들은 글램핑장 고양이들이 어떤 기운을 주었나보다고, 꼭 잘 구조되었으면 좋겠다고 응원해 주었다.

데 퇴근 후에도 구조 소식은 뜸했다. 선배가 퇴근 후 저녁도 거른 채 남편분과 고양이를 찾아다니고 있다는데 제발 나타나줘…

설마 하루 사이에 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초조해하던 저녁 8시쯤, 마침내 남편의 메시지 알림이 왔다.


“고양이 방금 구조하셨대!”


남편이 뒤이어 짧은 영상을 보냈다. 기다렸던 그 고양이가 이동장 안에 앉아 긴장한 채 밖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바로 선배 부부의 차에 실려셔 그 고양이는 11월 23일 밤 10시쯤, 우리 집에 왔다. 선배 부부는 감사하게도 갖고 계신 다양한 고양이 캔, 간식, 화장실용 모래까지 두둑히 챙겨 와 주셨다. 하나하나 설명해 주실 때마다 겨울을 잊을 만큼 마음이 따뜻해졌다(알고보니 선배는 지인들과 유성동네고양이보호협회 활동도 하시면서, 길 고양이 구조와 입양 홍보를 개인적으로도 오래 진행해 오신, 멋진 분이셨다).


런데 구조된 고양이는 거실에 둔 이동장에서 통 나오질 않았다. 잔뜩 언 채 선배 부부와 우리 부부를 유심히 경계할 뿐. 이동장 입구에 놓은 간식도 조금 맛보고 도로 들어갔다. 하긴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사람 넷이서 자기만 뚫어져라 보니까 쫄 만 하지. 선배 부부가 돌아간 후에도 고양이는 이동장 안에서 꼼짝을 안 했다.


“얜 겁보인가 봐. 레오는 집에 데려오자마자 냄새 맡고 돌아다니고 난리던데.”


고양이들마다 적응에 시간이 걸린다는 건 그때 처음 알았다. 난 냥이야~ 괜찮아. “냥이야, 나와봐 하며 달래다 남편에게 말했다. 앞으로도 불러 줄 이름을 짓자고. 남편은 고양이 얼굴을 유심히 보다 말했다.


“리지 어때?”

“왜 리지야?”

“그냥 딱 보면 리진데?”

“흠, 잘 어울리네? 그래.”


작명은 싱겁게 끝났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리지는 소파 밑에 숨어있었다. 간식을 줘도, 장난감을 흔들어도 나오질 않았다. 고양이 2마리의 집사인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니 좋은 예언을 줬다.


“지도 답답해서 언젠가는 나올 거야.”


언은 넘치게 맞았다. 음 날, 밖에 나온 리지는 우리 종아리에 자기 궁둥이를 착 붙이는 극강의 붙임성을 보여줬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구입한 고양이 용품을 보며 친구가 했던 예언은 하나 더 들어맞았다.


“근데 너 산 장비들 보면 임보가 아니라 계속 키우는 거 같은데?”


그렇다. 리지에게 며칠 새 푹 빠진 우리는 원래 그럴 작정(?)이었던 듯, 곧 임시보호를 평생보호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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