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초심을 잃다.

- 도대체 무얼 바라는 거지?

by moonlight


욕실에서 둘째를 씻기던 아내가 소리친다.

카디건을 옷장에 넣으면 안돼! 거기 넣었지?
(잠시 침묵) 아니 접어서 정리하는 거야.
입던 옷을 거기 넣으면 다른 옷들이랑 섞여서 구분 못한다고.
(계속 침묵)......


거실에 있던 난 뭔가 이상하다 느꼈다. 아내와 쑥쑥이의 대화가 높은 음을 내면, 마음이 불편하다. 어쨌든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그것도 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성급히 또 끼어든다.

쑥쑥아! 옷 어디다 넣었어?
응?? (스윽 쳐다보고 다시 고개를 돌린다.)

옷장을 열어 "이 옷이 맞아?" 하고 묻고는 옷걸이를 꺼내어 다른 곳에 걸어둔다. '휴 이제 됐다.' 하는 표정으로 돌아서는데, ''아빠~ 미워! 아빠 싫어!!" 그런다.
헉 이건 뭐지?!

당황한 마음을 들킬세라 나는 거실에서 혼자 멍~하니 있고, 쑥쑥이도 방에서 혼자 꿍~하니 있다. 시간이 흘러 슬쩍 아이스크림이란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선다. 동생이 자고 나면 먹자고 했더니, "오늘 원래 먹는 날이야." 그런다. 하하. 투박하긴 했지만 말을 했으니 이제 조금 풀린 것. 끄응 참고서 다시 용기 내 "같이 놀까?" 하니, 못 이기는 척 거실로 나온다.

그리고 조용히 들린다. "아빠~ 말 할 때 무서웠어."


도대체 아빠 얼굴이 너에게 무슨 말을 했기에


둘째가 생기고는 말은커녕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기라 생각해 항상 동생의 안전이 먼저였다. 둘이서 놀다가 부딪히거나 심지어 둘째가 혼자 미끄러져 바닥에 머리를 쿵해도 옆에 있던 첫째를 쳐다보았다.


유치원을 졸업하고는 초등학생임을 강조했다. 혼자 먹고, 혼자 씻고, 혼자 읽고. 의사표현도 자유로우니 최소한 자신의 안전은 책임지며 가끔은 동생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말없이 보냈던 아빠의 무거운 시선에 녀석의 상처는 넓어지고 깊어지고.


존재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사랑하기로 했는데.


아빠가 초심을 잃었다.


오늘은 쑥쑥이를 위해 초코케익을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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