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은 반드시 이별의 손을 잡고 찾아온다

이별로 완성된 캣테리어

by 인플리
…버릴 때가 왔네.


만남과 이별 사이엔 반드시 시간차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새로운 사랑은 누군가와 헤어진 후 시작되며, 새로운 일도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한 후 시작하게 되니까. 하지만 리지를 만난 후 깨달았다. 만남은 반드시 어떤 것과의 이별과 동시에 일어나, 삶의 깊은 부분을 바꾸어 놓는단 걸.


리지가 온 후, 남편과 나는 사람에게 이로운 것 중 고양이에게 해로운 것과 작별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미야옹철의 냥냥펀치>의 도움을 받으면서. 이 채널은 김명철 수의사와 그의 아내 ‘휴모님(‘휴먼 사모님’의 줄임말. ‘사모님’과 ‘애기씨’라는 두 고양이를 키우시는데, 한 구독자가 고양이 이름과 구별되는 애칭을 센스 있게 지어주심)’이 운영하는데, 집사들이 꼭 알아야 하는 정보를 재미있고 알차게 전하는 콘텐츠가 많다.

어느 저녁, 우리는 ‘고양이 집사에게 주고도 욕먹는 선물 List’라는 영상을 보았다. 고양이에게 해로우므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에게 주면 안 되는 선물 목록이 차례로 등장했다.


첫 타자는 아로마 에센셜 오일. 남편과 나는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서로 같은 제품을 떠올린 것 같았다. 그래. ‘포스트-푸 드롭스(Post-Poo Drops). 이제 널 보내줘야겠구나.’

이 제품은 호주 스킨케어 전문 브랜드 이솝(Aesop)에서 만든 오일 타입의 화장실용 탈취제로, 제품명을 직역하면 ‘똥 싼 후 몇 방울(!)’이다. 그나마 귀여움을 더해 의역한 제품명은 ‘누고 톡톡’. 적나라한 제품명과 달리 생김새는 상당히 고상하다. 디퓨져 병처럼 몸체는 진갈색 유리병이고, 뚜껑은 검정 색이며, 유리 스포이드가 달려 있다. 호텔 화장대 위에 놓아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우린 그간 이 제품으로 신혼의 달콤함으로도 덮을 수 없는 각자의 똥내(너무 적나라하니 앞으로 ‘잔향’이라 바꿔 부르겠다. 잔향의 뜻은 남아있는 향기)를 덮어 왔다. 레몬 껍질, 탠저린 껍질, 일랑일랑 꽃 오일 주성분인 샛노란 오일을 변기에 두세 방울 떨어뜨리면 레몬 향이 맹렬한 기세로 콧속을 파고들어 잔향을 지워주었다. 결혼은 KCC건설 스위첸 광고가 말했듯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 함께 지어가는” 것이기에, 우리는 이 제품으로 상대 문명의 피해(!)를 최소화하려 애써왔다. 제품의 탁월한 효과는 겉면 설명에도 잘 드러나 있다.


화장실에서 격렬한 활동(vigorous activity)이 일어났을 때, 다음에 올 사람들을 배려해

세심히, 공들여 만든 이 제품 몇 방울을 물 내린 변기 속에 희석하세요.


이 제품으로 문명의 화합을 이루어왔던 우리는, 새 식구인 리지의 만만치 않은(!) 잔향도 이 제품으로 극복해왔다. 리지가 똥을 누면 플라스틱 삽으로 건져 변기에 빠뜨린 뒤, 물을 내리고 오일을 톡톡 떨구었으니까. 그 다음 환기를 하면 리지의 잔향도 금세 사라졌다. 그런데 김명철 수의사님은 아로마 에센셜 오일이 고양이에게 해롭다며 이렇게 지적하셨다.


“고양이는 간에 독성물질이 들어왔을 때 소화하는 분해효소가 선천적으로 부족합니다. 일반적인 약을 쓸 때도 (개에 비해) 고양이에겐 절반 정도밖에 사용을 못 하기도 해요. 심지어 못 쓰는 약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특히 고양이에게 위험한 향기로 감귤, 레몬, 자몽에 포함된 모노테르펜 탄화수소류가 콕 집어서 자막으로 등장했다. 우리는 바로 리지와 함께 쓰는 거실 화장실에서 이 제품을 뺐다. 그리고 우리만 쓰는 안방 화장실에서만 이 오일을 쓰고, 리지의 안방 화장실 출입을 막기로 했다.


다음 타자는 두 화분이었다. 신혼집에서부터 약 2년을 함께 하며 탐스럽게 커 온 고무나무, 산세베리아 계열의 문샤인. 둘 모두 고양이에게 독성이 있는 식물로 꼽혔다. 리지는 다행히 두 식물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고무나무 잎을 할퀸 전적은 있었다. 우리가 일이나 약속으로 집을 비울 때, 리지가 장난을 치다 위험해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화분과의 좋은 작별을 고민하던 우리는 같은 아파트 입주민에게 화분 무료 나눔을 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집과 비슷한 온도, 습도, 채광을 지닌 곳에 가면 식물도 적응하기 좋고, 우리도 화분을 싣고 멀리 이동하지 않아도 되어 좋으니까. 아파트에선 입주민 간 무료 나눔이 매우 활성화되어있어서 나눔 받을 분을 빨리 찾을 수 있단 것도 장점이었다. 전에 통돌이 오븐, 화장품 보관함, 파쇄기 무료 나눔 글을 올렸을 때도 거의 30초도 안 되어 댓글이 우수수 달렸으니까. 남편이 정성스레 화분 사진을 찍는 동안, 난 각 식물 별 물 주는 주기, 크기를 적고 고무나무를 살 때 받았던 식물용 영양제와 설명서도 꺼냈다. 거의 자정이 되어 글을 올렸는데 1분도 안 되어 “저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댓글을 단 분께 두 화분을 모두 가져가실 수 있는지 여쭤보니 이렇게 답이 왔다.


“네. 다 주시면 잘 키울게요.”


왠지 안심이 되는 답이었다. 두 식물이 무럭무럭 잘 자라길 기원하며, 다음 날 화분 나눔을 했다.


이렇게 리지를 만남과 동시에 우리 집은 사람의 취향과 편의에 맞춘 ‘인(人)테리어’와 이별하고 리지의 안전과 즐거움을 위한 캣(cat)테리어 공간으로 거듭났다. 마치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를 키우는 집이 각종 공룡 모형으로 가득 차 쥬라기공원(!)으로 변하듯이. 이제 거실은 리지가 먼저 살고 있던 곳에 우리가 들어가게 된 걸로 보일 정도로 리지 물건이 가득하다. 높은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의 습성을 고려한 캣타워, 고양이 탈구 방지용 매트, 고양이의 사냥놀이를 더 흥미롭게 만드는 캣터널, 고양이 자동급식기, 고양이 물그릇이 여기저기 놓여 있으니까.


재정비된 집을 보며 다시금 곱씹는다. 만남은 반드시 이별의 손을 잡고 찾아온단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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