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웃어봐"

그 모습들이 내 거울인지 몰랐다.

by 생각주머니

나의 엔진은 묵직했으나 윤활유는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일은 곧잘 했다. 일 눈치가 있었고, 하나의 일이 끝나면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주유소에서 세차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인정받았고, 대학교에서 학생부를 뽑을 때도 내 이름이 자주 거론되었다.


샤브샤브 가게에서 일할 때였다. 그때 나는 에이스였다. 센스로 무장한 청년이었다. 주방 이모들은 나를 예뻐했고, 매니저는 아르바이트생들과 달리 나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테이블을 치우고 세팅을 하지 않고 담배를 피러 나간 동료 대신 내가 세팅을 마치고 한마디를 해줬다. 이모들은 저런 뺀질이는 혼나야한다며 내 어깨를 으쓱하게 해주셨다.


어느 날, 사장님이 불렀다.

“웃어봐.”

입만 웃었다.

“그래, 웃으니까 예쁘잖아.”

나는 곧바로 입꼬리를 내리고 다시 움직였다. 손님들에게 웃지 않았다. 내 웃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었다. 필요한 말만 하고, 필요한 일만 했다. 덜 웃었지만 칭찬은 더 들었다(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웃음이 전혀 없던 건 아니었다. 자주 본 사람, 가까운 사람에게는 노력하지 않아도 웃게 되었다. 하지만 낯선 사람, 한 번 보고 말 사람에게는 웃지 않았다. 웃으면 얕보인다, 웃으면 이용당하기 쉽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자리에서는 더욱 무표정을 짓게 되었고, 당하지 않으려는 말투로 살아남았다. 상업영화 제작팀에서 일하면서 나의 신념은 더욱 굳어졌다. 보자마자 반말 하는 문화, 개인적인 것도 서슴지 않게 시키는 문화,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물어대는 사적인 질문들. 하루에 수십통씩 업체에 전화를 돌려야 하고, 촬영 장소로 보이는 곳을 섭외하기 위해 계속 문을 두드려야 하고, 각 파트의 스탭들과 조율을 해야하는 업무형태. 무표정과 투박한 말투를 나의 방패로 여겼다. 나의 웃음과 친절한 말투는 나와 가까워진 인증이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알바를 했었을 때 서비스로 이름을 날렸다며 자부심을 가진 직장 동료가 있었다. 항상 미소 지어야 한다며 웃는 표정을 연습하는 그가 가벼워 보였다. 웃어야 할 때와 웃지 않아도 될 때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출퇴근을 할때의 나를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 촬영현장에서 만난 스탭들의 표정, 모두 진지했다. 잘 웃지 않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 모습들이 내 거울인지 몰랐다. 정답인줄 알았다.

작가의 이전글05. 역할명 : 첫째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