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여행

집사들의 성지에 다녀오다

by 인플리
캐리어 잘 챙겼지?


캐리어는 여행자의 표식이다. 캐리어를 끌고 떠나는 사람에게선 일상에서 단단히 쥐었던 고삐를 내려놓은 사람 특유의 느슨함과 즐거움이 풍겨 나오니까. 하지만 2022년 1월 21일 금요일, 코엑스에서 캐리어를 끄는 남편과 난 평소보다 더한 비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탑승수속을 신속히 처리해주는 코엑스 도심공항터미널이 아닌 고양이용품 쇼핑계의 성지, 캣페어였으니까.


캣페어에선 식품, 장난감, 가구, 모래, 패션 소품, 아트 등 각종 고양이 용품 브랜드가 부스에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며, 다양한 개인 혹은 단체에서 고양이 관련 전시나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애견신문사에서 정리한 <2022 반려동물 박람회 일정>에 따르면 국내 캣페어는 ‘궁디팡팡 캣페스타’, ‘캣쇼’, ‘케이캣페어’ 3가지가 대표적이며, 전국 각지에서 총 15회 정도 개최된다. 우리가 갔던 캣페어는 <2022 케이켓페어>로 개최기간은 2022년 1월 21일부터 23일까지 총 3일, 참가기업은 139개, 운영부스는 227개, 전시 규모는 약 2,200평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우리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끝없이 펼쳐진 부스의 행렬과 붐비는 인파에 잠시 아득해졌다. 남편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부스 배치도 이곳저곳을 검지로 훑어 동선을 짜 보이며 말했다.


“먼저 이 구역에서 장난감을 사고, 그다음 이 구역으로 가서 습식캔을 사자. 그리고 시간이 나면 나머지 구역을 둘러보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최단거리로 쇼핑을 마칠 수 있는 효율적인 동선을 미리 짜고, 그 동선대로 움직이는 데서 성취감을 느끼는 ‘에너지아낌파’로, 캣페어도 이 계획이 통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계획은 초장부터 와르르 깨졌다. 입구 근처 한 부스 직원분의 열변에 매료되어 첨단 기술이 접목된 고양이 전자제품 작동방식을 3분 넘게 서서 들었고(열정적인 설명을 끊기가 죄송했다), 겨우 빠져나오다 마주친 한 부스에서 처음 보는 고양이 간식에 홀렸으며(우와! 증기로 찐 생선이래! 종류별로 하나씩 사볼까?), 바로 뒤 부스에 사람들이 몰려 있길래 호기심에 비집고 들어갔다가 고양이 화장실용 친환경 모래에 홀려 택배 주문서를 바로 작성했니까.


상품 하나하나 감탄하다 보니, 부스를 10군데도 못 돌았는데도 힘이 빠졌다. 폰으로만 고양이 용품을 샀던 난 고양이 용품 쇼핑 계의 우물 안 개구리였다. 봐도 봐도 끝이 없는 형형색색의 브랜드와 상품이 거대한 세계를 이뤄 눈앞에서 꿀렁였다. 남편도 스케일에 압도당해 말했다.


“와… 나 레오 키울 때랑 차원이 다르네.”


국내 반려묘 수는 2020년 기준 258만 마리로 추정되는데, 2012년 115만 마리였던 데 비하면 그새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라고 한다. 그 급증세에 따라 산업도 무럭무럭 확장되어 온 것 같았다.


우리는 캣페어에 또 언제 와보겠냐며 좋아 보이는 것에 순순히 지갑을 내주기 시작했다. 캐리어를 마트 카트 삼아 굴리고 다니며 이것저것 담아댔다. 예산은 금방 초과되었지만, 온라인 몰보다 할인율이 크고 유통기한이 긴 상품들도 있었다. 우리가 쇼핑에 빠져있던 사이, 리지를 구조해주신 남편의 동아리 선배가 오셨다. 3마리 고양이의 집사로, 캐리어를 가져오라고 조언해주신 분이기도 했다(정말이지 산 짐을 다 메고 다녔으면 어깨가 나갈 뻔했다) 도움을 받으며 함께 쇼핑을 하던 중에 그분께서 물으셨다.


“아, 근데 00 브랜드 샘플 혹시 받으셨어요?”


최근에 핫한 브랜드의 SNS 계정에서 팔로우 한 관람객 한정 샘플 무료 제공 이벤트를 보셨다 했다. 아차! 바로 찾아갔지만 샘플은 동나 있었다. 우린 다양한 부스에서 고양이가 음식을 좋아할지 테스트해볼 수 있도록 소포장 샘플을 무상 제공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계속 한 수 배우며 따라다닌 우리의 캐리어는 각종 캔과 간식, 장난감으로 두둑해졌다. 깃털 장난감을 좋아하는 리지를 떠올리며 갈색 꿩 깃털도 샀는데, 길이가 1m가 넘어서 캐리어 위로 깃털이 비죽 솟아 나왔다. 끌고 다니는 동안 도시에 여행 온 로빈훗이 된 기분이었다.

캣페어 허공을 꽈배기처럼 가로지르는 꼬리 달린 깃털 장난감에 홀려서 했던 결제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마감 시간인 6시에 퇴장했다. 저녁식사 메뉴는 홍콩식 딤섬. 대기자가 많은 근처 맛집이었는데, 직원분이 친절하게 캐리어를 카운터 뒤에 놓아주셨다. 알록달록한 스펀지, 플라스틱, 비닐, 깃털로 이루어진 장난감이 비죽 솟아 나온 캐리어 2개는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자랑스러웠다. 캣페어라는 어마무시한 쇼핑 여행을 마친 증표니까.



우리는 선배 부부와 딤섬, 양배추찜, 완탕, 양배추를 몇 개씩을 싹싹 비웠다. 그리고 집에 가자마자 쓰러져 잤다.


다음 날도 너덜너덜해진 체력은 쉬이 추슬러지지 않았다. 결국 캐리어에서 색색의 장난감과 캔을 가지런히 펼쳐놓고 인증샷을 찍겠다는 계획은 취소. 우린 모든 물건을 캐리어에서 꺼내 큰 타포린 백에 다 쏟아 넣었다.

여기 캣페어 여행을 앞둔 다른 초보 여행자들을 위해, 여행 꿀팁 5개를 적어둔다.




1. 관람 전 참여 브랜드 이벤트를 미리 확인한다.

- 무료 티켓을 현장에 숨겨놓는 브랜드도 있다

2. 캐리어를 끌고 간다.

- 20인치 정도가 끌고 돌아다니기 편하다

3. 캣페어에 입장하면 우선 샘플부터 챙긴다.

- 인기 브랜드부터 훑고, 빠른 샘플 수령을 위해 SNS 계정 팔로우 등 수령 자격을 미리 갖춰둔다

4. 장난감은 리필용 위주로 산다

- 시중의 웬만한 낚싯대 장난감은 낚싯줄 끝에 달린 핀에 다른 장난감을 낄 수 있게 되어있다.

낚싯대는 그립감이 좋은 것으로 길이가 짧은 것, 긴 것 하나씩만 있어도 충분하다

5. 관람 다음 날 요양한다.

- 우리는 캣페어 다음 날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고양이가 사와 준 것을 잘 먹고 잘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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